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윤활식 선생이 동아투위가 마련한 구순잔치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
‘세월유수(歲月流水) 광음사전(光陰似箭)’. 그야말로 흐르는 물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내달립니다.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에 머문 것 같던 2020년이 휙 하고 지나더니 2021년도 한 달을 훌쩍 넘겼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올해로 창립 37주년을 맞았습니다. 언론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진 해직언론인들과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한 활동가들,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언론을 바로 세우겠다고 나선 회원 분들이 함께 일궈낸 ‘역사’입니다.
창립된 1984년부터 지금까지 37년을 날짜로 환산하면 1만 3,505일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 평화적 정권교체, 문민정부 탄생,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시간이었습니다. 민언련의 여정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지요.
새해 1월 2일, 삶 자체가 민언련 역사인 윤활식 민언련 고문이 향년 91세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윤 선생은 자유언론수호 운동을 하다 1975년 3월 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옥에서 강제로 쫓겨나면서 ‘거리의 언론인’ 길을 걷게 되었죠. 기자‧PD‧아나운서 등 113명이 해고당할 때 동아방송 제작부 차장으로 고참 PD였던 윤 선생은 간부로서는 드물게 합류했는데요. 1978년 ‘민권일지’ 사건 동아투위 소식지 발간으로 구속돼 감옥에서 딸의 결혼식을 맞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해직언론인의 큰 고난은 경제적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윤 선생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월간 <말> 발간과 ‘보도지침’ 폭로, <한겨레신문> 창간 등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동아투위 ‘최고참 위원’으로 언제나 앞장섰습니다. 제가 처음 민언련에 들어온 1991년만 해도 해직언론인 선배들이 활발하게 참여했는데 윤 선생의 겸손한 리더십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영정으로 재회한 선생은 예전의 따뜻한 미소로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강제해직 이후 46년을 투쟁했지만 국가와 동아일보 어느 누구의 사과도 받지 못했지요. 하지만 “적당히 살다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며 언론민주화란 가시밭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새겨진 민언련 새 사옥이라도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독립운동가인 선친의 가르침에 따라 ‘정의와 불의가 맞설 때 정의에 편에 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윤 선생은 어려울 때마다 선친이 자신을 인도하는 별이 되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재보궐선거뿐 아니라 내년 치러질 대선‧지방선거까지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입니다. 보수언론은 신년 벽두부터 정권심판론, 정권교체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아투위는 2020년 4월 8일 창간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앞에서 ‘친일‧독재찬양‧반민주‧반노동’ 보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거짓과 배신의 역사를 끝내라고 외쳤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또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에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윤활식 선생이 동아일보 강제해고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낸 이유입니다.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 민언련이 하겠습니다. 김종철 전 동아투위 위원장의 당부처럼, 하늘나라에서도 언론개혁을 인도하는 별이 되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사무처장 신미희
▼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12월+2021년 1월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_______2020__12__1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