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2014년 1호)
등록 2014.01.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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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권재현 경향신문 기자 l jaynews@kyunghyang.com

 


지난해 12월22일 ‘평온한’ 일요일 아침.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심장인 민주노총 사무실을 경찰이 침탈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민주노총이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 본사 사옥 건물은 하루종일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13층부터 15층까지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고 있는 민주노총에 진입하려면 경향신문 건물 진입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였다. 


 “와장창창” 소리와 함께 시작된 경찰의 강제진입 작전은 순식간에 경향신문 사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녹색의 선명한 경향신문 로고가 적힌 1층 유리 현관문이 뜯겨나갔다. 수천 명의 경찰이 건물을 에워쌌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잡힌 채 차례로 들려나왔다.

 

사옥 1층 로비로 들어선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명목으로 경향신문 건물을 샅샅이 훑었다. 2층, 3층, 4층, 그리고 신문 제작을 위한 핵심 시설인 편집국과 전산제작국이 위치한 5층과 6층을 지나 출판국, 사업국, 전략기획실, 미디어전략실 등이 있는 7층과 8층까지 올라갔다.


구내식당과 휴게실이 있는 9층은 민주노총 본격 침탈을 위한 숨고르기 공간이었다. 이후 경찰은 좁은 복도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강한 저항과 다시한번 맞닥뜨렸지만 책걸상을 바리케이트로 앞세운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배수진도, 소화전으로 물을 뿌리며 막판 대치에 나선 결기도 경찰의 진입작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건물 곳곳이 심각한 훼손을 당했고 누수로 바닥이 물바다가 되는가 하면 정전 위험까지 제기되는 아슬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참담했다.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단지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만을 가지고 민주노총과 경향신문 사옥 난입이라는 무모한 작전을 감행한 경찰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날 사건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인 동시에 진보언론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이 어떤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공권력의 횡포였다.

 


유린된 건 사옥만이 아니었다. 짓밟힌 건 바로 우리들이었다. 경향신문 구성원 모두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신문 제작을 위해 출근하던 기자들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고 정문 대신 쪽문으로 겨우 출입을 허락받았다. 경찰은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 일부가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는 이유를 대며 퇴근하는 경향신문 기자의 차량을 세워 트렁크를 열 것을 요구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1월 14일 자진출두하겠다는 철도노조 지도부와 체포해가겠다는 경찰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경향신문 사옥엔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진출두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면서 제2의 사옥 유린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발생했더라도 지난번과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경향신문은 또다시 공권력이 무리한 사옥 침탈을 강행할 경우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근무조를 편성하고 비상연락망도 가동하는 등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그러지 못 했다. 난생 처음 당해보는 사태에 경향신문 대다수 구성원들은 가슴을 졸일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제대로 몰랐다. 현관문이 깨져도, 무장경찰이 사옥 곳곳을 짓밟고 다녀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아우성치며 끌려나가도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경찰이 주장하는 철도노조 파업의 불법성이나 공권력 집행의 정당함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부당한 공권력에 어떻게 어떤 수위로 저항해야 할지 제대로 의견을 수렴할 시간이 없었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치 않았다.

 

사수조를 결성해 경찰의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부터, 공권력의 사옥 난입 반대입장을 담은 회사 성명을 즉각 발표해야 한다는 견해,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론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다양한 의견을 신속하게 한 곳으로 모으지 못했다. 회사 차원의 지침도 없었다.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를 핑계로 민주노총과 경향신문을 동시에 ‘손보려고’ 들어온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 대비가 충분치 못했던 까닭이다. 구성원들이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뒤늦게 내놓은 그 어떤 치밀한 대책도 침탈 당시 사옥 유린에 자신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구성원들의 분노를 깨끗이 씻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경향신문 사측은 물론이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 사측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어야 할 노동조합 역시 소극적 사태 인식과 잘못된 상황 판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노조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민주노총 침탈 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경향신문 사옥 유린에 대한 분노로 경향신문 모든 구성원들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

 

   경향신문은 이제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대낮에 대한민국 진보언론의 본사 건물을 수천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정권의 ‘과감성’은 결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더 굳은 각오로 정신 바짝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