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그네(Die Winterreise D. 911)는 슈베르트 나이 30세인 1827년 작곡된 24곡으로 완성된 연가곡집이다.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의 ‘나그네의 노래(Wanderlieder) - 겨울 나그네(Winterreise)’에서 영감을 받아 최초에는 12곡으로 썼지만 이후 뮐러의 시가 24곡임을 알고 나머지 시를 추가로 작곡해서 기존 12곡 이후에 더해가는 방식으로 완성하였기에 최종 시집에 실린 순서와는 곡의 순서가 달라졌지만 1곡인 ‘잘 자요(Gute Nacht)’부터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곡인 제 5곡 ‘보리수(Der Lindenbaum)’까지는 그 순서가 같고 제 24곡인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가 마지막 곡인 점도 동일하다.
천재 음악가의 짧은 생애를 애써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연가곡에 흐르고 있는 비장, 슬픔, 비관, 체념의 분위기는 듣는 이들에게 슈베르트의 쉽지 않았던 생애를 바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전에도 그의 시를 통해 첫 번째 연가곡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를 작곡했을 만큼 슈베르트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시인 빌헤름 뮐러(Wilhelm Müller)는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를 썼던 1827년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갔고 같은 해 가장 존경하던 음악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도 역시 세상을 떠났으니 당시 깊은 병에 걸렸던 슈베르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족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늘 추위와 배고픔, 질병에 시달리다 마지막 죽기 직전에 천재 음악가가 남겼던 이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 속에는 그가 수도 없이 겪었을 법한 외로움,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처연하게 녹아있다.
24곡 전체 작품을 통해 지배하는 분위기가 침울함을 느끼게 하지만 필자는 유독 제 1곡인 '잘 자요(혹은 밤 인사라고도 하는 Gute Nacht)'를 접하면 급하고도 심하게 우울해진다. 피아노 전주의 처음 몇 마디만 들어도 한겨울밤 쓸쓸히 길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도 하고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조로 구성되어 그러하기도 하지만(마지막 4절에 잠깐 장조로 바뀌지만 곧 단조로 마무리) 필자가 이 곡을 처음 진지하게 접했던 시절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2014년 4월 16일,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던 날…….
세월호 참사…….
온 국민이 불면에 시달리던 사건이 발생한 그 즈음에, 필자는 뒤 늦은 나이에 음악대학원에 다니며 이 곡을 처음으로 집중해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 때까지 음악상식으로만 알고 있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중 첫 곡인 이 곡을 듣는 순간부터 숨이 멎듯 잠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듣는 내내 세월호 아이들의 체념, 원망,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여…….
여기 남은 자들, 특히 이기심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온 우리 어른들을 향하여 책망하면서 낯선 곳, 차디 찬 곳으로 홀로 떠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 같아서…….
곡 중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접하고 깊은 상심 속에서도 조용히 한밤중을 틈타서 작별을 고한 후에 눈 내리는 벌판으로 아득히 사라져가는 젊은 나그네에게로부터 느껴지는 짙은 상실감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자신들이 꿈꾸었던 세상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을 느끼며 소멸되어질 순간을 기다리는 젊은 생명들의 모습과 겹쳤었다. ‘움직이지 마라,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구원의 약속으로 믿었던 자신들을 원망하면서 힘없이 떠나가는 아이들의 모습들…….
특히 청년들에게 참 힘이 많이 드는 시절이라고 한다. 전 세계가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에 실패하고 있고, 인간의 평균 수명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출산율 최저의 국가, 유일한 분단국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중심잡기 어려운 나라, 숨만 쉬어도 최저임금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물가…….
세계 속의 IT강대국, 누구나 뉴스를 생산하고 쉽게 소비하고 퍼 나르고 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 쏟아지는 가짜뉴스들, 양극단을 달리는 서초동과 광화문의 태극기!
지난 수 년 동안 우리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쉽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정하고 비겁했던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이제 지난 시절의 잘못된 관행들을 하나씩 바로 잡고 어지러워진 판들을 새롭게 깨끗하게 하고 나면 그 때 비로소 ‘청년이여 힘을 내라!’ 고 외칠 수 있을 날이 올 수 있을까?
매서운 한파 속의 이 겨울을 지나며 감상하는 ‘겨울 나그네’야 말로 제 맛이 날 테지만 잊지는 말아야겠다. 이 계절에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아이를 묻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음을, 그들에게는 안녕히(Gute Nacht)! 가 겨울 낭만가의 멋스러움으로 느껴지지는 아닐 터이니 말이다.
기억하면서 살면 좋겠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세상의 부조리함과 불합리에 맞서서 살아가다가 자포자기 상태로 ‘안녕히’를 읊조리면서 고요하게 새하얀 암흑의 밤길로 떠나가고 있는지, 그들도 우리 모두의 아들이고 딸들인 것을. 이제 더 이상 아까운 젊은 생명들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서 스크린 도어에 끼어서 미처 삼키지도 못한 컵라면을 남기고 이 세상을 향하여 Gute Nacht!를 외치며 떠나가지는 말아야한다는 것을…….
밤중에 우리 모두 헤어지면서 안녕히(Gute Nacht)!를 외치는 것은 밝은 아침에 다시금 만나서 안녕(Guten Morgen)? 으로 인사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겨울나그네의 제 1곡 안녕히(Gute Nacht)만 들어도 이미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날은 언제쯤일까?
글 김인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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