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2020년 9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현황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충격(?)적이었다. 1%도 안 되는 20대 회원 비율을 받아든 민언련은 고민에 빠졌다. 젊은 세대를 민언련 회원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문분과, 방송분과, 영화분과, 노래분과, VJ분과, 사진분과… 심지어 산악회까지. 이전 민언련엔 다양한 회원모임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문분과와 방송분과 두 곳만 남았다. 그나마도 코로나19 여파로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 회원을 재결집하고 새로운 회원을 발굴하는 장으로 회원모임을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상경 회원을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방송분과 경력 5년의 젊은 여성회원. 분과원이 줄어들 때도 방송분과를 지켰고 회원캠프, 광주순례 등 다양한 민언련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민언련 회원으로, 방송분과원으로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활동 후일담과 노하우를 듣기 위해 3월 2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민언련에서 그를 만났다.
부담스러웠던 시민단체 활동
조선희(민언련 미디어팀장) 민언련 고민을 나누고자 어렵게 모셨습니다. 김상경 회원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김상경 안녕하세요, 2015년 1월부터 민언련 방송분과로 회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한테는 인터뷰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선희 김상경 회원은 방송분과 경력이 오래된 데다 2016년 올해의 회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 왜 인터뷰 기회가 안 생겼을지 궁금한데요. 민언련에 20대 회원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라 지금이 인터뷰 적기란 생각도 듭니다. 먼저 2015년부터 방송분과 활동을 했는데 어떻게 민언련을 알게 된 건가요?
김상경 2014년 6월 대학교 교수님 추천으로 시민단체 일을 잠깐 도왔는데요. 그때 알게 된 선생님이 민언련 활동가였어요. 윤지선 활동가라고 지금은 손배가압류, 업무방해죄 제도를 바꾸는 시민단체 ‘손잡고’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요. 또래 친구들이 미디어 콘텐츠를 보고 얘기 나누면서 글 쓰는 활동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고 잘할 것 같아서 부담 없이 한번 가보면 좋겠다며 방송분과를 소개해주셨어요. 하지만 처음엔 거절했어요.
조선희 왜 거절했어요?
김상경 시민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웃음). 그때는 숭고한 뜻이나 대단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내가 감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미디어 콘텐츠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비판의식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스러웠어요. 좋은 기회지만 내공이 쌓이면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조선희 그럼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을 때 방송분과에 오게 된 건가요?
김상경 2015년 초 윤지선 활동가님에게 문자가 왔어요. 공덕동 사무실 주소를 찍어주면서 ‘목요일 6시 반까지 여기로 오세요’라고요. 계속 거절하니까 권유만 하면 안 나오겠다 싶어 최후의 수를 둔 것 같아요. 그러니 저도 더 거절하기 미안했고, 한편으론 사실 궁금했어요.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또 윤지선 활동가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분 추천이면 갈 만하겠다 싶어서 갔죠.
△ 김상경 회원은 2015년 1월부터 방송분과에 들어와 5년간 활동했다.
‘잘 쓰고’ 싶어 고생한 첫 보고서
조선희 제가 2019년 방송분과 담당 활동가로 들어갔을 때도 김상경 회원은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는데요. 오래 활동하면서 힘들진 않았나요?
김상경 하나도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죠.
조선희 김상경 회원에 대해 ‘조사’하다가 발견한 건데요. 2015년 4월호 <날자꾸나 민언련>에 실린 방송분과 소식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김상경 신입 분과원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심적 부담을 느껴 노미정 간사에게 수시로 전화했다.’ 이 보고서 기억하나요?
김상경 제일 처음 쓴 보고서라 당연히 기억나요. EBS 다큐멘터리를 호평하는 내용인데 생각보다 칭찬이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잘 쓰고’ 싶어서 고생했죠. 처음 방송분과 들어갔을 때 22살이었는데요. 같이 활동하던 언니, 오빠들이 20대 후반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이 차이 얼마 안 나잖아요? 그런데 그땐 엄청 차이 난다고 생각했어요. 글 실력도 마찬가지고요. 글을 잘 쓰는 언니, 오빠들이 높은 퀄리티 보고서만 보다가 내 보고서를 보면 창피할 것 같아 간사님을 많이 괴롭혔어요.
조선희 기억에 남는 방송분과 모니터 보고서가 또 있다면요?
김상경 2016년 3월에 나온 Mnet <프로듀스 101> 보고서가 기억에 남아요(작성자 주 : 오디션 프로그램이 출연자 연습생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방송화면 노출시간을 세어본 보고서. 초마다 바뀌는 화면을 보면서 출연자별 노출시간을 쟀다). 제가 쓴 건 아니고 당시 같이 활동한 김주리 회원이 쓴 건데요. 소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갑도 을도 아닌 병을 위해 필요한 건 공정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갑은 오디션을 주최하는 Mnet이고, 을은 연습생들의 소속 회사, 병은 연습생이에요. 갑이 이익을 가져간 다음에야 을, 그리고 나머지를 병이 가져가는데 ‘병’인 연습생 처우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의 모순이죠. 보고서 소제목이 그 모순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말이라고 생각해요.
1초마다 일시정지를 눌러가면서 쟀던 방송화면 노출시간이 의미 있는 수치라서 괜찮은 시도였단 생각도 있지만, 우린 연습생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어떤 관계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더 세심하게 신경 쓰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걸 강력하게 말했던 보고서라서 기억에 남아요. 하나 더 얘기해도 되나요? 신문분과와 협업해서 이정화 회원이 쓴 보고서인데요. 뉴스에서 노동 관련 용어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본 보고서에요.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를 ‘외국인 노동자’로 부르거나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민노총’, ‘한노총’으로 부르는 거죠. 노동을 존중하는 용어를 사용해달라는 게 요지였는데요. 지금도 노동이슈와 관련된 뉴스를 볼 때 이걸 잘 지키고 있는지 보게 되더라고요.
조선희 김상경 회원에게 방송분과는 큰 의미인 것 같아요.
김상경 많은 도움이 됐죠. 우선 확실히 글 쓰는 실력이 많이 늘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을 볼 때 쉽게 웃지 못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개그 프로그램이든 다큐멘터리든 뉴스든 약자나 소수자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 최대한 그들의 시선에 맞추고 있는지, 그들의 감정을 배려하고 있는지 신경 쓰게 됐어요.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을 보는데요. 한 개그맨이 ‘요즘 프로불편러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다 개그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해하죠. 분명 소재가 줄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의 감수성이 올라간 거니까요. 거기에 맞는 ‘검열’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의식을 대변해줄 때 민언련 회원이길 잘 했다고 느낀다'고 말한 김상경 회원
두 명으로 버텼던 방송분과
조선희 방송분과도 김상경 회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분과원들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자리를 지켰다고요.
김상경 방송분과 활동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오래 하고 싶었고요. 오래 하려면 최소한의 인원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2016년 중반쯤, 분과에 두 명밖에 안 남았어요. 저랑 주리 씨랑. 여기서 저까지 빠지게 되면 방송분과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건 막고 싶었어요.
제가 방송분과를 하면서 얻은 게 많기 때문에 주리 씨와도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죠. 그리고 주리 씨 생각은 모르겠지만… 주리 씨도 저를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내가 빠지면 혼자 남을 텐데 그러면 안 된다’고 서로 생각한 거죠. 주리 씨랑 분과 끝나고 종종 같이 밥을 먹었거든요. 그때 나누는 얘기가 좋기도 했어요. 동갑이고, 진로도 성향도 비슷했거든요. 그 당시엔 주리 씨 덕에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선희 최근 민언련 고민이 20대 회원 모시기(?)인데 김상경 회원 얘기를 들어보면 재미가 중요한 것 같아요.
김상경 우선은 재미죠.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본 것을 정리하고, 분석해서 보고서를 쓰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재밌더라고요. 또 방송 프로그램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명분이 생기는 거잖아요. 마음 편하게 TV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민언련이 20대 친구들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분과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등산도 가고 독서모임도 하고 있는데요. 분과활동이 더 가벼운 모임으로 파생돼서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는 거죠. 저는 이 순서를 바꿨으면 해요. 물론 모니터 재밌어요. 하지만 한정적인 사람들만 올 것 같아요. 전공이 신문방송학이거나 저처럼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친구들만요. ‘이런 데는 아무나 못 가는 곳이구나’ 하고 프레임이 생길 것 같아서 처음엔 20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조선희 부드럽고 유연한 모임이 필요하다는 거죠?
김상경 네. 그리고 새로운 회원을 만들 때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분과원과 회원을 잘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회원들이 주변 지인을, 그 사람이 또 자신의 지인을 데려오면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자리를 위해 일종의 ‘방송분과 홈커밍데이’ 같은 걸 자주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청년 참여, 기성세대 배려가 필요하다
조선희 2016년 올해의 회원상 수상소감 기억하나요? ‘민언련 회원으로서,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무너지는 한국언론의 지형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김상경 당시 간사님이 절 놀래 주려고 말을 안 해줘서 당일 날까지 몰랐어요. 총회 가서 책자를 읽어보니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당시 신문분과 대표로 나경렬 회원님이 회원상을 받았는데 그때 엄청 웅장한 수상소감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방송분과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수상소감을 말했죠.
그땐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부재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잖아요. 언론계 종사하는 당사자들이 언론개혁을 앞장서서 외쳐주었고요. 하지만 더 많은 시민과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게 있었나 봐요. 그래서 수상소감에서 그렇게 얘기한 것 같고요. 언론개혁이 필요한 일에 제가 언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 나서서 하겠다는 다짐이었죠.
조선희 또 관심 있는 언론 문제가 있다면요?
김상경 뉴스가 다루는 대상이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정쟁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만 좀 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많았으면 해요. 소수자나 약자들의 애환을 짚어주는 이야기들요. 뉴스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민언련에 감사해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어주면서 소수자나 약자들의 이야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할 때 있잖아요. 일례로 이주노동자나 발달장애인이 사망했을 때 민언련만큼 명확한 근거를 갖고 ‘이런 보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곳이 없어요. 그런데 민언련이 이런 얘기를 힘 있게 해주면 언론계 종사자들도 ‘이게 많이 필요하구나’ 각성하지 않을까요? 기성 언론에서 다른 이슈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부분을 민언련이 얘기해줄 때 민언련 회원이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고 있던 문제의식을 민언련이 대변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요. 그런 활동을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낼 방법을 묻자 김상경 회원은 '기성세대의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조선희 자연스럽게 민언련에 바라는 점으로 넘어가게 되네요.
김상경 먼저 교육인데요. 코로나19 때문에 진행하기 어려운 걸 알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뉴스나 미디어 콘텐츠를 수용하고 소비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가 있을 거예요. 그분들을 위해서 교육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고요.
계속 20대 회원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젊은 활동가들이 민언련 정책을 고민하고 구상하는 자리에서 더 많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민언련 의사결정 구조는 잘 모르지만, 소수가 이끌어가기보다는 비율을 정해서라도 활동가들이 의견을 가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시민단체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경험해 본 시민단체 핵심 연령대가 40~50대 이상이더라고요. 그럼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일은 연세가 있는 분들만 할 수 있구나’라고.
조선희 올해 김상경 회원이 민언련 총회준비위원회에도 들어갔는데요. 유일한 20대 여성회원이었죠?
김상경 제가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못했지만요. 다음에 이런 자리가 있다면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을 잘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설사 돌아오는 대답이 ‘동의합니다’라고 하더라도 ‘누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봐 주는 거죠. 제가 20대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회 대부분 분야에서 기성세대의 배려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선희 20대 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싶던 민언련이 경청해야 할 말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회원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김상경 곧 5월이 다가오잖아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어려울 수 있지만 모두 광주순례를 한 번쯤은 가봤으면 좋겠어요. 광주순례를 혼자 가긴 쉽지 않아요. 저는 서울에 사니까 광주까지 혼자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요.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부분이 있는데 민언련에서 다 준비해주니까요. 무엇보다도 저는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사실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시민의 숭고한 희생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일반 시민으로서의 내 생각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광주에 가서 실제로 보면 유가족, 희생자 모두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사는,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희생자 중엔 중학생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더라고요. 평범한 사람들이 불의에 저항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은 내 얘기, 우리 얘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 회원님들, 꼭 광주에서 만날 수 있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5년간 방송분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같이 함께한 분과원 분들과 간사님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역할이 8할 이상이었어요. 혼자서는 오래 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함께 만난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좋았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있고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부족한 저와 함께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작성 조선희 미디어팀장
사진 이병국 이사
영상 고은지 활동가
▼날자꾸나 민언련 2021년 여름+가을호(통권 219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2021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