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은 오직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바쳐질 것이다.”
젊은 시절, 베토벤은 고향 친구 베겔러에게 이렇게 썼다. 그는 1770년 12월 16일 태어났으니 올해 탄생 250년을 맞는다. 세계에서 축하 콘서트와 토론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축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생생한 메시지까지 코로나가 덮어 버릴 수는 없다.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를 세 개로 요약해 본다.
오늘날 더욱 빛나는 베토벤의 삶과 이상
첫째, ‘불굴의 인간 의지’. <베토벤의 생애>를 쓴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일생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고 했다. 어릴 적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음악을 익힌 그는 14살 무렵부터 소년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22살 때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작곡가로 명성이 절정에 오를 무렵 청각장애가 심해져서 좌절했다. 그는 번번이 사랑에 실패했고 점점 더 고독해졌지만, 자신의 비극을 숭고한 예술혼으로 극복해서 인류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걸작들을 남겼다.
둘째, ‘상처 입은 치유자’. 그는 자신의 상처를 이겨낸 힘으로 후세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1802년 10월에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서 청각상실로 겪은 고뇌와 외로움을 토로했지만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바로 그것뿐이었다”고 덧붙였다. 홀로 죽음과 직면한 그는 결국 삶을 택했고, 후세를 향해 외쳤다. “세상의 불행한 사람들이여,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고 위안을 얻으라!” 지금도 살아 메아리치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목소리다.
셋째, ‘시민민주주의의 아들’. 젊은 시절 나폴레옹의 혁명에 열광했던 공화주의자 베토벤은 1815년 유럽 혁명이 수포로 돌아가고 반동체제가 성립된 후 내면으로 망명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1824년 위대한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를 힘차게 선언했다.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본의 주술이 초래한 극한 생존경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이 판치는 요즘, “인습의 칼날이 갈라놓은 장벽을 넘어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는” 베토벤의 이상은 더욱 강력하게 메아리친다.
1808년 12월 22일, 베토벤의 화양연화
1808년 12월 22일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오스트리아 빈의 마리아힐프에 있는 극장)’에서 열린 연주회는 베토벤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해서 10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에 걸쳐 이어진 이 음악회에서 베토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피아노를 치고 지휘를 했다.
1808년 12월 22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지휘하는 베토벤 출처=멜번 심포니 오케스트라
1부에서 6번 F장조 <전원>이 먼저 연주됐다. 파죽지세로 미사 C장조를 지휘한 그는 피아노 앞에서 협주곡 4번 G장조를 연주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안 맞아서 연주가 중단되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베토벤의 열정은 청중들을 압도했다. 이 어마어마한 연주회를 지켜본 작곡가 요한 프리드리히 라이하르트는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독한 추위 속에서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그곳에 앉아, 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장점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긴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은 2부 첫 곡으로 교향곡 5번 C단조를 지휘했다. ‘클래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운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교향곡은 “운명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삶을 긍정하는” 베토벤의 힘찬 모습을 보여준 작품으로, 트롬본과 피콜로가 활약하는 승리의 피날레는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훗날 이 곡을 들은 괴테는 “당장이라도 천장이 와르르 무너질 듯 마구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
(2020년 3월 12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연주)
초연 때 청중들은 5번 C단조보다 6번 <전원>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분위기였다. 5번 C단조가 운명과 투쟁하는 강렬한 베토벤의 얼굴이라면, 6번 <전원>은 인간과 자연을 한없이 사랑하는 따뜻한 베토벤의 얼굴이다. 두 곡 모두 “고뇌를 넘어 환희로” 가는 베토벤의 인생 모토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6번 <전원>은 이 모토를 한층 부드러운 형태로 이야기했다. 4악장 ‘폭풍과 뇌우’는 자연의 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다. 5악장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 부르는 양치기의 감사의 노래’다. 태양이 다시 빛나고 무지개가 뜨자 인간은 고요히 감사 기도를 드린다. <전원> 교향곡은 베토벤이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운명과의 투쟁과 승리도 위대하지만, 삶의 불행과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게 더 어렵고, 더 위대한 일 아닐까.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산책하는 베토벤 출처=러시아 사이트 Immersion in the classics
베토벤의 가장 아름다운 곡, 가장 즐거운 곡
베토벤 탄생 250년을 축하하면서 함께 음악을 듣자.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곡,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의 5악장 ‘카바티나’! 베토벤은 이 곡에 순박한 마음을 담아 인생에 대한 감사를 노래했다. ‘카바티나’는 짧고 단순한 노래란 뜻으로, 베토벤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한 곡이다.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13번 Bb장조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 5악장 카바티나는 23:28, 6악장 피날레는 30:39부터)
이어서 그의 작품 중 가장 즐거운 6악장 ‘알레그로’! 이 피날레는 사연이 길다. 베토벤이 이 사중주곡을 위해 원래 쓴 피날레는 연주 시간 15분이 넘는 ‘대푸가(Grosse Fuge)’였다. 1826년 3월 이 곡이 초연됐을 때 청중들은 이 ‘대푸가’가 너무 어렵다고 느꼈고, 언론은 “이해 불가능하다”고 평했다. 이 소식에 베토벤은 “짐승들! 멍청이들!”이라며 분개했다. 아르타리아 출판사에서 좀 더 쉽고 단순한 피날레를 새로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베토벤이 순순히 동의한 것은 의외였다. 베토벤은 “제일 좋은 게 바로 그 대목인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덜대면서도, 이순(耳順)에 접어든 거장답게 이 요구에 응해서 즐거운 피날레를 새로 작곡한 것이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 '대푸가(Grosse Fuge in B Flat Major)'의 육필 악보 출처=경향신문 <베토벤의 친필 악보>(1970월 1월 1일)
인생을 달관한 뒤 얻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이 피날레,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이 그의 작품 중 가장 즐거운 곡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글 이채훈(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12월+2021년 1월호 PDF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