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02]
‘뽕짝’의 정체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
김동찬 작사, 송대관 노래,〈 네 박자〉, 1998
노래꾼의 통찰력은 무섭다. 듣는 이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지는 노랫말을 쓰는 이, 몸도 마음도 덩실거리게 하는 곡조를 붙이는 이, 그리고 때로는 구성지게 때로는 간드러지게 목청을 다스려 부르는 이 모두의 통찰력은 무섭다. 특히 이 노래 <네 박자>는 세 부류의 노래꾼 모두가 어우러져 ‘노래’의 정체, 나아가 ‘뽕짝’의 정체를 밝혀주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우리 모두가 즐기며 듣고 부르는 노래 속에 ‘사랑, 이별, 눈물’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것이 우리네 사연이고 인생사이자 세상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유행가의 전형인 ‘뽕짝’의 정체를 밝혀준다는 점이다.
노래의 갈래를 정의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뽕짝’으로 불리는 노래의 정의는 다소 불분명하다. 고정된 박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유의 리듬이나 멜로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뽕짝 특유의 맛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류의 노래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성인가요’나 ‘전통가요’라고 부르는 이도 있으나 어린 아이가 최근에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노래를 맛깔나게 부르는 것을 보며 환호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이름도 정확하지 않다. 흔히 보는 익숙한 가사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곡조를 붙여 ‘꺾어 부르는’ 노래로 막연히 그려질 뿐이다.
‘뽕짝’의 음악적 기원과 역사적 변천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많다. 리듬은 ‘폭스 트로트(Fox Trot)’에서 기원을 했고, 곡조는 일본의 5음계에 영향을 받았고 하는 등등은 음악의 영역이니 논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뽕짝’이란 말의 기원이다.‘ ‘폭스 트로트’에서 ‘폭스’를 떼어내면‘트로트’가 되고, 이것의 일본식 발음이 ‘도롯도’이니 가볍게 해결된다. ‘트로트, 도롯도, 트롯’는 외래어를 어떻게 적고 읽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날 ‘뽕짝’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그 기원이 아리송하다.
우리말에서 된소리가 들어간 단어는 그리 많지도 않고 사랑을 받지도 못한다. 그런데 ‘뽕짝’에는 된소리가 둘이나 들어 있다. 게다가 ‘뽕’은 이상야릇한 단어다. ‘뽕’은 누에를 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나무일 뿐인데 다들 뽕나무가 우거진 속에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장면을 연상한다. 마약의 하나인 ‘필로폰(Philopon)’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온 말 ‘히로뽕’이 다시 ‘뽕’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보정용 속옷에 들어가는 것도 ‘뽕’이고 방귀소리도 ‘뽕’이다. 심지어‘뽕을 뽑다’에도 정체불명의 ‘뽕’이 있다. 하나같이 좋은 의미는 없다.
‘뽕짝’의 ‘뽕’을 이러한 것과 관련짓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 뽕짝의 전성시대인 60년대에 ‘히로뽕’이 퍼져나가기 시작했지만 이는 우연의 일치이자 결과론적인 견강부회일 뿐이다. ‘뽕짝’을 ‘히로뽕’이나 다른 ‘뽕’과 관련을 지으려면 ‘짝’도 해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이 말을 썼는지 알 길이 없으니 물어볼 방법도 없다. 노래 갈래를 가리키는 말이니 아무래도 음악적으로 풀어야 한다. 트로트, 아니 그 이전에 폭스 트로트의 음악적 특성에 기대어 풀어봐야 한다.
그런데 이미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답이 있다. 폭스 트로트, 혹은 트로트의 전형적인 리듬을 입으로 표현하면 이 노래 속의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이 된다. ‘쿵짝’은 본래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이기만 ‘쿵짝이 맞는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쿵짝’과 ‘뽕짝’은 조금 달라 보이지만 언어학적으로는 아주 가깝다. ‘쿵’과 ‘꿍’은 거센소리와 된소리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이니 거기서 거기다. ‘오’와‘우’는 글자 상으로 점의 위아래가 다르지만 소리 면에서는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ㄲ’이 ‘ㅃ’이 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의 귀는 ‘ㄱ’과 ‘ㅂ’을 혼동해서 듣기도 하고 이런 이유로 방언에 따라‘ㄱ’과‘ㅂ’이 교체되기도 한다. 덤불’과 ‘덩굴’이 혼동되어 쓰이는 것, 해장국 재료로 쓰이는 민물 다슬기가 지역에 따라 ‘올갱이’와 ‘올뱅이’로 불리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쿵짜작 쿵짝’이라고 하는 것을 일본에서는‘분챳챠분챳(ぶんちゃっちゃぶんちゃっちゃ)’이라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우리는 ‘쿵’이라고 듣는 소리를 일본사람들은‘분(붕)’이라고 듣는 것이다. 우리는 ‘쿵’이라고 듣는 대포소리를 영어권에서는 ‘붐boom’이라고 듣는 것까지 포함해‘ㄱ’과‘ㅂ’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뽕짝’의 기원은 ‘쿵짝’이다.
의성어 ‘쿵짝’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면‘뽕짝’도 역시 그렇다. 그저 리듬을 흉내 낸 소리가 노래의 갈래로 정해진 것일 뿐인데 이후 우리말의 모든‘뽕’과 연관을 지으면서 썩 좋지만은 않은 이미지가 고정된다. 심지어 ‘유치 뽕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비하하는 의미를 이름에 담기도 하고 실제로 천대를 하기도 한다. 오래된 노래,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 월요일 밤의 <가요무대>나 일요일 낮의 <전국 노래자랑>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던 뽕짝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뽕짝의 부활조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속에서도 이미 감지가 됐다. 뽕짝에 대한 부끄러움과 사랑이 교차하는 영화 <복면달호>에서 ‘뽕필’이 등장했다. 어법상으로는 도저히 만들어지기 어려운 단어다. 정체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뽕짝’에서 ‘뽕’을 떼어내고 이것을 다시 영어 ‘필(feel)’과 결합시킨 것이다. 어법상으로는 이상할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뽕필’의 정체를 몸으로 느낀다. ‘뽕끼’ 역시 어법상으로나 발음상으로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이만큼 정확한 표현도 드물다.
오랫동안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오던 뽕짝의 화려한 부활은 TV 프로그램 <미스 트롯>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 뒤를 <미스터 트롯>이 이어 역시 뽕짝의 흥행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묘하다. 인기는 ‘뽕짝’이 이끌고 있는데 이름은 ‘트롯’을 내걸고 있다. 이제까지의 흐름이라면 ‘미스 트롯’은 ‘뽕순이’, ‘미스터 트롯’은 ‘뽕돌이’ 정도의 이름을 달고 나왔어야 했을 것이다. ‘뽕짝’이란 이름의 소녀가장이 인기를 견인하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문패로 내걸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이름이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이 없다. ‘쿵짝쿵짝’에서 시작된 ‘뽕짝’에 울고 웃는 인생사를 담고 연극 같은 세상사를 모두가 즐기고 있으니.
글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날자꾸나 민언련 3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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