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영화이야기] 주체적으로 ‘정직한 후보’, 우리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등록 2020.06.0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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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이 끝났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투표율은 높았다. 국민들의 시민의식 덕분이다. 정치권은 더 많은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거대 정당들의 꼼수로 뒤틀어져 버린 선거제도부터 정치인 개개인의 일탈과 막말까지, 선거가 끝나자 선거공보에는 없던 후보들의 이력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일단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과 위선이다.

 

어느 순간 정치와 정직이란 수사가 어울리지 않은 단어가 됐다. 정치인들의 위선을 알기에, 진실만을 말하는 후보가 있다고 한다면 코웃음부터 나올 것이다. 그 코미디 같은 현실을 영화 ‘정직한 후보’는 상상한다.

 

3선 정치인 주상숙(라미란)은 거짓말이 세상에서 제일 쉽다. 4선 선거를 앞두고 스님 앞에서는 묵주를, 목사 앞에서는 기도를, 천주교인 앞에서는 성호를 긋는다. 새 구두를 낡아 보이게 하기 위해 발을 밟아주는 보좌관 박희철(김무열)과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당대표와 함께 한 다른 후보와의 야합까지 정치인 주상숙의 4선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정치 인생도 할머니(나문희)의 간절한 소원으로 뒤바뀌게 된다.

 

주상숙의 할머니인 옥희는 전 재산을 옥희 사학재단에 기부하고 죽었다고 알려졌다. 주상숙이 3선까지 한 이유에도 할머니의 후광이 있다. 하지만 돌아가실 줄 알았던 옥희 할머니는 살아있었다. 손녀를 위해 은둔 생활을 하는 옥희 할머니는 3선 정치인 손녀에게 세 번째 손가락을 날리며 말한다. “옛날에는 착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는 안 보여. 평생 거짓말을 하고 살게 만들다니.” 할머니의 죽음까지도 정치적으로 이용한 그녀는 되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져서 그렇다며 너스레를 떤다. 할머니도 처음에는 그녀가 정치인이 되길 원했지만 할머니의 소원은 이제 그녀가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다. 4선 정치인 되고 싶다는 주상숙의 소원 대신 하늘은 정직한 후보가 되라는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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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꿈꾸던 정직한 후보. 주상숙의 입에선 이제 ‘해야 하는 말’ 대신 생각 그대로 말이 나온다. “나는 서민의 일꾼” 이란 수사대신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고 말한다. 집에 온 시어머니에게 “불청객”이라고 스스럼없이 내뱉고, 자서전 출간 기념식에서 모든 것이 “대필”이라 자폭한다. 그간 사탕발림만 늘어놓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머리카락마저도 가짜라며 가발을 벗는 주상숙의 ‘쿨내’에 국민은 불편함을 넘어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치를 그만뒀어야 했나 고민했던 주상숙도 의외의 관심에 선거 전략을 변경해버린다. "언젠가 대통령 한번 해 먹어 보고 싶긴 해요. 다들 그렇지 않나?" 건국 이래 가장 솔직한 정치가로 선거 프레임을 바꾸고, 도덕적 잣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국회의원이자 동시에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여성 정치인으로서 을에 위치한 주상숙은 솔직함을 무기로 대한민국 사회의 위선과 비리를 까발린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고질적 정경유착, 외국인 차별, 사학비리, 병역특혜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적 문제를 영화에 담는다.

 

모든 진실을 까발린 듯하지만 주상숙에겐 아직 마음의 짐이 있다. 아들에게 자신이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다. 혹여나 아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을까 그녀는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 언론은 그녀의 해외 원정 출산에 대한 진실을 요구한다. 주상숙은 남편이 외국에서 데리고 온 혼외자식이라 말하는 대신, 아들의 입대로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새 정보를 입수한 언론은 이미 그녀의 아들이 혼외자식이라 대서특필한다.

 

“8살 때 알고 있었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주상숙은 아들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하지만 아들의 태도에선 생각보다 진실의 무게가 무겁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실수도 욕심도 인간이기에 반성하고 노력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반성 없이 순간을 모면하려고 위선을 일삼는 태도다. 거짓말을 더 큰 거짓말을 낳고, 반복된 거짓은 한순간의 실수보다 비도덕적인 태도다.

 

영화 말미 옥희 할머니는 죽는다. 주상숙은 다시 원래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번엔 주체적으로 거짓 대신 진실을 택한다. 장학재단의 문제, 그간의 위선을 인정하고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로 한다. 스스로 검찰에 출석해 감옥에 갔다 온다. 죽은 할머니의 정신에 따라 모든 돈을 피해 장학생에 기부한다. 책임까지 지려는 진실한 정직이다. 하늘의 뜻이 아닌 스스로의 뜻으로 서울 시장 선거에 정직한 후보가 되어 다시 시작한다.

 

정직한 후보가 소원이 되고 역설이 돼 버린 사회에서 영화의 풍자에 한참 웃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는 후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진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후보들이 진실 대신 거짓말로 우리의 눈을 가릴까. 대중적 이슈 몰이를 위한 솔직함을 넘어 책임까지 지는 정직함은 과연 가능할까. 선거는 끝났지만 영화 <정직한 후보>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재홍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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