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곰과 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2014년 3호)
등록 2014.04.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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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박혜진 회원 l chic_qhqo@naver.com



큰 덩치를 가진 무시무시한 곰과 지하에 사는 더러운 쥐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곰과 쥐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상과 음악의 아름다운 조화로 버무려진 이 사랑스러운 동화는 러닝타임 내내 따뜻함을 전한다. 정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딱 좋을 착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에 물들어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은 아이 같이 순수한 얼굴을 하고선 오히려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하세계에 사는 꼬마 생쥐 셀레스틴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지만 치과의사가 되라는 주변의 압박을 받으며 곰의 이빨을 구하러 지상으로 나온다.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곰의 이빨을 훔치다 들켜 도망치던 셀레스틴은 쓰레기통 안에 갇혀버린다. 한편 지상에는 가난한 거리의 음악가인 곰 어네스트가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하지만 외면을 받는다. 배고픔에 쓰레기통을 뒤지던 어네스트는 셀레스틴과 만나게 된다. 셀레스틴은 어네스트에게 곰 이빨을 파는 가게에서 이빨을 훔치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어네스트의 도움으로 셀레스틴은 엄청난 양의 곰 이빨을 들고 지하로 돌아간다. 그러나 셀레스틴을 돕다 지하에서 깜빡 잠이 든 어네스트의 존재가 쥐들에게 발각되고, 무서운 곰인 어네스트와 어네스트를 지하에 데리고 온 셀레스틴은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게다가 이빨을 훔친 죄로 지상에서도 범죄자가 되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곰과 쥐 양쪽 경찰들에게 쫓겨 숨어 살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만들어진’ 편견이었다. 쥐에게 곰은 자신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공포의 대상이고, 곰들에게 쥐는 쫓아내야 하는 존재다. 지상에 사는 곰, 그리고 지하에 사는 쥐들이 서로에 대해 가진 공포심과 혐오감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세뇌되거나, 혹은 사회에 의해 조장되고 가공되며 실체로 자리 잡는다. 그곳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기 때문에 공존도 불가능하다. 현실 사회도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편 가르기를 일삼고, 편견에 갇혀 ‘우리’가 아닌 이들을 배척하며 적대시하고 있진 않은가?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것은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저지른 범죄였다. 남의 가게를 파손하고 절도를 저지른 데다 심지어 도주까지... 어른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어찌 됐든 쟤네 둘은 범죄자잖아? 지나치게 미화하는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둘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사실 그들이 속한 사회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할당량의 곰 이빨을 가져와야 했던 셀레스틴과 모두에게 외면 받고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어네스트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비주류였고, 궁지에 몰린 자신들을 보듬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서로 뿐이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약자를, 비주류인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에서도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엔 어차피 애들 보는 만화니까 유치하고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뻔한 교훈들이나 듣고 오겠지 하는, 조금은 삐딱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다 보고나선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됐다. “나는 그런 뻔한 교훈을 비웃을 수 있을 만큼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나?” 사람을 볼 때도, 상황을 볼 때도 늘 색안경을 끼고 당연한 듯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나. 남몰래 사람들에게 순위를 매기며 차별을 하고 있는 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이런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했고, 나를 부끄럽게 했다. 3D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끄는 요즘, 이 감성 충만한 2D 애니메이션 한 편과 함께 저편으로 치워뒀던 아날로그 감성도 충전하면서 우리가 잊고 지낸 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