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그로부터 한 달 (2014년 1호)
등록 2014.01.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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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그로부터 한 달

 

주현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작성자 l hide613@hanmail.net

 

 

지난해 12월 10일, 철도노조 파업 하루만의 무더기 직위해제 소식을 듣고 정경대학 후문에 대자보를 써 붙인 지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만약 그때로 돌아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더라면 결코 쉽게 글을 쓰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대자보 한 편이 야기한 지난해 말의 열풍은 엄청나다 못해 기이했는데요. ‘안녕들’ 출판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13일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대자보는 총 800여 장에 이르고 있습니다. 접근성 등의 문제로 페이지에 게시되지 못했거나 다른 곳에 붙은 글까지 포함한다면 적어도 천여 장의 자보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나온 것으로 예상됩니다. 천여 장의 대자보, 아니 천여 명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목소리로 ‘안녕치 못함’을 외친 이 현상에는 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요.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제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쓰게 된 이유에는 8할의 울분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회현실, 파업 하루만에 노동자 4천여 명을 직위해제한 코레일을 비롯해 밀양의 고압 송전탑 문제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내려진 징역 및 수십억의 벌금 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전 도무지 안녕할래야 안녕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이 안녕하시라, 안녕하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기에 다만 이런 현실에 대해 물음을 던졌을 뿐입니다. 저는 이러한데, 당신은 정녕 안녕하시냐고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외치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 타인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원했던 답은 사태에 대한 해결책도, 결의 어린 각오도 아닌, 각자의 안녕하지 못함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현상의 출발에는 바로 상대방과의 교감으로부터 나온 스스로의 외침이 있습니다. “네가 안녕치 못해 나도 안녕치 못하다”는 거지요.

 

이전의 ‘힐링’ 문화가 구조적 문제를 자신의 내부에서 해결하길 원했던 방식에 머물렀다면 ‘안녕들 하십니까’는 말하는 것이란 허락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안녕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외치고 실천해야 한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안녕치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학교와 집 앞에, 버스 정류장과 전철역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이란 영역을 넘어 수도권과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로까지 퍼져나가 메아리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저와 함께한 ‘안녕들’은 목 끝까지 차오른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파편화된 개인의 외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구조적 문제란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안녕치 못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학교나 지역, 또는 의제별로 뭉치고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연대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12월 28일, “안녕들 하십니까”가 준비한 ‘뜨거운 안녕’이란 행사를 앞두고 저는 제 손으로 붙인 대자보를 철거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안녕하시냐는 물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소임은 화답으로 터져 나온 수없이 많은 대자보들에 의해 일정 부분 해소되었으므로 이제는 서로가 실제 각자의 공간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정치’라고 저와 ‘안녕들’은 믿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자보를 붙이기 전과 이후,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마다 그건 저 역시 경험하지 못했기에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이젠 저 혼자만의 물음과 실천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대자보 정국 또는 운동이라 불린 현상은 2008년 촛불과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점을 갖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속한 자리에서 대자보를 써 붙이는 실천으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실천에는 자신의 서사가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한 물음이 타인의 안녕치 못함과 공명을 일으켜 퍼지고 있는 것이 ‘안녕들 하십니까’ 그 자체이고 앞으로의 방향입니다. 그것이 또 어떠한 나비효과를 일으켜 세상을 울릴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아니 사회가 안녕하지 못한 이상 한 번 터져 나온 목소리는 그 목소리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