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입 활동가 박채린입니다. 활동가 인사글을 쓰기 위해 한글 파일을 열어두고 꽤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3개월 동안 활동가로서 느낀 점과 앞으로의 포부를 적으며 회원분들께 인사해야겠다 생각했지만, 한 글자도 쉽게 쓰이질 않았습니다. 3개월 동안 꽤 어렵고, 복잡했고, 매 순간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 회원분이 제게 "앞으로 좀 더 많이 이야기해요"라고 하셨는데요. 복잡한 생각을 힘들게 푸는 대신, 제 인생에 기억에 남는 순간을 회원분들과 공유하며 편하게 말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였는데요. 관련 소식을 활자로 읽을 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다큐를 보고나선 뭐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올랐어요. 다큐를 만든 PD에게 한번만 만나달라 트윗을 보냈습니다. 2013년 당시 언론탄압이 극심했고, 노동현장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파를 타기도 쉽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제작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학생일 뿐이었던 제게 흔쾌히 시간을 내준 PD는 어떻게 이 다큐를 찍게 됐는지, 지금까지 어떤 다큐를 만들어왔는지, 자신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따뜻한 목소리로 알려줬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계기가 돼 해안도로 조성으로 사라질 뻔한 해안사구를 지킬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길 해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어요. "그 프로그램하면서 '내가 살면서 해야 할 착한 일은 이걸로 다했다'하고 생각했죠." 딱 그때, 나도 저런 말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런 꿈을 품고 학생기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알바보다 못한 인턴'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요. 이 기사로 고소를 당할 뻔 했어요. “루브르 박물관장도 청소한다고요?”라는 제목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취재원이 한 말 “루브르 박물관장도 허드렛일한다며 제게 청소를 시켰어요”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 관장은 “루브르 관장도 뭘 한다던데~”를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이었어요. 이 때문에 관장과 취재원의 신원이 드러나버렸어요. 고소 이야길 듣곤 좋은 경험이 되겠다 잠시 생각했지만, “저 취직 못해요”라며 울먹이는 취재원의 목소리를 듣고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기사도 '사람'을 위한 것이고, 제 역량이 부족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제목과 기사의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지금도 바뀐 제목, 일부가 잘려나간 기사를 보면 마음이 쓰려요. 하지만 동시에 기사 하나가 여러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한 계기도 됐죠. 이러한 언론을 감시하고, 좋은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PD가 말한 ‘착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민언련의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제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서 일하게 돼 기쁩니다. 제 은사님은 저의 합격 소식을 듣고 "민언련에서 일하면 29~30일간 보람차고 기분이 좋을 거다. 그러니 월급날 하루 기분 나쁜 건 참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거짓말을 많이 보태긴 했지만, “월급날을 포함해 한 달 내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한 달 내내 행복하고 좋은 일을 더 많이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회원분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또 공부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엔 좀 더 성장한 활동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9.10월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_______2020__9.10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