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 이야기
비 윌슨 지음│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매년 가을과 겨울에 지리산에 오른다. 2박 3일로 종주산행을 하는데 기나긴 산행은 사람을 원초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해가 뜨면 걷고 해가 지면 걸음을 멈춘다. 하루하루 새로울 것 없던 하늘빛이며 물소리, 바람도 경이로워진다. 중력을 거슬러 몸을 움직이는 탓에 초반의 경이롭던 풍광은 잠시뿐, 곧 힘든 산행길 내내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때문에 산행 하루 가운데 가장 바라는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이다. 힘든 산행 중에는 조리도구와 식재료가 제한된 만큼 식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미리 씻어온 쌀을 코펠에 안치고, 찌개를 끓인다. 밥이 끓으면 손바람을 일으켜 밥내음을 맡으며 타지 않게 세심하게 버너의 불을 조절한다. 음식의 조리과정에서 온전하게 재료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될까?
소개하려는 책 <식사에 대한 생각>은 우리에게 “음식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인 비 윌슨은 역사가이자 음식 작가다. 과거와는 달리 풍족해진 음식들 속에서도 건강에 필요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 원인을 음식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날카롭게 짚어낸다.
일 년에 두번 산행 때를 제외한 평범한 일상에서 나는 아침은 간단히 커피로 대신한다. 상담업무로 점심시간이 불규칙 할 때면 패스트푸드로 때운다. 회사에서 집까지 통근시간이 편도로 한시간이 넘는데 그러다 보니 퇴근 후 가족과의 저녁식사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저녁은 보통 홀로 간편식을 먹는다. 책을 읽고 내가 너무도 음식을 소홀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변명거리는 있다. 일 때문에 너무 바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가는 책에서 일갈한다. “텔레비전 볼 시간은 어떻게 내는데요?” 작가는 음식에 마땅히 써야 할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 음식은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교훈을 던진다.
“음식에 소홀한 책임을 너무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식사보다 더 많이 먹는 간식, 물처럼 들이키는 탄산음료의 홍수 속에서 더욱 늘어가는 현대인의 비만과 건강의 위기의 원인이 온전히 개인의 무책임으로 돌려지는 것도 경계한다. 2015년 스타벅스가 주력 상품으로 광고한 인기 음료인 시나몬 롤 프라푸치노 한 잔에는 설탕이 100그램이 넘게 들어갔다. 작가는 책에서 달달한 고칼로리 음료가 매력적인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선전되는 현실 속에서 비만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의 의지박약이라고 몰아가는 폭력적 현실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공중보건의 역사 곳곳에 자리한 건강 관련 낙인의 역사를 돌아보며 비만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 아니라”는 집단적 인식이 생기기 전까지는 비만율이 낮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국가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작가는 책에서 “가난한 가정일수록 신선한 재료를 한 접시 볶아 먹을 수 있는 부엌시설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하며 불규칙하게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이 집에 돌아가 부엌에서 따뜻한 요리를 만들어 먹기 어려운 현실 이면에 기술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프리랜서 근로형태가 확산되는 냉혹한 경제구조의 현실이 있다는 점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렇다면 음식과 연관된 건강 불평등이 급속히 확산 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책은 “시민이 더 건강하게 먹고 마시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긍정적 사례로 소개된 칠레의 식품보건 정책이 인상적인데 2016년 칠레정부는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대해 18%의 높은 세금을 물렸다. 그리고 시리얼 상자에서 모든 만화 캐릭터를 제거하는 식품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칠레의 가당 음료 평균 소비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았고, 일반 가구 구매 식품의 절반 이상이 짭짤하고 달달한 초가공 식품이었다. 설탕을 입힌 시리얼에 귀여운 토끼나 북극곰을 그려 넣어 이런 식품이 어린이의 행복에 필수 요소라는 이미지를 제거하고 식품 라벨 경고 표시를 강화했다. 그 결과 건강한 식사를 선호하는 고소득 소비자나 관심을 기울이던 식품 라벨을 보통의 칠레 국민 40%가 구매에 참고하게 되었고 페루와 이스라엘, 우루과이가 이 모델을 도입했다.
이에 덧붙여 작가는 “간식보다 식사에 집중하고, 물이 아닌 것을 물처럼 먹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업무에 바쁘더라도 음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며 식사에 대한 열 세 가지의 실천적 지침을 제시한다. <식사에 대한 생각>은 이처럼 먹을 것은 더 많아진 풍요 속에서 영양의 균형은 상실해 가는 역설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개개인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있다.
글 이동철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4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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