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의 미디어 탈곡기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미디어 탈곡기의 소녀 가장, 김나랩니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5시 45분 <미디어 탈곡기>로 인사드리고 있어 ‘신입 활동가 인사 글 정도야!’ 생각했는데요. 막상 인사말을 쓰려니 쑥스럽습니다. 싸이월드 시절 백문백답을 쓸 수도 없고(백문백답 쓸까? 3초 고민했는데 종이에게 미안해 접었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나 칼럼니스트들처럼 멋들어진 글을 쓸 자신도 없어서요. 대신 솔직하게 ‘민언련과 함께하게 된 김나래’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폼생폼사]
“갑자기 90년대 아이돌 노래 제목은 뭐야?”라고 생각하셨나요? 노래 제목도 맞지만 실은 제 인생 좌우명입니다. 노래와 다른 게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폼’은 1)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2) 옳은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3) 세상에 좀 더 나은 변화를 끌어내는 것. 이 세 개의 집합체죠. 이 나름 거창한 ‘폼’을 이루려면 어떤 집단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면 될까? 고민하던 제가 점찍은 곳은 언론 그리고 교양 PD였습니다. 우리 주변을 담아 사회에 화두를 던지고 시민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니까요.
그렇게 그 길만 보고 달렸습니다. PD 하겠다고 대학교 방송국에 들어가 교내 문제를 알리고 학교의 변화를 촉구해냈을 때. 586세대 은퇴한 중년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외부에서 상을 받았을 때. 그럴 땐 마냥 행복했습니다. 뭔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것 같았으니까요. 그랬던 저니 언론사 인턴에 합격하고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직접 기자들과 선후배로 의견을 나누고 현장을 뛸 기회를 얻은 거니깐요.
그런데 작은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현장을 가보니 제가 언론을 통해 보던 세상과 현장이 달랐거든요. 나 홀로 카메라를 들고 화재 피해를 당한 시장 취재를 갔었습니다. 화재 이틀 후, 합동 감식 현장을 담기 위해 나온 거라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신문에서도 다들 “고위공무원 아무개가 화재 피해를 본 상인들을 찾아 위로했다”, “제1금융권 어디는 지원금을 약속했다” 위주로만 이야기했으니 금방 해결될 것이란 믿음도 있었고요.
이미 스포를 했듯, 현장은 달랐습니다. 잠깐 짐만 빼 오겠다, 장부가 안에 있다 울고 있는 상인. 미리 줄을 서지 못해 임시 가판대도 얻지 못해 대응 본부와 싸우고 있는 상인. 그 혼란 속 제가 기사를 통해 봤던 고위공무원과 은행이 도와 해결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우리는 화면 채우는 들러리로 쓰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른다”며 제 카메라를 뺏고 울던 이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운 나쁘게 카메라를 뺏긴 건 저였지만, 그의 분노가 향한 건 자신들을 보지 않는 언론사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뛰어보니 뉴스와는 다른 현장. 노동 문제에 목소리 높이던 방송국이 막상 계약직 노동자가 된 내 친구를 “예산이 부족해서요”라며 카카오톡 메시지로 손쉽게 해고하는 현실. ‘폼생폼사’로 살아야겠는데 과연 ‘폼’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민언련을 만났습니다. 제가 꿈꿔오던 ‘폼’이 제대로 폼날 수 있도록 매섭게 감시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여기는 좀 다를까?” 지원서를 쓸까 말까 고민하던 제게 “누나는 PD도 어울리지만 활동가는 찰떡이야. 거기다 영상 활동가래. 누나 자리다!” 기자 준비생 동생의 응원에 힘입어 지원서를 쓰고 어쩌다 보니 활동가로 3개월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코시국에 저를 뽑아준 민언련에 감사합니다. (웃음) 아직은 혼자 3인분씩은 거뜬히 해내는 선배 활동가들에 비하면 1인분은 겨우 하나 자괴감도 때로 듭니다. 담당한 미디어 탈곡기에 생각지 못한 진행자까지 맡게 돼 얼떨떨하고요. 그래도 좌우명대로 폼나게, 내가 사랑하는 언론이 내가 정의한 ‘폼나는’ 언론이 될 수 있게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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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9.10월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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