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활동가 인사]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김경아 활동가> (2014년 1호)
등록 2014.01.2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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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김경아 민언련 활동가 l my-planet@hanmail.net



2014년 첫 출근 날, 애오개역에 내려 사무실로 향하다 문득 생각났다. 오늘은 점심 먹고 출근하는 날이란 걸. 습관처럼 9시 30분에 맞춰 출근했는데, 아..... 밤새 뒤척이다 잠도 잘 못 잤는데, 한 10분 정도 지각이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을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사무실로 향했다. 달리 갈 데도 없고, 사무실에 이미 나와 계신 분도 있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동료가 있어 살짝 덜 억울해졌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조화시켜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는 학생운동으로 4년, 졸업하고는 사회단체 활동으로 3년을 일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건 분명한데 더 이상 하고 싶어지지 않아져 현장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그때는 내 삶과 내 운동이 하늘과 땅처럼 동떨어져 있어 빨리 땅에 발붙이지 않으면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결혼하고 나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공부도 하면서 20년을 보냈다. 그 과정을 보내고 나니 내 삶과 내 운동을 조화시킬 길이 멀리 있지 않음이 보였다. 남들은 늦은 나이랄 수도 있는 나이에 민언련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다. 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면서도 반신반의했었다. ‘과연 나를 뽑아줄까?’ 17살 큰 아이한테 이야기했다. “민언련이 만약 나를 선택한다면, 정말 훌륭한 조직인거야”라고. 가진 거라고는 민언련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뿐이었으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의지’를 알아차려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대를 돌이켜보면, 운동을 그만둘 당시 운동이 내 삶을 갉아 먹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기대도 많았고 실망도 많았던 탓이겠지. 많은 일들을 겪고 삶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 진심이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최선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일찍 나온 사무실에서 잠깐 억울했던 마음을 다잡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할 일을 찾았다.  


민언련에서 일한 지 석 달이 됐다. 그 시간동안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내 삶이 곧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가능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이후 찾지 않던 시청광장에 다시 서기도 했다. 추위에 얼어붙어 덜덜 떨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덩어리의 사람들 중에 나도 같이 끼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며칠간 나를 혼란에 빠트린 일도 있었다. KBS 본관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수신료인상 반대 기자회견 중에 청원경찰한테 휘둘리며 위협당한 적이 있다. 안이함이 그저 ‘일상’이었던 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때 느낀 공포감은 차라리 당황스러움이었다. 그 공포감을 인정하는데 하룻밤이 필요했다. 만연한 저들의 폭력은 우리가 저들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순간, 곧바로 우리 눈앞에 닥치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그 자리의 모든 여성 활동가들에게서 힘을 얻어 공포를 넘어가는 법을 배웠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힘들지 않은 이 고마운 느낌에 감사한다. 민언련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이 내 삶으로 들어온 것에도 감사한다.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싸워가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