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저바구] 삶 이야기
역장이 무슨 죄야? 마른하늘에 날벼락
안건모 (작은책 대표)
집으로 가는 막 전 차. 공덕역에서 출발해 문산으로 가는 지하철이 갑자기 멈췄다. 경기도 일산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디지털역에서부터 문산까지는 지상으로 다니기 때문에 밖이 다 보인다. 다만 깜깜한 밤이기 때문에 창문에 얼굴을 대고 봐야 보인다. 사람들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급브레이크를 잡은 지하철이 그대로 섰다. 3분, 5분…. 안내방송만 나오기를 기다렸다. 10분.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뭐야?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누가 전화로 항의했는지 안내방송이 나온다.
“……가 나서 …… 죄송합니다. …….”
뭐라 뭐라 방송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나만 못 들었나? 어쨌든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안내방송이 나왔으니 조금 이따 출발하겠지. 13분, 15분……. 사람들이 더욱 웅성거린다.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응, 갑자기 전철이 섰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묻는 할머니도 있다.
“무슨 일이래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이러다 뒤차가 와서 받으면 어떻게 하지? 큰 사고 나는 거 아냐? 16분쯤 다시 안내방송이 나온다.
“……가 나서 …… 죄송합니다. …….”
정말 교묘하다. 아까 내가 안내방송을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이건 일부러 안 들리게 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맨 앞쪽으로 한 칸씩 건너갔다. 나는 디지털역에서 타기 때문에 뒤쪽에 있었다. 맨 앞쪽 기관사 있는 칸으로 가니 그 앞에서 기관사한테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꾸가 없다. 내가 기관사 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거기 기관사 있어요? 무슨 일인지 안내방송을 똑바로 해 봐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발로 문을 쾅! 찼다. 한 번, 두 번! 어쭈 모른 체 해? 쾅! 쾅! 쾅! 쾅! 그때서야 누군가 대꾸를 한다.
“아, 사고가 좀 있습니다.”
“이봐요, 무슨 사고인지 안내방송을 정확히 해야지요.”
또 아무소리도 안 들린다. 문을 또 찼다.
뒤쪽에 있던 손님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점잖게 말한다.
“안내방송이 나왔으니까 좀 기다려 보시죠.”
“안내방송에서 뭐라고 들었어요? 들리던가요?”
“뭐 사고가 났다고 하던데요.”
“언제 그런 방송이 나와요. 교묘하게 안 들리게 방송을 하던데. 혹시 다른 분들 안내방송 정확히 들리던가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는데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뭐 이런 사람들이 있어? 그래, 참아 보자. 다시 5분이 지났다. 한 30분이 지났나 보다. 안 되겠어. 이러다 큰 사고 나는 거야. 왜 사람들이 참고만 있지? 문 쪽 오른쪽에 붙어 있는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스위치를 열었다.
“조금만 참아 보시죠?”
자리에 앉아 있던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나한테 말한다. 아니, 이 정도 참았는데 더 참으라고? ‘아줌마나 참아요.’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스위치를 돌리고 문을 양손으로 열었다. 우리 집은 일산역 바로 다음 탄현역이라 철로길 넘어서 걸어가도 된다. 처음 열어봤는데 의외로 쉽게 열린다. 시원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내가 연 문 쪽으로 우르르 다가온다. 어어, 그러다 나 떨어질라. 오른쪽에 있는 손잡이를 꽉 잡고, 고개를 내놓고 빼꼼히 밖을 쳐다보니 밖에 기관사 복장을 한 사람들 세 명이 보인다. 그중 한 명은 랜턴을 들고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다. “이거 봐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문을 연 걸 보고 깜짝 놀라면서 허둥지둥한다. “아, 네, 곧 출발합니다.”
“안내방송을 정확히 해야죠. 도대체 왜 그런지만 알면 승객들이 이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을 거 아녜요!”
“네, 죄송합니다. 문 닫아 주세요. 금방 출발하겠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와 문을 닫았더니 출발을 한다. 두세 바퀴나 굴렀을까? 또 멈춘다. 그러기를 몇 번. 겨우 일산역을 들어섰다. 안내 방송이 또 나온다.
“이 전철은 더 이상 운행할 수 없습니다. 손님들은 내리셔서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를 타시기 바랍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에이, 여기서 집까지 걸어갈까? 20분밖에 안 걸리는데. 하지만 도대체 뭔 일인가 궁금해 기다려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