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영화이야기]추석, ‘우리집’의 의미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 <우리집>
등록 2019.09.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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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만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희망하고, 또 절망한다. 이혼을 앞둔 부모님과 살아가는 하나, 방학 내내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유미, 유진 자매의 소원은 소박하다. 퇴근 후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고, 떨어져 있는 부모님과 전화하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이미 어긋난 가정 안에서 그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는 말 그대로 소원해 보인다.

도무지 ‘우리집’이란 단어가 풍기는 정겨운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는지. 집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 여름 햇살만큼이나 가족마다 갈등은 뜨겁다.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빌려 그런 가족을 되돌리려는 아이들의 뜨거운 분투를 그린다.

유미, 유진 자매의 부모님은 도배일을 하며 지방에서 일한다. ​​겨우 전화기에 의지해 가족이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어린 유미 자매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다. 가뜩이나 이사를 많이 다녀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 하는 그녀들에게 가족은 ‘우리’라는 소속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혹하리만큼이나 유미 자매의 부모님은 영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들처럼 말이다. 심지어 자매들이 사는 작은 옥탑방이 다른 세입자에게 빼앗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부모님은 유미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유미, 유진 자매의 시선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가족은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하나의 가족 역시 붕괴 직전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살아가기에 도리어 작은 고성도 불같은 싸움으로, 대수롭지 않은 오해도 큰 갈등으로 번진다. 소박한 가족 식사와 가족여행을 꿈꾸는 하나의 ‘우리집’에서도 ‘우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가 소멸된 집에서 부모는 딸 하나의 소원보다 둘의 갈라짐을 택한다. 여행을 떠나자는 부모님의 호의가 이혼 전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나는 평생 자신을 지켜줄 것 같았던 가족이란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난다.

하나가 달려간 곳은 유미, 유진 자매의 옥탑방이다. 그녀는 자매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어른들로부터 우리집을 지켜내자고 제안한다. 힘든 현실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어른들의 모습과 다르게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작은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큰 종이박스 집을 등에 메고 보리해변으로 떠난다. 부모님이 일한다는 장소로 직접 찾아가 그들이 만든 희망찬 집을 보여주려 한다.

보리 해변까지의 여정이 아이들에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의 어른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버스에서도, 길을 잃어버렸어도 어른들은 도움의 손길보다 냉대와 위협으로 존재한다. 생각대로 여정이 풀리지 않자 사소한 갈등과 미묘한 감정이 그들을 감싸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끝내 보리 해변에 도착한다. 하지만 보리해변 어디에도 부모님이 일한다는 호텔은 존재하지 않았다. 희망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힘겹게 들고 온 종이상자 집을 부수며 말한다.

“이런 걸 도대체 왜 만들어 가지고!”

용감하게 세상에 맞서 싸웠던 아이들도 의지하던 가족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눈물을 터트린다. 생각해보면 가족을 만든 것도, 우리를 꾸린 것도 어른들의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 자라났을 뿐이다. 선택하지도 않은 우리에 배신당했을 때 아이들은 절망에 빠진다. 우리라는 단어는 그만큼 가혹하다. 세상 풍파 모두 막아줄 것 같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배제되는 순간 무서운 소외감이 밀려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소외된 이방인으로 만들었지만, 그 해변에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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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소동처럼 아이들은 분투했다. 어쩌면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었을 수도 있다. 햇살 가득한 화면은 때론 따스하기도 때론 따갑게도 느껴졌다. 영화 속 화면처럼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극도로 불안한 심리를 동시에 담아냈다. 전작 <우리들>에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면 <우리집>을 통해서는 아이를 접점으로 주제를 확장한 모습이다. 아이들의 눈망울에 담긴 희망과 불안을 바라보며, 동시에 그 눈에 비친 우리 어른들의 현실도 반성한다.

윤가은 감독은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들에게 지켜야 할 8가지 수칙을 만들었다. 그 중 마지막 내용을 공유한다.

‘어린이들은 항상 성인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여러분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주 작은 말과 행동 하나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아주 훌륭하거나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멋진 거울이 되어주세요. 존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세요.’

 

 

글_이재홍 회원

 

날자꾸나 민언련 2019년 10월호 PDF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