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몰이' 진흙탕 속에서 발견한 의혹
<표 1> 5월 12일 모임 발언 중 녹취록 내용과 실제 이석기 의원 발언 내용
한편, 진보당과 변호인단 측에선 제보자 이아무개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단 근거를 몇 가지 든다. 대표적으로 국정원 수사관의 금품제공 사실(9차 공판), 국정원과 검찰이 감춘 2010년 초 이씨의 진술조서와 2013년 진술조서 내용이 다른 사실(36차 공판) 등이다(두 진술조서의 차이에 대해 <표 2> 참고). <경향>은 위에 언급한 사설에서 “제보자 이씨는 공판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 RO에 가입했다면서도 가입식 날짜와 장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며 이씨의 일부 발언과 행동에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 <법원, ‘오락가락’ 국정원 제보자 진술도 증거로 받아들여>(5면/2.18) 또한 변호인단의 “제보자의 R.O 조직에 대한 진술이 오락가락하며 객관적 물증이 없는 상태”라며 반박한 발언을 소개했다. 한편, <조선>, <중앙>, <동아>에선 그러한 의혹을 언급하는 기사는 없었다.
<표 2> 이아무개 씨의 두 차례 진술(2010년, 2013년) 중 엇갈리는 부분
녹취록 내용대로라도 ‘내란음모’가 맞나?
판결에 쓰인 증거자료가 100% 맞다 해도, 이석기 의원 등의 혐의가 ‘내란음모’에 해당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R.O의) 합의는 단순한 추상적, 일반적 합의의 정도를 이미 넘어선 것”이라며 그들의 활동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녹취록에 담긴 내용들, 예컨대 무기습득이나 공공시설 파괴 등은 130여 명 ’R.O’ 관련자들의 힘으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판결문 어디에도 내란의 대상, 수단, 방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적어놓은 부분이 없다.
<한겨레>는 몇몇 정황과 법적 근거를 거론하며 이 사건이 내란음모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겨레>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사설/2.18)은 “판결문에서 ‘음모가 계획의 세부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밝혔다”며, “‘장난감총’ 운운하고, 어린아이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회합이 내란 음모를 위한 조직 모임이라는 게 합당한 판단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겨레>의 의문은 24일 <[한겨레 프리즘] 코앞에서 멈춘 주먹질>(칼럼/2.24)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 칼럼은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소개한 ‘형법상 음모죄에 대한 대법원 판결(1999. 11. 12) 내용을 소개한다. “단순히 범죄결심을 외부에 표시.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중략) 그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될 때 비로소 음모죄가 성립한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이석기 의원 등은 어떤 구체적 행위 하나 없이 말만 했을 뿐이고, 실행을 위한 그 이상의 어떤 계획도 더 나오지 않았다고 이 칼럼은 언급한다. <경향> 또한 이번 사건이 ’실행의 구체성‘이 없다며, 내란음모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경향> <실행 가능 수준 내란 모의 여부가 항소심 쟁점>(3면/2.18)에선 재판부가 ‘내란음모 실행의 구체성이 판단됐다’고 한 데 대해, “해당 발언은 녹취록 외에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은 데다 실제 내란을 할 시기, 방법, 실행인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문건으로 작성된 증거물은 없다”고 했다.
한편 <조선>은 <[이석기 내란음모 유죄] 재판부 “RO는 地下 혁명조직, 이석기가 총책 맞다” 법원, 重刑 선고한 이유>(3면/2.18)에서, <동아>는 <재판부 “RO 폭동 준비”… 檢증거 대부분 인정>(3면/2.18)에서 재판부가 내란음모 판결의 근거로 밝힌 “폭동의 세부 계획이 없었더라도 논의된 내용으로 볼 때 폭동의 실현 가능성과 위험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내용을 그대로 소개했다. <중앙> <민주질서 강조한 ‘이석기 내란음모’ 판결>(사설/2.18)은 재판부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재판 과정에 이상이 없었으니 진보당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떠한 이유에서도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 평가했다.
<조선>과 <동아>, 의혹 제기 대신 비난으로 일관
<조선>과 <동아>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석기 일당’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했다. <조선>은 <법원, 대한민국 파괴 세력이 쓴 가면 벗겼다>(사설/2.18)에서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들에 ‘대한민국 파괴 세력’, ‘괴물’, ‘극단적 반(反)민주 전제(專制) 체제인 북한을 숭상’ 등의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들 ‘주사파 세력’을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을 강조한다. <“RO, 反국가단체 민혁당보다 더한 폭력혁명조직”>(10면/2.20)에선 재판부의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과거 민족민주혁명당과의 강령 유사성’, ‘내면화된 북한 추종’, ‘폭력혁명론’ 등의 내용을 소개한다.
▲ <대한민국 체제 전복 기도한 이석기 RO 중형 마땅하다>(동아사설/2.18)
<동아> <재판 공정했다던 李… 유죄 선고뒤 변호인은 “꿰맞춘 판결”>(2면/2.18)은 기자 경력 1년 6개월인 채널A 기자의 재판 참관기다. 재판의 무게감이 큼에도, 단순한 현장 묘사 형식으로 가볍게 쓴 기사가 2면에 들어가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기사 중 이석기 의원의 지지자들을 ‘연예인 팬’에 비유한 부분도 있다. 또한 <동아>는 내란음모 사건 발생의 책임을 진보당 뿐 아니라 민주당에 강하게 묻는다. <대한민국 체제 전복 기도한 이석기 RO 중형 마땅하다>(사설/2.18)에서 “이 의원의 정치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고 국회 진출까지 도운 노무현 정권과 민주당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총선에서 ‘묻지마 야권 연대’로 통진당을 키워준 민주당의 책임” 등의 내용으로, 통합진보당 같은 ‘종북 정당’의 세력을 키워준 민주당에 1차적 책임이 있음을 언급한다. 바로 다음날에도 <민주당, 이러니 ‘통진당 2중대’ 소리 듣는다>(사설/2.19)에서 문재인 의원에 대해 “이(석기) 의원이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으로 유죄를 받은 뒤 사면과 복권될 때 대통령민정수석으로 관여한 적이 있다. 그의 제명 반대가 이런 인연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비난한다.
국정원의 의도는?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살펴야 할 것은, 이 시점에 내란음모 사건 수사를 발표한 국정원의 의도다. ‘내란음모’에 대한 발표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점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이 점차 드러나고 있던 8월말이었다.
<경향>과 <한겨레>가 파악한 ‘국정원의 의도’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비판 목소리를 무마시키는 것이다. <경향> <‘대선개입’ 궁지 국정원, ‘RO 녹취록’ 근거 전격 수사>(4면/2.18)에서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대국민보고서를 발표했으나, 같은 날 이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되면서 울림은 작았다”며, 이번 내란음모 사건이 그 이전의 국정원 개혁요구 등 모든 사안을 블랙홀처럼 삼켜버렸다고 했다. <한겨레> 또한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사설/2.18)에선 국정원이 대선개입 행위에 대한 비난여론을 돌리고자 사건을 과대포장해 내놓은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편, <조선>, <중앙>, <동아>엔 국정원의 의도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없었다.
이번 사건의 여러 의혹들과, 이 사건이 ‘내란음모’가 맞는지 등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번 사건의 ‘연출자’인 국정원이 이 상황을 이용해 대선개입 사건과 ‘탈북화교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에서 벌인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얻으려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 7명은 정식으로 항소했다. 곧 2라운드가 시작된다. 여러 의혹들의 규명과, 국정원의 ‘숨은 의도’를 놓치지 않기 위한 언론의 더 많은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