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한 영화” (2014년 2호)
등록 2014.03.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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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한 영화”


이병국 회원 l xxnnn@daum.net  




<또 하나의 약속>은 아시다시피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배우 박철민이 연기하는 ‘한상구’는 황상기 씨, 백혈병에 걸려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 운명한 ‘한윤미’는 故 황유미 씨, ‘진성반도체’는 삼성반도체가 실제이다. 요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의외로 많고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이다. 완성도가 높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주는 감동이 순도 100%의 픽션이 주는 것의 배의 곱절을 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말 개봉했던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 등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여타의 실화바탕영화와는 다른 <또 하나의 약속>만의 특징이 있다.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과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최강의 실세지배계급에 돌직구를 던진다는 점이다.


실화바탕영화는 흔히 대중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거나 까맣게 잊힌 과거의 사건들을 감독이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영화화된다. 이처럼 주로 끝난 사건을 재조명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럼으로써 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끌어 흥행의 기반을 다진다. 그에 반해 <또 하나의 약속>은 주인공의 모태인 황상기 씨와 몇몇 분의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대해 승소하긴 하였지만 아직 재심이 남아 있으며 많은 피해자들이 재판 중이거나 준비 중이다.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영화는 언론을 대신해 여론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도가니’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오래 전에 묻힌 사건을 영화 한 편이 국민적 여론을 형성해 결국 문제의 학원을 심판해 냈다. 그 어떤 시사프로나 다큐가 해내지 못한 일을 관객의 감성을 건드린 영화 한 편이 해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몇 명의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이 더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관심은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큰 힘을 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무소불위의 권력 삼성에게 주먹을 날리는 최초의 영화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면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얼마큼 영향력을 갖고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는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삼성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위대한 기업으로 인식한다. 언론은 ‘광고’ 때문에, 고위공직자들은 ‘검은 돈’ 때문에 바른 말과 바른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사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특정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닌 가족드라마라는 점을 강조한다. 감독의 말대로 영화의 감성적 부분은 초기 공감대 형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부분을 넘어서면 관객들은 ‘대자본의 폭력에 죽어나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이라는 불편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에서 나오는, 돈으로 산재신청 못하게 막으려는 장면,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장면, 증인과 가족을 매수하는 장면, 국가소송에 관련기업이 변호해주는 장면 등등. 누가 봐도 관객들의 잠재적 분노를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영화적 표현에 있어 강도가 약할 수는 있겠다.


이 영화의 흥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욱 많은 사람이 보면 볼수록 삼성을 비롯한 후안무치의 대자본을 향해 날리는 펀치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럼으로써 삼성에 대한 비상식적인 인식에 작은 균열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사실 영화 내적으로 바라본다면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이러한 비판을 의미 없게 만드는 영화라고 본다.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상업영화라는 것으로 족하다. 이 영화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다. 미디어에서 다루기 꺼려하는 주제의 영화라서 제작할 때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 ‘제작두레’, 즉 시민들 1만여 명의 십시일반으로 시작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여느 영화처럼 바로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스크린을 본다. 제작두레로 소액을 기부한 모든 사람의 이름들이 들어있는 엔딩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개봉 초기라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앞으로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