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2019년 7월과 8월에 대한민국 영화관에서 개봉하여 상영 중에 있다. <김복동>(송원근 감독, 2019)과 <주전장>(미키 데자키 감독, 2019). 둘은 영화의 소재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닮았으나, 제작 의도나 문제 의식, 그리고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르며, 감독의 국적과 민족도 한국인과 일본계 미국인으로 서로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드러내는데 주력했던 기존의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계보에 자리하면서도 주인공 김복동이 갖는 특별성으로 인해 조금 다른 색깔을 띠면서 진화한 영화가 <김복동>이라고 한다면, <주전장>의 초점은 일본 정부에 맞춰져 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상반된 주장들을 쟁점별로 정리하되 조사 자료를 첨부하여 한국과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가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도록 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는 일본의 속내를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파헤치는 영화가 <주전장>이다. 흥미롭게도 관객은 그 두 편의 영화를 통해서 그 둘이 갖는 다름이 충돌하여 서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서로를 이해하는 듯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감동을 주고 다짐을 일으키는 <김복동>이 분노를 일으키고 공포를 주는 <주전장>과 함께 하면, 감동으로 따뜻해진 가슴은 분노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대상을 향해 다짐하게 된다. “내가 뭐라도 해야지“
<김복동>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정기집회 혹은 국내외 강연장에서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다. 김복동 할머니는 2019년 1월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한 채로 소천하셨다. 김복동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공식 사죄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아베총리는 거부하고 있다. 왜 일까? <주전장>은 그 이유를 파고든다.
<주전장>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는 것을 왜 그렇게 거부하는지, 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는지, 그리고 한편으로 일본 언론은 또 왜 그렇게 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적대 발언을 해온 인물들, 즉 즉 일본 극우 정치인, 관료, 언론인, 교수들과 그들에 공조하는 미국인 인사들을 인터뷰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쟁점 별로 정리한 후에 피해자를 지지하는 한국과 일본의 인사들, 즉 피해자 지원 활동가,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인이었던 노인의 반박 인터뷰를 붙여 편집한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마치 논쟁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거둔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키 데자키 감독이 한 인터뷰에 따르면, 2014년까지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던 자신이 접한 너무나도 다른 주장들로 인해서 머릿 속은 전장터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정부 문서를 포함해서 사료들을 찾고 찾아 엮었을 것이다. 그 결과, 감독이 애초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주전장>은 일본 우익의 주장이 쟁점별로 번번이 억지 왜곡을 하거나 느낌을 사실로 둔갑시킨 후 사실로 기정하고 퍼나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그들의 주장은 아베가 갖고 있는 생각 및 주장과 일치한다.
쟁점은 강제 동원이냐 자발적 동행이냐, 성노예냐 매춘부였냐, 위안소는 일본군의 책임이냐 민간업자의 책임이냐 등에 대해서인데, 일본의 극우세력과 아베가 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가장 강력한 주장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증거다” <김복동>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몸이 강제동원되었고 성노예로 살아야했던 증거라고 외쳤으나,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극우세력인 역사수정주의자들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효력이 없다며 일축한다. 대한민국에만도 2019년 7월 현재 정부에 등록한 21명의 증거가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끝내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패전하면서 일본군과 정부에 불리한 모든 문서를 소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문서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위안소 운영에 대한 문서는 소실되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하기 보다는, 말하자면 성폭행을 당했다는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만을 반복한다.
왜 그럴까? <주전장>은 극우 지식인과 정치인으로 구성되어 일본 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정치담론을 유포시키는 조직인 ‘일본회의’의 활동에 주목한다. 아베의 내각과 연결되어 있는 일본회의는 일본을 2차 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되돌리기를 꿈꾼다. 다시 말하면 일본제국을 부활시키려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과실 없는 강대국 일본으로 추앙받게 하려면 과거의 잘못은 지워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청사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난징대학살도 날조된 이야기로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지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과거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전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통해서 일본이 어떤 미래로 향하려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반평화적이며 여성차별적인 세상이 될 것인지 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변화를 막지 못한다면 한국에 남아있는 21명의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들은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사족. <김복동>과 <주전장>을 보러 영화관에 갈 경우의 행동 요령.
<김복동>을 보러 갈 때는 반드시 손수건이나 휴지를 챙겨갈 것. 그러지 않으면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될 것임.
<주전장>을 보러 갈 때는 혹시 생수병을 상비하시던 분들은 영화관 앞에서 버리고 들어갈 것. 이죽거리는 극우 인사의 인터뷰영상을 보노라면 인내는 한계를 넘을 것이고 손에 쥐고 있던 병을 스크린에 던질 수 있음. 고혈압 환자는 반드시 피해야할 영화.
글 염찬희(회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