[2021년 여름+가을호] [책이야기] 곧 태어날 나의 딸에게
등록 2021.11.18 14:52
조회 378

하틀랜드(교보문고).jpg

 

 

안녕. 오늘 아빠가 너에게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저 멀리 미국이란 나라에서 나고 자란 어느 여성의 성장기야. ‘세라 스마시’라는 이 여성은 미국 중앙에 위치한 캔자스주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 스마시가 태어난 캔자스주는 ‘그레이트 플레인스(Great Plains)’라고 불리는 넓은 평원지대로 밀이 유명한 곳이야. 그렇지만 너는 자라는 동안에 아마도 캔자스주에 대해서 들어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 네가 미국이란 나라를 처음 접하게 될 할리우드 영화는 뉴욕이나 워싱턴, 캘리포니아처럼 바다 연안의 도시 사람들의 삶을 다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야.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스마시가 다짐한 것

스마시가 태어난 캔자스주는 날씨가 변덕스럽고 토네이도도 자주 출몰할 만큼 자연환경이 거칠어.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이곳을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그저 하품하고 지나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자면서 지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해. 스마시의 가족은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엄마, 외할머니의 엄마의 엄마까지 5대가 이곳 캔자스주에 자리 잡고 200년 넘게 살았어. 유럽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넘어온 스마시의 조상 때부터 말이지.

 

스마시의 가족들은 미국의 곡창지대인 캔자스 주에서 농사를 지었대. 주말까지 일하며 미국인들의 식량을 책임져왔지만 항상 가난했다고 해. 개척시대에는 중부의 불모지를 개간하려 나라에서 스마시의 조상을 캔자스 주 황무지로 내몰더니 개고생을 하며 터전을 일궈 놓은 다음엔 도시의 삶이 진보적인 것인 양 농사짓고 선량하게 사는 자신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더래.

 

스마시 가족의 남편들은 생활력이 형편없었단다. 음주와 도박에 찌들어 가정경제를 꾸리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 되었지. 스마시의 엄마까지는 10대에 스마시를 가졌고 남편의 폭력과 가난 때문에 이혼과 이사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해. 스마시의 할머니 베티는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피해 무려 5번을 이혼하고 여섯 번째 할아버지를 만나서야 손찌검을 피했대. 정말 고달팠던 삶이지. 스마시는 커가며 엄마를 비롯한 할머니들의 삶을 이해하고는 자기는 절대 10대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남편을 둔 가난한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수치심은 ‘죄’에서 오지 않았다

스마시 가족의 여성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왔어. 베티 할머니는 1960년대에 남편의 폭력을 피해 홀로 아이를 키우며 어쩔 수 없이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았는데, 사회복지사들이 불시에 집에 들이닥쳐 빨래 바구니를 뒤졌대. 남자와 사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말이야. 엄마 지니가 아빠의 폭력을 피해 막 이혼할 무렵 미국은 정부의 돈을 축내는 ‘복지 여왕’들을 색출하려 혈안이 돼 있었어. 스마시 가족의 여성들이 느낀 수치는 그들의 ‘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지.

 

스마시를 키운 여자들은 남편의 폭력에도 무너지지 않았어.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트랙터를 몰고, 건초 덩어리를 만들고 공장라인에서 조립하고 할인점 창고에서 물건을 옮기며” 아이를 먹이고 입혔어. 여기에 공립학교에서의 교육과 장학제도가 보태져 스마시는 엄마나 할머니처럼 10대에 임신하지 않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녀의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단다. 지금 스마시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일하며 <뉴욕 타임스> 등 유력 언론에 미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관해 글을 쓰는 성공한 학자가 되었어.

 

가난하다고 멸시받지 않도록

지금까지 네게 들려준 스마시의 성장기는 『하틀랜드』라는 이름의 책으로 세상에 전해지게 돼. 스마시는 자신의 가난 극복 서사를 개인적 성취로 자랑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어.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가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계속 가난한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이혼하는 여성을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차별하는지, 사회 구조적 모순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잔잔하게 드러내지. 자신과 같은 가난한 미혼모의 아이들이 가난하다고 멸시받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목표야. 그리고 나라가 펼치는 “공공정책과 실제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단다.

 

스마시 가족의 여성들이 겪었던 고난을 보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난을 대하는 태도와 너무나도 흡사해서 아빠는 놀랐단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그래도 아빠가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멸시받는 시대”가 활짝 열렸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존경받아야 할 일이지만,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멸시받아야 하는 이유가 아닌데도 말이야.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계급이 대물림되는 시대에 안타깝게도 앞으로 태어날 네게 물려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아빠는 슬프단다. 그래도 가난이 주는 고통은 피할 수 없었지만 자존감을 지키며 스스로 빛나고자 했던 스마시 가족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네게 전해 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빠도 가난이 ‘멸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사랑한다, 내 딸.

 

이동철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1년 여름+가을호(통권 219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2021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