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료, 기업, 언론, 로비스트에 관한 이은용 기자의 취재 수첩
기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이 책, 서평 쓰실 분 없나요?” 노량진 내 한 횟집, 민언련 공시형 활동가가 말했다. 민언련 신문 모니터링 분과의 연말 회식 날이었다. 방어와 광어회를 먹으며 서로의 근황을 묻던 중, 공시형 활동가가 갑자기 가방에서 책을 주섬주섬 꺼냈다. 뉴스타파 이은용 기자의 신간 ‘침묵의 카르텔, 시민의 눈을 가리는 검은 손’이었다. 언론을 잠재우고 조작하는 우리 사회 카르텔에 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소재였다. 우리 분과 활동에서는 주로 신문의 보도 내용을 모니터링한다. 하지만 보도 너머 기자가 부딪히는 상황들, 보도가 나오는 과정을 다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문을 모니터링할 때마다 그 과정이 궁금했다. 왜 기업을 옹호하는 기사가 많은 걸까? 왜 때로는 중요한 사건들이 보도되지 않는 걸까? 왜 언론에 보도가 되어도 변화는 없는 걸까? 언론은 누구 편인 걸까? ‘침묵의 카르텔’은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생한 르포르타주
책의 작가인 이은용 기자는 1995년 전자신문에 입사해 20년간 일했다. 황우석, 삼성과 LG 등 대기업, 시청자미디어재단, 방송통신위원회와 통신 기업 등을 취재해왔다. 2015년 11월부터는 뉴스타파 객원기자로 일하며 방송·통신·IT·과학기술 관료, 이른바 ‘체신 마피아’들을 감시하고 있다.
기자로 활동하던 그에게 매순간은 ‘침묵의 벽’을 향한 도전이었다. 전화 한 방으로 기사가 바뀌기도 하고, 진실을 보도한다고 부서가 바뀌기도 했다. 때로는 정정보도를 강요당했다. 기사가 나간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 관료, 기업, 로비스트, 그리고 언론이 촘촘하며 만들어 놓은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그는 취재를 하며 목격한 ‘침묵의 카르텔’을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고발한다. 책은 그의 취재 현장을 생생히 묘사한 취재 수첩 같다.
침묵의 카르텔
이 기자가 목격한 카르텔은 견고했다. 기업은 언론에게 지시를 내렸다. 언론에는 이들의 지시를 따르는 언론인이 있었다. 단편적인 예가 책에 나오는 ‘SK 하이닉스 CEO 사건’이다. 2011년 전자 신문 서동규 기자가 11월 14일자 ‘SK “하이닉스 CEO 찾습니다”라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13일 아침 발제와 오전 오후 편집 회의를 거쳐 인쇄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11월 13일 밤, 가판 기사를 본 SK텔레콤의 전화에 기사는 삭제되었다. SK 텔레콤은 “공식적으로 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 건을 논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 10시 15분, 윤전기가 멈추었다. 배송되던 14일 자 신문들은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지방으로 가던 신문 배송 자동차는 되돌아왔다.
한편, 언론사는 광고성 기사로 영업을 하기도 했다. 이 기자가 전자신문에 있던 시절, 전자신문은 서울우유에서 개발한 ‘두 가지 맛이 나는 신개념 주스’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500만원을 받고 편집국 부장이 직접 쓴 것이었다. 편집국 부장은 부끄러웠는지 기사 바이라인에 자신의 후배 이름으로 적어놓았다. 기업을 옹호하는 기사가 유독 많고, 중요한 사건들이 감춰지는 이유다.
관료들 또한 카르텔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론사들에게 경영권을 행사하며 지면 내용을 좌지우지 하고자 했다. 전자 신문의 대주주 오명이 과학기술 부총리가 되면 과학기술 면이 늘어났다. 관료가 기업들과 또는 동료 관료들과 부당한 이익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사들의 경품 관련 과징금을 봐주었다. 과징금의 액수는 수 백억에 달했다. 그리고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은 주위 관료의 자식들을 채용했다.
기업과 관료 사이를 넘나들며 이익을 챙기는 로비스트도 있었다. 이들은 공직을 맡은 뒤 그와 관련된 업무 자문을 하는 기업이나 로펌에 들어간다. 그 후 다시 관련 공직으로 진출한다. 공직과 사기업 사이에서 일종의 회전문을 도는 것이다. 이 기자의 수첩 속에는 회전문을 타오는 수많은 공직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기업은 자신들이 원하던 바를 로비스트를 통해 손쉽게 이룰 수 있었다. 공직자들은 기업을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 체계 속에서 기자가 이런 사회 체계를 고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겨우 고발한다 하더라도 때때로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신문의 독자로서 느꼈던 의문점, 아니 언론계와 사회에 대한 불만, 그 불만의 근원은 침묵의 카르텔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호루라기와 망치
지면에 보도를 쓰기까지, 기자는 기업, 관료, 그 사이를 넘나드는 로비스트, 그리고 언론 자기 자신을 넘어야 한다. 넘었다 하더라도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기자가 계속 기사를 쓰는 이유는 ‘호루라기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침묵의 카르텔이 만든 벽,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잡아 세상에 경고의 호루라기를 부는 것. 그것은 그 벽을 허무는 망치의 시발점이 된다. 끊임없이 시민이 언론을 감시하고 참 언론을 후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취재하는 기자가 매순간 부딪히는 벽들, 그리고 그 벽의 작동 원리를 현장의 소리로 듣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남은 벽 앞에 나는 다시 섰다. 뭘 좀 들을까 귀 대고. 뭘 좀 볼까 까치발로 넘겨다 보며. 어딜 좀 넘어뜨릴 수 있을 성싶으면 여기저기 밀어볼 생각이다. 깨뜨려야 할 것 같으면 망치로 좀 두들겨보고. 그리해둬야, 내가 다 못 해도, 뒷날 누군가 듣고 보며 깨뜨릴 때 한결 나을 테니까. 호루라기 소리가 크면 망치도 커질 터. (P.266)] <침묵의 카르텔 중에서>
글 위지혜 신문모니터분과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월호 PDF 파일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_______2020__2__2_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