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여행] 제자들과 함께 하는 한라산 등반기 (2014년 2호)
등록 2014.03.04 19:35
조회 581



제자들과 함께 하는 한라산 등반기


안진우 회원 l realrain21@hanmail.net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들에겐 늘 강사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과 제자라는 관계에 목마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더욱 학생을 대할 때면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인의 역할 이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작년 내가 담임을 맡았던 재수생들과 나는 점심시간에는 산책을 같이 하고 저녁시간에는 운동을 하고 종례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강사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자 노력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원을 졸업(?)하고 수능 시험을 마친 후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눈 내린 한라산을 여행하게 되었고 민언련 회원 분들도 겨울 한라산을 여행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어설프지만 한라산 여행기를 써 보고자 한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날 밤 공항 근처 여관에서 밤을 지새운 제자들 세 명이 제주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전 일곱 시 반. 미리 제주에 와 있었던 나는 아들과 함께 제자들을 맞이했고 차를 몰고 바로 어리목 입구로 향했다. 한라산을 등반하는 코스는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는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가 있고 백록담 남쪽 절벽인 남벽분기점까지 오를 수 있는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 돈내코 코스가 있다. 이번 산행은 산을 많이 올라보지 않은 제자들과 이제 아홉 살이 되는 아들이 있기에 백록담은 무리라고 판단해 남벽분기점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그리고 눈 내린 한라산의 절경은 영실 코스가 제일이기에 영실 코스로 올라가기로 결정하였다. 일반적으로 겨울 한라산은 시간이 되면 입산이 통제되기 때문에 오를 때 시간이 덜 걸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은데 영실코스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리고 어리목 코스는 세 시간 정도 걸리니 영실로 올라가서 어리목으로 내려가면 제일 좋은 코스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차가 있었기 때문에 내려오기로 한 도착지 어리목 코스 입구에 차량을 주차했다. 시간은 오전 여덟 시 이십 분. 주차장 바로 옆에 버스 정류소가 있는데 한 시간에 한 대가 운행된다. 제주시에서 출발해 어리목을 지나 영실로 가는 버스인데 그 버스가 여덟 시 삼십 분에 도착하므로 그것을 타고 영실로 가기로 한 것이다. 십 분 정도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영실 입구에 내려서 등반을 시작했다. 오십 분 정도를 걸어가니 영실 매표소가 나오고 거기서 주먹밥을 사서 간단히 배를 채웠다. 시간은 거의 열 시가 다 되었고 흐리던 날씨는 어느덧 맑게 개어 있었다. 눈 내린 산을 오를 때는 아이젠을 꼭 착용해야 하는데 제자들은 젊은지라 무모하고 용감해 아이젠 없이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올랐다. 



눈 내린 한라산은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들은 모두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고 탁 트인 언덕에 끝없이 펼쳐진 눈밭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들은 올라가는 내내 어른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고, 어젯밤 거의 자지 못해 피곤해하던 제자들은 저마다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며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홉 살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코스이니(물론 내가 아들을 조금 강하게 키운다) 민언련 회원 분들도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겨울 제주 비행기는 저가 항공사 기준 19,000원까지 나온다. 물론 평일 기준이고 공항세와 유류할증까지 붙으면 삼만 오천 원 정도 된다. 차량을 렌트한 경우에는 렌트한 차량을 나처럼 어리목 입구에 주차하고 버스로 이동해 영실로 가는 것이 좋으며 이때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남벽분기점 바로 밑에 윗세오름 대피소가 있는데 거기에서 사발면을 한 사람당 두 개씩 판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발면이니 꼭 드셔보기 바란다. 아이젠 없이 산을 오르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었으나 하산하는 방면인 어리목 쪽은 매우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워 몹시 위험했다. 우리는 두 명은 아이젠이 있고 두 명은 없어서 한쪽 발에만 아이젠을 신고 내려왔는데 한쪽에 힘을 주느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매표소에서는 조금 비싸게 판매하므로 미리 준비해 가기 바란다.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우리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물론 술자리와 함께 하는 바람에 정작 독서 토론은 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바람직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믿는다. 한라산을 오르며 나눈 이야기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이번 주에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함께 보기로 하였으니 우리의 산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