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조미료 듬뿍 SBS 드라마 <상속자들>, ‘맛’은 있지만 ‘건강’은… (2014년 1호)
등록 2014.01.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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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 듬뿍 SBS 드라마 <상속자들>,

‘맛’은 있지만 ‘건강’은…

 

양희주 방송모니터분과 회원 l hey.summer.news@gmail.com

 

 

‘손님을 아는 드라마.’ 지난 해 말 평균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SBS드라마 <상속자들> 이야기다. 드라마의 주요 무대는 고등학교, 주요 인물은 모두 고등학생이었음에도 청소년은 물론 중년 여성들까지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시청자는 왕자 같은 남자주인공과 신데렐라 여주인공이 사랑에 전부를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울고 웃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로맨스를 꿈꿨다. <상속자들>은 무료한 일상에 단비 같은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재미’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드라마를 평가하지 않는다.

 

<상속자들>은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최고였지만 우리사회에서 ‘유의미했느냐’를 따져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드라마가 끝난 후 ‘시청자에게 무엇을 주었고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했는가’를 고려하면 사실 ‘없음’을 넘어 ‘우려되기까지 하는 수준’이다. 드라마는 스테레오타입을 깨지 못한 전형적인 신데렐라 드라마였다. 더욱이 사랑의 개연성은 턱없이 떨어졌고 극의 얼개도 엉성했으며 지금의 현실과 동떨어지는 부분도 수두룩했다. 21세기형 미남 미녀가 나와서, 다소 미흡했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중반 드라마를 연기하는 수준이었다.

 

# 청각장애인인 여자 주인공의 엄마는 재벌 집 입주 가정부 로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다. 입주 가정부도 겨우 구한 직업이다. 드라마 속에서 청각장애인 구직자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여자 주인공은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지금보다 10원어치 나은 삶’을 꿈꾼다. 정말 현실에서도 장애가 있는 입주 가정부 엄마는 자식한테 민폐만 끼치는 존재일까?
# 재벌 아들은 화가 나서 무면허 운전을 한다.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지만 형이 오자 쿨하게 “처리해!” 한마디하고 나가버린다. 아직 미성년자라 훈방 조치될 수 있다고 치자.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인지 반성의 태도는커녕 경찰한테 인사 한마디 없다. 오히려 당당히 경찰서를 빠져나간다. 경찰은 찍소리도 못한다. 재벌은 너무도 당연하게 공권력 위에서 군림한다. 정말 현실에서도 돈이면 다 되는 것일까?
# 여자주인공은 ‘사회적 배려자(사배자) 전형’으로 극소수 재벌 자식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이전에 같은 전형으로 들어왔던 학생은 재벌 집 아들의 표적이 돼 맞고 괴롭힘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 주인공에게 “너도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전학 간다. 정말 현실에서도 권력자는 폭력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가?

 

드라마에는 이처럼 ‘계급’, ‘차별’, ‘권력’, ‘폭력’이 난무한다. 설령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로 수렴된다 하더라도 방송은 ‘시청자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야 하는 분야다. 제작진은 손님인 시청자가 열광하도록 자극적 소재를 있는 대로 구겨 넣었다. 결과는 “돈만 있으면 ‘차별’, ‘권력’, ‘폭력’은 당연하게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가 됐다. 더구나 드라마 속 악인은 우리가 알던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이 아니다. 외모도 조건도 현실엔 없는 완벽한 왕자다.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로 폭력을 일삼던 왕자가 어느 날 개과천선하자 어쩐지 너무 쉽게 용서받는 분위기다.
 

 


드라마는 15세 관람가다. 부모들은 평일 저녁 아이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다가 여러 번 낯이 뜨거웠다. 드라마는 20회 방영 내내 ‘우리 사회는 가난을 상속받은 자와 부를 상속받은 자로 계급이 나뉘고 이 사이에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며 강자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과장된 현실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사회는 너무나 관대했고 약자에게는 벗어날 길 없는 지옥이었다. 물론 간혹 현실 비판의 시도가 보이긴 했다. 장치 부족으로 묻혔을 뿐이다. 작기는 이미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극을 이어나가는데 바빠서, 흐트러진 것들을 바로 잡을 겨를이 없어 보였다.

 

악인의 ‘차별’, ‘폭력’, ‘권력’, ‘계급’이 제대로 그려지면 도리어 드라마는 배움을 준다. 어린 시청자는 방송이 제시한 ‘올바른 기준’에 따라서 악인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할 수 있고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상속자들>은 제대로 된 가치판단은 배제한 채 너무 많은 반사회적 현상들을 보여줬다. 시청자가 문제의식을 느낄 틈도 없이 사랑싸움에만 매몰된 채 극을 흘려보냈다. 그래서 <상속자들>은 확실히 ‘손님을 아는 드라마’였다. 시청률에 집착한 나머지 온갖 조미료를 쏟아 부었으니 확실히 맛은 있었다. 그런데 시청자 건강에 얼마나 좋을지, 혹여 해가 되진 않았을지 걱정되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