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 블루스 Habana Blues>
감독 베니토 잠브라노 주연 알베르토 요엘, 로베르토 산마르틴 개봉 2005년, 스페인·쿠바·프랑스
무대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 (아바나는 스페인어로 ‘La Habana‧라 아바나’, 영어로 ‘Havana‧하바나’이다.) 영화 <하바나 블루스 Habana Blues>에 등장하는 무명 뮤지션 루이와 티토는 가진 것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어느 날 ‘스페인 스카우트’라는 일생일대 제안을 받고 부푼 꿈으로 설렌다. 하지만 사실상 노예계약이란 걸 알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영화 내내 올드 아바나 뒷골목 풍경과 진심으로 음악을 즐기는 쿠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루이와 티토가 음악을 생명처럼 여기며 고단한 일상을 극복하듯 쿠바 사람들에게 음악은 아픔을 치유하는 원동력이다. 한 번쯤 아바나를 방문하길 권유한다. 말레콘 방파제를 걷고 나면 절로 블루스 선율이 떠오를 테니.
뜨겁고 강렬했던 아바나로 돌아가다
내가 <하바나 블루스>를 본 건 2005년 8월 중순 과테말라 수도 과테말라시티 시내에 있는 ‘미라 플로레스 Mira Flores’ 극장에서다. 당시 나는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겸 과테말라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그해 2월 쿠바 아바나를 다녀온 지 6개월 남짓, 영화 내내 등장한 아바나 풍경이 고스란히 마음에 스몄다.
2005년 2월 처음 아바나를 방문해 사라 아주머니댁에 머물렀다. 28일 동안 쎄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쿠바 사람’처럼 지냈다. 쿠바 사람들은 나를 ‘안또니오’라고 불렀다. 그토록 뜨겁고 강렬한 경험은 드물었다.
15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2020년 12월 난 다시 아바나에 갔다. 회사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고심 끝에 코로나19를 뚫고 43시간을 날아갔다. 인천-샌프란시스코-파나마시티-아바나. 아바나 호세 마르띠 국제공항에서 코로나 PCR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며 40시간 동안 자가격리했다. 아바나에 (돌아)왔다는 안도와 혹시나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올 거란 불안이 교차했다. 양성이면 다른 방법이 없다. 쿠바 정부 방역지침을 따라야 했다.
무명 뮤지션들의 이야기와 신나는 쿠바의 음악이 어우러진 영화 <하바나 블루스>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주인공이 걸었던 그 골목
<하바나 블루스>엔 주인공 루이와 티토가 아바나 골목을 걷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아바나에 오래 산 사람도 올드 아바나(Habana Vieja‧아바나 비에하) 골목이 자주 헷갈린다.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해 설계한 도시지만 거미줄처럼 엮인 골목을 단번에 알아보고 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다행히 누구에게 길을 물어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기가 모르면 지나가는 다른 이에게 길을 물어 알려준다.
이번 여정에서 아바나 골목길 여기저기 많이 걸었다. 웬만한 장소는 주소만 있으면 찾아갈 수 있다. 지도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고,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갈 수 있다. 혁명박물관, 라 플로리디따, 비에하 광장, 말레꼰. 구도심 외곽에 있는 네 거점을 중심으로 ‘몇 번째 골목에 있는지’를 파악하면 발품을 덜 팔아도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올드 아바나 초입에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빙빙 돌았던 적도 있다. 정말이지 눈여겨보지 않으면 골목이 죄다 비슷해 보인다.
쿠바를 상징하는 말레꼰 전경(위), 높은 곳에서 본 아바나 골목길(왼쪽 아래), 아바나 골목길의 한 풍경(오른쪽 아래) 출처=김현식 회원
지금은 한적한 쿠바 상징 ‘말레꼰’
쿠바를 상징하는 대표 건축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말레꼰(Malecón)을 선택한다. 말레꼰은 거센 카리브 파도를 방어하는 둑, 방파제이다. 방파제 길이는 아바나 항구에서 올드 아바나, 센트로 아바나, 베다도를 지나 알멘다레스(Almendares)강 하구까지 8km이다. 1898년 12월 10일 파리 조약에 따라 스페인이 쿠바에서 철수한 후 1901년 미국 임시로 통치하던 시절에 공사를 시작했다. 1902년 5월 20일 쿠바 공화국을 선언하기 1년 전이다. 높이 1m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은 1920년대 중반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 제방과 인도, 도로까지 쿠바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대형 공사였다.
말레꼰을 완주하려면 보통 걸음으로 2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다리가 아플 즈음 방파제에 걸터앉아 코발트색 카리브를 감상하며 크리스탈 맥주 한 캔 마시면, 3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2005년 말레꼰을 서성이며 간이 카페에서 맥주와 모히토를 마셨다. 당시만 해도 크리스탈이나 부카네로 맥주 한 캔이 1달러, 모히토도 1달러를 넘지 않았다. 카리브 바람이 워낙 매력 있어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질 않았다. 본디 매력이 차츰 마력으로 바뀌어 취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말레꼰은 한적했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파도가 거셌다. 어떤 날엔 방파제를 넘어 도로까지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왔다. 말레꼰 정경은 낮에도 밤에도 근사했다. 고요한 밤 풍경을 바라보자니 예전 말레꼰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그리웠다. 우리 삶이 조금 나아져, 기다란 둑을 따라 연인과 나그네, 동네 사람들과 이방인 발길이 가득하길 바란다.
바람, 햇살, 자유 그리고 쿠바
2020년 나를 뒤흔든 가장 중요한 단어는 ‘쿠바’였다. 이 중 ‘아바나 뒷골목’과 ‘말레꼰’은 해묵은 그리움과 로망을 부드럽게 해소했다. 남들이야 어떻든 나 홀로 은밀하게 걷다 보면 어느새 자유롭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 근거가 부족한 짜증과 미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지만, 결코 한 뼘도 떠나지 못하는 미련 따위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롭다. 아바나 골목을 따라 바람이 흐르고 햇살이 지나갔다. 말레꼰 방파제 너머 강인한 카리브 바람이 밀려왔다. 나도 따라 걸으며 마스크 너머 열렬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2021년 3월, 세 번째 아바나 방문을 앞두고 있다. 16년 만에 영화 <하바나 블루스>를 다시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바나 삶이 고단하다. 최선을 다해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부디 안녕과 희망의 빛을 기원한다.
글 김현식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1년 2+3월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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