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책이야기] 혐오 발언의 온상, 미디어
등록 2020.10.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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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혐오하셨네요》(박민영, 북트리거, 2020)는 부제에서 보듯이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를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혐오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논리적 맥락 속에 있으며,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지,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인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저자는 혐오를 ‘세대 혐오’, ‘이웃 혐오’, ‘타자 혐오’, ‘이념 혐오’, 이렇게 4장으로 분류를 한 뒤 장마다 또 네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세대’에서는 청소년 혐오, 20대 혐오, 주부 혐오, 노인 혐오로 나누는 식이다. ‘이웃’에서는 동성애자 혐오, 세월호 혐오 등 네 가지가 있고, ‘타자’에서도 조선족 혐오, 탈북민 혐오 등 네 가지가 있다. 꼭지로 들어가 보면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이 혐오 바이러스가 퍼져 있었구나 하고 놀랄 정도다. 급식충, 맘충, 룸나무,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지공거사 등 혐오하는 조어도 많이 만들어 놨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중2병’도 청소년 집단을 병리화한다는 점에서 혐오하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미디어가 있는 곳에 혐오도 있다

저자는 이렇게 혐오하는 말을 만든 것은 미디어 탓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급식체 같은 인터넷 신조어를 퍼뜨리는 것은 기성 언론인데, 예능 프로그램들이 재미를 위해 인터넷 신조어를 자주 쓴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 혐오를 공기처럼 만드는 일등공신’이 미디어들이라고 단언한다. 미디어의 모든 곳에 여성 혐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정의당 류호정이 국회에 분홍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고 수구 의원들과 극우 성향 누리꾼들이 본회의 당시 찍힌 류 의원의 사진을 두고 각종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일부 언론은 류 의원이 그동안 국회에 입고 나온 옷을 ‘화보’ 형식 기사로 만들어 게재하기도 했다. 기사만 팔리면 된다는 식이다.

 

저자는 중국 동포 혐오의 주범도 미디어로 본다. 그중에서 영화가 일등공신이다. 〈황해〉, 〈아수라〉, 〈범죄 도시〉, 〈신세계〉, 〈차이나타운〉 등을 보면 중국 동포가 살인 청부업자, 조직폭력배, 인신매매범으로 나온다. 중국 동포들이 화가 날 만도 하다. 지난 2019년에는 ‘중국동포 혐오차별 철폐 범민족통일대회’까지 열렸다. 그 대회에서 최려나 집행위원장은 “건전한 공론장의 역할을 해야 할 미디어가 가상의 혐오와 차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며 “중국동포들이 극악한 범죄 집단이라는 오해와 편견이 문화와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포 및 소수자 편향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제작 유포하는 한국의 방송 언론 행태를 규탄하고 차별금지법 등 조속한 법적 정비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동감이다. 법과 제도로 강제하면 그런 차별을 부추기지 못할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미디어는 현실을 ‘구성’한다

되돌아보면 전두환 시대에 나왔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하류 계층이나 깡패 역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배우가 등장할 때가 많았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깡패하고는 격이 떨어지는 ‘찌질이’나 푼수 끼 있는 역이었다. 전두환 독재정권과 족벌 언론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국민들이 세뇌당했기 때문이었는지 당시엔 전라도 출신들을 지칭하는 노골적인 혐오 표현이 많았다. 이제 그런 전라도 비하나 혐오는 줄어든 것 같은데, 대신에 중국 동포나, 예멘 난민, 이주 노동자 등을 혐오하는 행태가 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 미디어는 단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로 현실을 구성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사회적으로 공적인 역할을 하는 미디어나 언론은 자신의 거대한 영향을 늘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책 24쪽)

 

하지만 수구 언론들은 스스로 성찰하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 같은 수구 언론이 성찰이라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아주 강도가 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종북 딱지까지 붙이는 혐오나 가짜뉴스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아니 나아가서 종북 딱지, 빨갱이, 그 낱말의 뿌리였던 ‘국가보안법’부터 없애야 한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가 되지 못하는 내용도 있다. ‘박사모’, ‘가스통 할배’ 등으로 대표되는 극우 노인들이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인정 투쟁’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극우 노인들이 인정을 받기 위해 그런 집회에 나온다는 말인가? 그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혐오를 다루고 있”고, “객관적 판단과 인식의 변화를 돕기 위해” 쓴 책이라고 밝힌다. 사유가 깊은 책인데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면서 내 안에는 혐오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지 않은지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혐오가 과연 어디서 시작됐을까. 저자는 해방 뒤 친일파 청산을 못 한 것이 혐오 등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될 것이다.

 

안건모 회원(월간 〈작은책〉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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