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꾸나 민언련> 12월호의 회원 인터뷰는 MBC <PD수첩>의 박건식 피디로 정했다. 35주년 창립기념식 직전에 발간되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회원을 모시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다. 민언련과 오랜 인연은 맺은 분이길 바랐고, 이왕이면 ‘셀럽’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민언련 35주년을 함께 축하하고 앞으로 더 오랫동안 함께 해주리라 믿는 분을 모시고 싶었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MBC 박건식 피디와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건식 반갑습니다, MBC 박건식 피디입니다. 오랜만에 민언련에 왔더니 사무실도 좋아지고, 카메라도 생기고, 마이크도 생기고, 종합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하는 민언련을 발견해서 좋습니다.(웃음)
김언경 그렇게 민언련이 장비를 마련하며 성장하는 동안에 박건식 피디도 성장하셨습니다.(웃음) 저는 개인적으로 MBC <PD수첩>과 <스트레이트>를 보면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를 열심히 했던 보람을 느낍니다. 민언련이 어쩌다보니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스트레이트>에 많이 드린 편이긴 하지만, 작년부터 <PD수첩>은 자타공인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건식 피디는 그 프로그램을 이끌고 계시는데요. 구체적으로 <PD수첩>에서 하시는 일이 뭔가요?
박건식 <PD수첩>을 이끌지는 않고, 주로 뒤에서 밀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저 열심히 밥 사주며 뒤에서 밀어주는 거죠. 그러면서 피디들과 계속 기획을 합니다. 현안을 보는 일, 어떤 것이 현안일까 찾는 일, 그렇게 고민한 후 ‘이런 건 꼭 다뤄야겠다’, ‘어렵지만 이것이 화두라면 피해 가지 말자’ 이런 논의를 하는 일을 합니다.
“PD수첩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지금의 PD수첩 만들어”
김언경 사실 MBC 정상화 이후 <PD수첩>이 처음 나왔을 때는 뭔가 10년 전 포맷과 영상, 심지어 진행자까지도 그대로라 너무 올드하다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래서 시청자 눈길을 잡을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현재 <PD수첩>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제들을 던져주고 있어요.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분석해 보신다면요.
박건식 첫 번째는 현안을 정면 돌파하고 들어갔다는 것, 좌고우면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저희는 ‘PD수첩은 살려야 한다. 안 그러면 돌마고한테 돌 맞는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돌마고 때, 저희가 얼마나 많은 성원을 받았는지 기억합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프레스센터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실 안 해도 되는 일인데요. MBC가 뭐라고 그렇게 애를 썼는지 그 마음을 저희가 늘 기억합니다. 그렇게 많은 성원이 해주셨는데 ‘PD수첩만큼이라도 꼭 보답하자’는 생각이 다들 있었던 거죠.
두 번째로 MBC 전사적으로, 또는 시사교양국 전체가 PD수첩을 살리겠다고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이런 이유로 선배그룹이 나서서 <PD수첩>에 투입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시사교양본부에서 좀 더 활동력이 왕성하고 PD수첩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PD수첩에) 많이 왔어요. 강지웅 피디는 작년까지 PD수첩 부장하셨던 분이에요. 26년 차죠. 저는 24년 차, 조준묵 피디도 24년 차, 유해진 피디가 23년 차, 다 20년 차가 넘죠. 20년 차 넘으면 관리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PD수첩만큼은 살려보자고 다들 뛰어들었던 것이고요. 그런 점들이 PD수첩이 지금의 모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검사범죄 2부작, 언론 간 협업․연대정신 살려보자는 생각에서 출발”
김언경 올해 방송되었던 MBC <PD수첩> 중에서 가장 뿌듯하고 인상적이었던 편은 뭘까요? 솔직히 저는 한 회, 한 회 다 좋았어요.
박건식 네, 저도 그렇습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라본다면 3월 5일에 방송된 조선일보 방용훈 편(‘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인데요. 그 방송이 왜 뿌듯하냐면 피디들이 안 하겠다는 걸 제가 붙잡고 하라고 했거든요. 피디들의 논리는 ‘가정사’ 문제를 PD수첩이 꼭 다뤄야 하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두 가지 반론을 폈습니다. 가정사라고 할지라도 가정폭력은 가정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화된 문제라는 것, 두 번째는 방용훈 일가의 가정 폭력에 대해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에서 비호가 있었다는 것. 가정폭력 문제뿐 아니라, 경찰‧검찰의 비호 등 수사 문제를 다뤄보자고 했습니다.
최근에 기억나는 것은 10월 15일 방송된 ‘CJ와 가짜 오디션’인데 취재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CJ가 부동의 문화 권력이라는 걸 느꼈어요. 누구도 인터뷰 하려고 하지 않아요. CJ가 음악산업과 영화산업은 물론 드라마까지도 석권했잖아요. 특히 음악산업에서 작은 기획사들을 거의 흡수해 가고 있거든요. 수직계열화라고 말하는데, 문화산업 독과점 재벌이 됐어요. 그러니 어느 누구도 CJ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검사 범죄 2부작도 기억에 남는데요. 뉴스타파와 같이 해서 더 기억에 남고요. 8월경에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가 ‘죄수와 검사’를 내놨을 때부터 유심히 봤어요. 팩트도 잘 정비돼 있고 괜찮은 작품인데 어느 언론도 이걸 받아서 보도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언론 간의 협업, 연대 정신을 살려보자고 결심하고 뉴스타파에 같이 하자고 연락했죠.
김언경 검사범죄 2부작을 보면서 저는 ‘MBC가 품이 커졌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최근 이런 콜라보가 여러 번 있었는데요. 이런 방식엔 어려움이 따르죠. 애초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해당 의제가 워낙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보다 많은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것인데요. 그런 숭고한 목적과는 별도로, 일단 언론사 개별적으로는 자신들의 노고가 티가 나야 하거든요. 서로가 이기적인 마음을 갖다보면 서운한 일도 많고, 그 과정에서 일을 그르칠 때가 있는데, 이번 방송은 뉴스타파가 좀 잘 보이더라고요. 뭔가 뉴스타파의 면을 분명하게 세워준 느낌이 들었거든요. 물론 MBC가 워낙 한 게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애초에 콜라보를 안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 방송은 칭찬해드리고 싶었어요.
박건식 실제로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들었습니다. 언론사들이 너무 자기 회사에 매몰돼 있잖아요. 언론인이 아니고 회사원들이 다 됐어요. 기자와 피디들이 자신들이 속한 회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처음에 언론사에 지망할 땐 안 그랬잖아요. 언론인이 되겠다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덧 회사사람이 되면서 점점 초심들이 옅어지는데, 협업․연대 정신을 좀 살려보자는 생각이었죠. 이번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뉴스타파가 먼저 한 것이고요. 이것을 우리가 다 한 것처럼 하면 공유와 연대를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하고 생각했어요. 저희 나름대로는 신경을 쓴 것인데, 그렇게 보였다니 다행입니다.
“실명 비공개 판결로 편집하느라 방송사고 직전까지 가기도”
박진솔 이번 검사 범죄 2부작에서, 1부에선 특정 변호사의 이름이 공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2부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내시는 바람에 실명 공개가 안 되고 방송이 됐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선 ‘PD수첩과 뉴스타파가 이걸 노린 건가? 오히려 더 재미가 있고 전달이 잘 되는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제작하는 입장에선 고민이 되고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실명 공개는 하지 말라’는 법원 판결에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박건식 저희는 기본적으로 실명은 가급적 공개를 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 개인에게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책임규정을 해줘야 우리 사회가 다시는 그런 문제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실명 공개를 줄기차게 해왔고 그 덕분에 소송도 많이 당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법원에서 이름은 가리라는 판결을 오후 4시쯤에 받았어요. 사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더빙은 실명과 익명 두 가지로 모두 해놨었어요. 하지만 실명이 들어가 있는 CG를 교체하고 인터뷰 화면에 나오는 실명을 다 들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방송사고 직전까지 갔죠. 그날은 정말 혼비백산했었어요. 저희가 MBC 정상화되고 2년간 조선일보, 조계종, 대형 교회 등 꽤 어려운 것들을 많이 했는데, 이번처럼 막바지까지 몰려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김언경 이번에 상상인 그룹에서 정정보도랑 손해배상 소송을 냈던데요. 어때요?
박건식 저는 소송을 겁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송을 하는 것은 그분들 맘이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는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고 재판에 임하는 것뿐이죠.
근데 소송이란 게 좀 불편하고 귀찮지만, 소송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자료도 엄청 많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장자연 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에게 소송을 냈기 때문이에요. 법원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는 자료들이 많아요. 저희도 법정에 간다면 (법원에) 많은 자료들을 요청하겠죠. 왜냐하면 이게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입증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럼 그 안에 있는, 그분들만이 갖고 있는 자료, 우리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확보할 수 없었던 자료들을 받아야겠죠.
“검찰 문제도 용어에서 출발, 용어는 세상을 보는 인식”
박진솔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는데요. 뉴스에서는 ‘피의사실’, ‘혐의사실’이라고 보도하는데, 10월 1일 방송된 PD수첩 ‘장관과 표창장’에서는 ‘피의내용’, ‘혐의내용’이라고 했고, 노보에도 그렇게 쓰셨더라고요. 이게 피디님의 생각에서 출발한 것인지 아니면 PD수첩 제작진 모두가 공감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건식 저희는 검찰 문제도 용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어요. 용어라는 게 세상을 보는 인식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가 ‘사실’이라는 용어를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피의사실 공표’라는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사실’이 아니에요. 검찰에서 나온 것은 의혹 단계고 법원에서 사실 결정을 하고요. ‘혐의사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혐의사실’이란 용어를 쓰지 말자고 한 게 한 20년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혐의’와 ‘사실’이 같이 갈 수 있나, 의미에서 충돌을 일으키는데 말이에요. 그러니 ‘혐의내용’으로 최소화하자는 거죠.
그리고 ‘공표’도 아니에요. 언제 공표했나요? 검찰이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해야 ‘공표’라고 하는 것이고요, 지금 검찰은 혐의내용을 마구 ‘누설’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범죄거든요? 기밀누설죄가 피의사실 공표죄 바로 앞에 나와 있습니다. 저는 ‘구형’이란 말도 쓰지 말자고 주장했어요. ‘구형’이라고 하면 대단히 거룩하게 보여요. 구형은 검사가 판사한테 이런 형(처벌)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근데 이게 마치 ‘선고’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 문제고요. ‘소환’이란 말도 말이 안 돼요. 왜냐하면 소환은 법원만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기구예요. 검찰이 하는 건 ‘소환’이 아니라 ‘출석 요구’입니다.
김언경 정말 그동안 검찰의 권위를 과대 포장해주는 용어가 굉장히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도 이런 개념을 잘 반영해서 모니터보고서에서 용어를 정리해야겠습니다.
“‘왜’라는 것과 ‘맥락’에 주목하는 것이 PD저널리즘”
김언경 한동안 ‘PD저널리즘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 이런 말들을 많이 했어요. ‘피디들은 취재력이 떨어진다’, ‘이야기는 잘 만드는데 취재력이 떨어진다’ 뭐 이런 말들도 많이 들었어요. 피디로서 박건식 피디의 생각은 어떠세요?
박건식 저는 PD저널리즘이란 게 따로 있다고 보진 않아요. 저널리즘이란 건 하나죠. 그런데 한국에서 유독 피디냐 기자냐를 따지는 것은 ‘출입처’라는 특수한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기능 중심이거든요. 예컨대 미국은 ‘국방기자’이고, 한국은 ‘국방부 기자’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국방기자’는 한 사건을 취재하면서 국방부만 가는 게 아니라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 관련 재야단체와 연구소에 가서 듣고, 북한대학원도 가서 다양하게 취재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365일 국방부에 있어요. 다른 데 안 가요. 국회에는 정치부 기자가 있고. 재야단체에는 경찰 기자가 가요. 이런 식으로 다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죠.
또 하나의 문제는 ‘출입처’라는 게 처음엔 감시를 하러 간 거죠. 안에 들어가야 잘 보이니까요. 그런데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잃고 밀착이 되다가 조금 더 지나서 유착 단계까지 간 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 검찰 보도를 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검찰이 주장하는 걸 여과 없이 받아쓰는 건 많은데, 검찰 행태를 비판하는 뉴스는 정말 거의 없어요. 일단 보도 분량에서 대단히 차이가 나고요. 이렇게 출입처에 의존하다 보니까 관급기사가 굉장히 많아지고, 보도에서 ‘왜 그랬지?’에 대한 얘기와 상황, 맥락이 빠져 있어요.
그런데 피디는 ‘왜’라는 것과 맥락에 주목하기 때문에 좀 더 기존의 보도를 보완해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출입처 안에 있지 않아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정확한 것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희는 늘 후속 취재를 하죠. 그나마 최근엔 기자와 피디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서로 간에 느끼는 거리가 많이 줄어들고 나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널리즘이라는 건 직종의 문제라기보다 피디 개인과 기자 개인의 ‘투철함’과 더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상화 이전, 중요한 보도를 할 수 있었던 시기라 아깝기도”
김언경 민언련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사실 저는 2004년인가 총선보도감시연대를 박건식 피디와 함께 했을 때가 기억이 많이 나요. 우리 방송모니터위원회 친구들이 어쨌든 현직 피디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같이 하고, 방송모니터를 함께 해주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박건식 그때 저도 좋았던 것이, 뉴스 한 꼭지는 모니터하기가 편한데 <100분토론> 같은 시사프로그램 이런 것들은 길이가 기니까 좀 벅차잖아요. 그래서 저도 못 보고 지나갈 때가 있는데 모니터를 하니까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보고 같이 이야기하고 배우고 꽤 유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언경 사실 박건식 피디께서 <날자꾸나 민언련>의 리뉴얼 이전 버전인 정사각형 흑백 소식지이던 2014년 초에 회원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경인지사로 쫓겨나있어서 민언련 간사가 인천에 가서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그때는 참 암흑의 시기였어요. 제가 그동안 박건식 피디에게 토론회나 강의를 부탁하면, 근무지 이탈(?) 때문에 못 오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민언련이 불편해서 거절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상황이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이야길 좀 해볼까요?
박건식 김재철 사장이 부임하고 1년 좀 지나 2011년에 시사교양국장을 윤길용 국장으로 임명하면서 피디 6명을 한 번에 내쫓았어요. 저는 특별생방송 제작하는 곳으로 갔다가 한 달쯤 뒤에 경인지사로 쫓겨나서 햇수로 한 7년 있었고요. 아까 말씀하신 인천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한때 정말 서울에 가지 말고 그냥 인천에만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어요. 한 번은 역대 PD연합회장들이 MBC 상암 본사 인근에서 밥을 먹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편성과 관련해 협의할 게 있어서 상암 본사 1층에 들어갔는데 좀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일 때문에 잠깐 들렀던 것이고 사전에 보고까지 했었는데요. ‘박건식 피디가 상암에 나타났습니다’라고 위로 보고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상사가 ‘너는 박건식이 위수령을 안 지키고 서울에 오게 하느냐’고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한동안은 출퇴근길에 상암MBC를 보면서 지나갔는데요. 그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내 회사가 저긴데 못 가니까요.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출근코스를 바꿀 정도였어요.
아무튼 저는 7년 동안 서울에도 있다가 인천, 고양으로 옮겨 다녔고, 세종시 다니며 일을 많이 했어요. 아침 6시에 KTX를 타고 다니며 나름 돈 많이 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뭔가 많이 배운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중요한 보도를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시기에 피디를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고 그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딸에게도 권하는 민언련, 늘 감사하고 소중해”
김언경 마지막으로 민언련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박건식 저에게 민언련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제 딸이 지금 대학생인데,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제가 처음 말했던 게 ‘너 대학 가면 민언련에 가서 활동해라’ 이거였어요. 그래서 미디어로 세상을 보는 눈도 좀 가지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딸에게 권유할 만큼 전 민언련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고 민언련의 활동이 그래도 우리 사회를 이 정도로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핵심적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가 난무하고 사람들이 어떤 미디어를 봐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거든요. 그럴 때 이 언론이 좋은 언론이고 이 보도가 좋은 보도라고 가려내주는 데가 거의 없어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언론에 대한 갈증도 크고요. 기대가 컸는데 충족이 안 되니까 ‘기레기’라는 용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매일 조금만 무신경하게 봐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삶이 혼란스럽잖아요.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잠시만 정신을 잃으면 잘못된 보도에 흔들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나침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게 중요한데, 저는 민언련이 그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이 너무 버겁고 힘드실 텐데, 그래서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터뷰_김언경 사무처장, 정리_박진솔 활동가, 사진_이병국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