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2020년 5월호] [회원인터뷰] 민언련과 기자협회가 예전처럼 함께 언론개혁을 이끌자 (김동훈 회원)살다보면 당연하다는 이유로 소중한 존재를 종종 잊어버린다. 부모의 사랑처럼. 민주언론시민연합도 마찬가지다. 언론자유를 지키고자 독재권력에 맞섰던 해직기자, 원로 언론인들의 투쟁정신은 민언련이 태어난 ‘뿌리’가 되었다. 우리와 같은 ‘뿌리’를 둔 곳이 있다. 바로 한국기자협회다. 언론개혁 시민운동의 상징이 된 민언련과 이른바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된 기자들의 대표조직 기자협회가 어떻게 같은 뿌리를 갖게 되었을까.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기자 1만여 명이 활동하는 한국기자협회의 탄생은 ‘자유언론 수호투쟁’에서 시작되었다. 1964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하던 악법 ‘언론윤리위원회법’ 저지를 위한 기자들의 투쟁 구심체로 창립된 것이다. 당시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를 위한 행동강령(1971), 언론자유수호결의(1973), 자유언론실천선언(1974)을 잇따라 채택하며 정권의 언론탄압에 분연히 저항했다. 1980년대는 군부독재에 맞서 검열거부, 제작거부 투쟁도 벌였다. 그러나 이후 기자협회는 권력비판이라는 본령보다 직능단체, 이익단체에 머무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회장에 선출된 김동훈 회원. 1991년 처음 개설된 민언련 언론학교 1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30년 전 파릇파릇했던 민언련의 청년회원이 장성하여 한국기자협회장으로 돌아왔다. 선거공약으로 ‘세월호 보도’ 사과를 걸었던 그에게서 언론자유를 위해 떨쳐 일어섰던 기자협회의 결기를 다시 기대해볼 수 있을까. 1992년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에서도 신문모니터 활동을 했다며 자랑스러워한 김동훈 회원. 1995년 <한겨레>에 입사해 법조팀, 정당팀, 기동취재팀을 거쳐 스포츠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부회장과 언론노조 정책실장, 수석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와의 반가운 상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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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에 사죄, 신뢰회복의 첫 걸음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 언론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자협회장에 부임하여 책임감이 남다를 것 같다.
김동훈(한국기자협회 회장) : 당선됐을 때 기쁨보다도 책임감이 무겁고 착잡했다. 기자협회장 선거운동 기간 내내 얘기했던 게 기자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는데 그 출발은 자성과 반성부터라고 생각했다. ‘기레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온 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부터다. 그후 기자 대표라는 사람이 세월호 유가족 분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기자협회장에 당선되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겠다고 공약으로도 약속했다. 저를 포함한 기자협회 임원들이 4월 13일 유가족 대표를 찾아뵙고 반성하고, 사과드리고, 새로운 출발점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신미희(민언련 사무처장) : 세월호 유가족이 기자들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일까? 그동안의 일 때문에 섭섭해 하지 않으실까?
김동훈 :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으로 있던 2015년 4월 14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로 언론노조 대표단이 찾아뵌 적은 있다. 그때 유족들의 차갑고 냉담한 눈초리를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회한이 쌓였겠는가. 다행히 대화가 거듭될수록 유족 분들도 이해를 해주셨지만, 그때는 다양한 직군으로 이뤄진 언론노조에서 찾아뵌 것이라 기자가 많지 않았다. 이번에 기자 대표로서 정식으로 찾아뵙고 사죄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4월 13일 오후 7시에 안산으로 찾아뵌다.
△한국기자협회 임원들은 4월 13일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 6년 전 잘못된 ‘세월호 보도’에 대하여 사과했다. 가운데가 김동훈 회장이다.
신미희 : 김동훈 회원은 오랜 민언련 회원이다.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김동훈 : 대학 때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운동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당시에는 언론운동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민언협을 처음 알게 됐다. 민언협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언론학교가 생겼다. 1991년 제1기 언론학교를 수강했는데 손석희 앵커도 강사였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진숙 MBC 기자도 강사였다. 1992년 총선 당시 선거보도연대회의에서 신문모니터 요원으로 보고서도 쓰고, 보도자료도 썼다. 그때 선거에서 민언협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부영 선생이 당선되어 인터뷰하러 가기도 했다. 수많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이부영 의원이 “민언협 어딨어? 민언협 들어와”라며 저와 제일 먼저 인터뷰를 하셨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기자가 된 청년회원, ‘언론운동’ 포기할 수 없던 이유
이봉우 : 민언협에서 활동한 후 직업기자로서 길을 걷게 되었는데.
김동훈 :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자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은 스포츠 전문기자가 되었다. 사회부가 체질에 맞아서 좋은 기사도 많이 발굴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분야도 하고 싶었다. 기자생활의 3분의 1 정도를 스포츠부에서 보냈다.
신미희 : 기자 생활하기에도 바쁜데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활동까지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김동훈 :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당시 기자들의 대량해고 사태였다. YTN에서 6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는데 그때 <한겨레> 미디어 담당이었다. 당시 광우병 사태를 빌미로 한 MBC PD수첩 탄압, KBS 정연주 사장 탄압 등 굵직한 언론계 사건도 많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2008년 5~8월이 기자생활 하면서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였다. 그러면서 언론운동의 필요성, 언론노조의 필요성, 노조나 기자협회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신미희 : 한국 언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유독 국민의 신뢰도가 낮다. 그 원인을 뭐라고 보는가.
김동훈 : 현재 시민들이 보는 언론, 기자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 원인 제공은 분명 언론이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왜곡, 날조 보도가 결정적이었다. 그 이후 언론의 성찰 속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면서 조금 신뢰를 회복했다고 본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 당시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었다. 언론이 정의를 목적으로 힘을 합쳤을 때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조국 이슈’가 터지자 언론은 다시 우왕좌왕하며 모든 프레임을 보수, 진보로 나누었고, 편 가르기에 혈안이 되었다. 국민들은 또 실망했다.
언론 신뢰도 하락의 원인 중에는 가짜뉴스 문제도 있다.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성도 큰 영향을 미쳤다. 분단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모든 이슈를 진영 대결에 빠뜨리는 장치로 이용됐는데 이게 가짜뉴스를 만들기 용이한 환경이 됐다. 지만원의 5‧18민주화운동 날조도 북한을 악용한 것이다. 이러한 가짜뉴스가 한국의 언론 신뢰도 하락의 큰 요인이 된 것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매체가 4만 4천여 개에 달하는데 다 건강한 매체라고 보긴 어렵다. 200여 개 기자협회 회원사 중에 부적절한 행위가 있으면 성찰도 하고 때로는 자격징계분과위원회에서 징계도 내린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매체는 그런 장치가 없다. 반대로 언론을 무조건 규제만 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가 생명인데 해로운 목소리가 무엇인지 선별하는 게 쉽지 않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
신미희 :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그간의 과오에 대해 명시적으로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자협회가 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해 준비하는 게 있는가.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기자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더 엄중한 잣대로 일상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김동훈 : 가짜뉴스 문제에 있어서도 기성 매체의 잘못이 크다. 정통 언론의 역사를 보면 창피한 것들이 많다. 모 신문은 최근에도 서울대병원 노조가 딸기 농장에 놀러 갔다고 오보를 냈는데 그건 간단한 확인만 해도 방지할 수 있는 오보였다. 공영방송 역시 정권에 따라 굴곡이 심하고 부끄러운 보도를 많이 했다. 결국 기성 매체부터 반성해야 한다. 세월호 유족 분들께 사과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고, 기자협회 취재윤리강령과 5대 강령을 위배한 행위나 기사를 낸 경우 거기에 맞춰 점검과 징계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기자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더 엄중한 잣대로 일상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정필모 추천 철회, 언론인 정계진출 기준 만들어야
신미희 : 김동훈 회장이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을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추천하면서 논란이 됐다. 민언련도 언론인의 정치권 직행은 부적절하다고 논평을 냈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동훈 : 기자협회장에 취임하면서 한국기자협회의 위상이 너무 추락했다고 생각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인들의 노조가 없던 1975년 당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독재정권과 싸우며 탄생할 때 그 주축이었다. 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 조선일보 분회가 중심이 되어서 동아투위, 조선투위가 만들어졌다. 역대 회장 역시 신군부에 맞서다 투옥된 김태홍 선생, 노향기 선생, 보도지침 사건의 주역 김주언 선생 등 존경스러운 언론인들이 많다. 이렇게 언론민주화를 위해 싸운 것이 한국기자협회인데 어느 순간 전통을 잃었고 존재감도 미미하다. 단적인 예로 4년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을 때 각계 전문가를 추천받기 마련인데 언론 분야, 특히 언론개혁을 위해 싸울 분을 정당에서 고민할 때 기자협회에 의견을 묻지 않은 지 오래됐다. 제가 기자협회장이 되면 언론개혁을 위한 비례대표 추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더불어시민당에서 언론개혁을 추진할 분을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런 마음으로 좋은 분을 찾았다. 언론인은 선거 30일 이전에 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분을 찾다 보니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이 있었다. 2월에 부사장을 그만둔 거라 다소 마음에 걸려 다른 분을 찾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결국 정필모 전 부사장으로 추천했다. 물론 KBS 후배들의 비판이 거셌다. 정필모 후보 본인도 이 점에 힘들어했고, 저도 결국 추천을 철회했다.
“정필모 후보가 언론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언론인은 워치독이라는 본연의 의무가 있으므로 더 엄격해야 한다"
신미희 :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의 경우 공영방송 정상화와 개혁을 위해 앞장선 분이다. 그런 분일수록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나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담당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도록 규정한다’는 KBS 윤리강령을 더 엄격하게, 본인부터 솔선수범하여 지켜주었으면 KBS 후배들도 성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론개혁 임무를 지닌 정필모 후보에게 기대가 크다 보니 더 비판이 강했던 것 같다.
김동훈 : 정필모 후보가 언론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시간에 쫓겨 KBS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소홀했다는 점에는 반성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언론인이 공직에 진출하기 위한 기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는 언론인이 선거 30일 이전에 사직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어서 사실상 직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겨레>에서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규정이 있는 데도 논란이 많다. 판사 등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 다른 직군에서도 어제 사표 내고 오늘 선거운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언론인보다 비판은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론인은 ‘워치독’(watchdog)이라는 본연의 의무가 있으므로 더 엄격해야 한다. 이참에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검찰개혁보다 어려운 언론개혁, ‘민언련 회원’이 답이다
이봉우 : 채널A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취재원을 협박하면서 정보를 달라고 하고, 검찰과의 친분을 이용했다. 기자협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하다.
김동훈 : MBC 보도를 통해 드러난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자윤리를 위반하면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그 과정에서 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이 나왔다. 첫 번째는 거의 팩트라고 생각이 되고, 두 번째는 검사가 부인하고 있고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 터졌을 때 쉬쉬하거나 감싸지 말고 드러내어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 기자협회도 징계할 것은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 채널A가 방송통신위원회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자체조사를 하더라도 꼬리 자르기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 지켜보고 있다.
신미희 : 마지막 질문이다. 언론개혁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과제가 됐다. 언론 내부의 자성, 언론 밖 시민들의 개혁 촉구 운동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기자협회는 어떤 노력을 하실 생각인지, 민언련에 당부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기자협회와 민언련은 불가분의 관계다.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던 언론인들이 기자협회의 주축이자 민언련을 만든 분들이기 때문이다”
김동훈 : 언론개혁은 검찰개혁 등 공직사회 개혁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언론사가 개인 소유의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바뀌려면 결국 문화와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미디어 수용자, 시민들의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시민들의 힘으로 언론을 바꾸는 게 어려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로 그걸 경험한 바도 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시민들이 일부 언론사 광고 불매운동을 했는데 실제로 그 매체들이 광고 난에 부딪혀 신문을 감면 발행하기도 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정말 언론이 바뀔 수 있다고 느꼈다. 언론 혼자서는 절대 개혁할 수 없다. 수용자들과 호흡했을 때만 언론도 바뀔 수 있다. 민언련이 바로 그런 언론운동을 하고 있다. 언론 수용자, 소비자들이 모인 게 민언련이다. 지금 민언련 회원 분들을 보면 소회가 남다르다. 시민들, 회원 여러분 덕분에 과거에 비해 민언련이 많이 성장했고 그만큼 한국 언론의 민주주의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제가 몸담고 있는 기자협회와 민언련은 불가분의 관계다.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던 언론인들이 기자협회의 주축이자 민언련을 만든 분들이기 때문이다. 기자협회와 민언련이 예전처럼 함께 언론개혁을 이끌어가도록 노력하겠다
인터뷰・정리 신미희 사무처장‧이정일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 동영상 고은지 활동가
[날자꾸나 민언련 5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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