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거침에 대하여
홍세화 저│한겨레출판사, 2020년
20 대 80의 사회가 된 까닭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 선생의 책이 나왔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결: 거침에 대하여》다. 제목에 나온 ‘거침’은 ‘거칠다’의 명사형, ‘거칢’의 오타다. 한겨레출판사의 실수다. 모두 4부로 나뉘어 있고 230여 쪽 되는 책이다.
홍세화 선생은 이 책에서 우리는 이 땅의 기득권 세력들한테 ‘자유를 빼앗겼다’고 말한다. ‘공산세계’의 대립물로 절대 긍정화한 ‘자유세계’라는 허구 위에서 정권의 비판 세력을 빨갱이, 친북좌경으로 몰아 제거하면서 기득권을 유지·강화해 왔고, 그것이 이승만의 자유당에 담겼고 오늘날 자유한국당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레이코프의 말을 인용해 “자유전쟁에서 ’자유를 빼앗기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자유 개념을 빼앗기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개념을 빼앗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항과 혁명을 상징하는 빨간색도 빼앗겼다. 그렇게 ‘빨갱이’를 싫어한다는 수구 세력들이 선거 때만 되면 빨간 옷을 입고 다닌다. 태극기도 빼앗겼다. 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던 독립군들이 품고 다녔던 태극기를 지금은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과 독재자를 추종하는 ‘태극기부대’들이 들고 다니고 있다. 홍세화 선생은 ‘자유’의 참뜻을 되새기고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홍 선생이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지금 갖고 있는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형성됐냐고.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에 대한 물음, 사회에 대한 물음의 학문으로 정답이 없고 사유와 논리가 중요’한데 생각, 즉 회의하지 않고 주입되고 외우기만 했으니 고집만 남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을 설득하지도 못하고 설득당하지도 않는다.
회의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가 주입돼 그것이 진실인 양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대구 경북 등 일부 시민들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중 어이없는 이유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코로라19가 발생했을 때 중국인들 입국을 막지 않고 방역에 실패한 것,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 등, 잘못된 정책을 펴기 때문에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코로나19 감염병 방역은 전 세계가 한국을 모델로 삼는 판인데 대체 어디서 얻은 정보로 한국이 잘못하고 있다고 믿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떤 부산 시민은 왜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느냐라는 질문에 버젓이 “부산은 골수 야당이니께”라고 대답한다. 부마항쟁의 중심지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거세게 저항했던 ‘야도’가 자한당, 지금 미래통합당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홍세화 선생은 그렇게 된 까닭이 “나는 생각한다”를 학교와 교실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을 예로 든다. 2019년에 출제된 철학 시험 문제는 인문 계열, 사회경제 계열, 자연 계열 세 분야에 각각 세 개씩 논제가 주어진다. 그 중에 몇 가지를 보면 이렇다. ‘시간을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가?’, ‘노동은 인간을 분리하는가’, ‘문화의 다양성은 인류 통합에 장애가 되는가?’ 등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 학생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성인들도 쉽게 쓸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홍 선생은 프랑스인들에게 거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전혀 다른 층위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에서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평가다. 홍 선생은 《20 VS 80의 사회》(민음사 2019)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의 말을 인용해 ‘조국 가족은 하면 안 되는 일까지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리브스가 말한 기회의 사재기에 나섰’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근거는 밝히지 않는다. 대체 그게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조국이다”, “우리가 정경심이다.”라고 외치면서 서초동 집회에 나간 사람들을 “정치인에 대한 호오 감정에 따른 팬덤 정치가 옳고 그름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공감 능력과 감정이입이 일방통행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과연 그럴까. 검찰이 조국과 그 가족들을 70회나 압수수색을 하면서 털어도 털어도 조국 전 장관 비위 사실이 나오지 않자 기껏 딸 표창창으로 기소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최근 <채널A> 이동재 기자가 구속된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 코리아 대표에게 한동훈 검사장과 한 전화통화까지 들려주면서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하고 협박한 사실을 보면 한명숙, 노무현, 조국을 검찰이 어떻게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와 다른 생각도 담겨 있지만 이 책은 2020년의 필독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20이 80을 지배할 수 있게 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비평 에세이다.
글 안건모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5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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