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홍보수석비서관이었던 이정현 의원이 방송편성에 간섭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비서관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2차에 걸쳐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해경 비판보도를 중단 내지 대체할 것을 요구하여 방송편성에 부당하게 간섭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방송법 제4조를 위반하여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최초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보수 정권 시절 정치권력이 자행한 방송편성의 자유 침해 사건에 대한 중요한 법률적 판단이다.
그러나 신문법에 규정된 편집의 자유, 방송법에 규정된 편성의 자유은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다. 법이 규정한 편집·편성의 자유는 국가로 대표되는 외부세력의 규제와 간섭으로부터 편집의 자유와 독립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외부세력, 특히 국가로부터 편집과 편성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일 것이다.
국가의 규제와 간섭이 문제되는 것은 주로 보수 정권 시대였다. 신문과 방송의 편집 편성의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 중에는 자본의 영향력이 있다. 최근 언론의 사주와 대주주에 의한 편집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신문 쪽에서 주요 관심사가 됐다. 대형건설사의 헤럴드경제, 서울신문 등의 인수와 주요 주주로 진입 등에 대한 언론계가 우려하고 있다. 지역일간지와 지역민방에 대한 지역기반 대형건설사의 소유와 경영이 낳은 부작용이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직접 언론사를 소유하거나 주요 주주로 자리 잡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지만 광고를 매개로 하는 영향력도 편집·편성권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에 대한 비판적 보도로 광고를 실지 못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던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사례를 기억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개입에 맞서기보다 자본의 영향력에 맞서기가 어렵다. 언론의 생존기반이 기업광고이기 때문 일 것이다. 2019년 12월 경향신문에서 발생한 협찬금을 대가로 하는 기사 삭제 사건은 자본의 힘에 언론이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
기사를 매개로 광고를 주고받지 않는 언론사가 얼마나 있을까? 경향신문이 아니었다면 이런 관행에 저항할 수 있었을 까? 경향신문까지 기사 거래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미디어환경 변화로 광고와 협찬이 기사가치 판단에 중요 요소가 됐다. 이제 언론과 홍보, 저널리즘과 PR이 얼마나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2019년 3월 경향신문에서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기획기사 무산 사건이 대자보를 통해 공개됐다. 대자보는 최근 3~4년 사이, 기업에 기사 사전 정보가 새는 일이 늘고 기업 기사에 대한 내부 견제도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2019년 11월 민주당 우상호 의원 발의로 일반일간신문에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신문노조가 준비한 법안으로 신문 노동자들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그리고 사주·경영진의 지배력으로부터 편집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편집·편성의 자유의 제도적 보장이 처음 제기된 것도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발생했을 때 삼성그룹 계열 언론들이 이를 노골적으로 비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디어환경의 변화, 정보 생산 중심의 이동, 디지털 대중지성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우리 언론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경제권력으로부터 편성과 편집의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다. 언론인들이 독자와 시청자의 비판에는 직설적으로 맞대응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자본의 개입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독자와 시청자의 비판적 또는 적대적 반응이 정말 엄청난 압력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언론인 조사’ 결과를 보자. 조사에 따르면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은 광고주(68.4%), 편집· 보도국 간부(52.7%), 사주·사장(46.4%)의 순이었고 독자·시청자·네티즌은 18.4%였다.
문제는 독자와 시청자가 아니다. 편집과 편성의 자유에 대한 자본과 경영진의 부당한 개입이 여전히 문제이다. 편집권 강화를 위한 신문법 개정과 같은 법제 개선과 함께 언론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용성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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