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유출 보도는 어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영수 활동가 l bbingboy@gmail.com
지난 1월 31일 여수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GS칼텍스 송유관을 들이박아 원유 16만 4천 리터가 유출되었다. 1995년 시프린스호의 원유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지 18년여 만에 또다시 기름띠로 뒤덮인 어장 모습을 봐야하는 어민들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사건 초기 GS칼텍스는 관계 기관에 한 시간 가량 늦게 신고했고, 원유 유출량도 800 리터 정도에 달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200배가 넘게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로 밝혀지고 있다. 대형 선박이 입항할 때 법적으로 도선사라는 전문가가 승선해 안전한 정박을 유도하는데 이 도선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평소보다 두 배가 빠른 속도로 접안을 시도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언행도 문제로 떠올랐다.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사고 다음 날에야 현장을 방문했고, 현장에서 코를 막는 행동으로 구설에 올랐다. 결정적으로는 ‘1차 피해자는 GS’라는 발언으로 어민들과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급기야 발언 다음 날 전격 경질되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들, 특히 방송은 GS칼텍스의 늦장 신고와 원유 유출량 축소 발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는가 하면 임명 당시부터 전문성 등 비판이 제기되었던 윤진숙 전 장관의 이번 언행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몰고 가면서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제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방송 3사가 이번 사건을 축소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건 발생 7일 째인 2월 6일까지 KBS, MBC, SBS 보도 건수는 각각 10, 10, 8건 이었다. 여기서 윤진숙 전 장관 관련 보도 2~3건을 제외하면 하루에 한 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소유 선박의 기름유출 사건 당시 방송 3사의 보도 건수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표 1]) 당시 일주일 간 방송 3사의 보도 건수는 각각 45, 40, 42건 이었다. 2007년 보도 건수의 2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여수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 (2014. 1. 31) |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 (2007. 12. 7) |
KBS 10건 |
KBS 45건 |
MBC 10건 |
MBC 40건 |
SBS 10건 |
SBS 42건 |
[표1] 사건 초기 일주일간 방송 3사의 보도 건수 비교
특히 KBS의 무관심 정도가 심했는데 KBS는 사건 당일인 1월 31일 관련 보도를 단신으로 처리했는가 하면 2월 1일에는 10번째, 2일에는 14번째 꼭지에서 다뤘다. 더욱이 3일 이후에 20번째 꼭지 내외에서 다뤄진 것을 보면 무관심이 도를 지나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MBC와 SBS가 관련 소식을 대체로 10번째 이내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확연히 비교 가능하다.
더불어 이번 사건에서 GS칼텍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등 책임 소재를 물타기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모든 사안이 그렇듯 사고 발생 원인은 물론 사후 대처가 어떻게 진행됐는가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GS의 늦장 신고와 원유 유출량 축소는 피해 확산 방지 등의 대처에 혼선을 초래한 측면이 크다. 그런데도 방송사에서는 제대로 된 비판을 찾을 수 없다.
2월 3일 월요일 여수해양경찰서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같은 날 MBC는 “한마디로 과속 때문”이라며 “유출된 원유의 양도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16만 리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GS의 미숙한 대응과 유출량 축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SBS도 “정유업체 발표보다 200배 이상 많은 16만 4천 리터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출량은 당초 업체 측이 추정한 800리터의 200배가 넘는다”고 보도하면서 GS를 ‘정유업체’, ‘업체 측’이라고 보도했다. 사건 당일 단신으로 보도했던 KBS는 “GS칼텍스의 초기 대응도 미흡했다”며 그마나 관련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면서 체면을 차리는 정도였다.
한편 윤진숙 전 장관의 경질 관련 보도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월 5일 윤 전 장관은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수습을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의원들이 어민들에 대한 신속한 피해보상 등 대책 마련을 촉구하자 “기름유출 사고의 1차 피해는 GS칼텍스이고,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발언해 분노를 일으켜 결국 다음 날 전격 경질되었다. 그러자 방송들은 박 대통령의 신속한 결정을 부각하면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엄중 문책 원칙을 실행한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면서 KBS와 MBC는 그동안 윤진숙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을 다룬 별도의 기사를 통해 해임이 당연하다는 식의 보도를 내놨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핵심을 비켜가는 것은 물론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이다. 방송사들이 지적했듯 윤진숙 장관은 청문회 당시부터 전문성 결여와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윤 전 장관 발탁에 대한 의문이 나왔는데 박 대통령이 우연히 한 토론회에서 윤 장관을 봤고, 이를 수첩에 적었다가 장관으로 발탁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 본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위의 추천도 없었고, 더군다나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수행하기에 전문성이 결여된 인물의 임명을 강행했다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됐어야 했다.
하지만 임명 당시에도 전문성과 발탁 배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았던 방송3사는 이번 경질에 대해서도 임명을 밀어붙인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은 채 윤 전 장관의 개인적 언행에만 초점을 맞춰 부각하기에 바빴다.
반면 신문들은 꽤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비판하고 나서 방송과 차이를 보였다. 사설만 보면 7일 조선일보는 “한정된 풀 안에서 대통령의 독자적 판단이 인사에 크게 작용하다 보니 사전 검증 등이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고, 중앙일보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소동을 교훈 삼아 정권 내부적으로 확실한 인사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일 동아일보는 “시스템에 의한 폭넓은 추천과 치열한 검증 능력 없이 대통령이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만 바탕으로 인사를 하다 보면 임명 뒤 문제가 드러나도 대통령에게 미칠 타격 때문에 교체가 쉽지 않아 이 지경까지 왔다”고 했고, 한겨레도 “새누리당 지도부조차 반대한 부적격자인 윤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는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고, 독선에 찬 수첩인사가 빚은 예고된 참사”라고 비판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위 주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비판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여수 앞바다 원유 유출 관련보도를 보면 사태의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방송의 보도 건수가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세간의 관심 정도가 언론에 정확히 반영되진 않지만 언론의 관심 정도는 세간의 관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폭설과 동계올림픽에 묻힌 여수 앞마다 원유 유출 사고, 어딜 가야 제대로 된 뉴스를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