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목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김언경 사무처장 true4731@naver.com
“민언련 회원님! 민언련 30주년 창립기념일이 12월 18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입니다. 꼭 와주세요!”
어때요? 엄두가 나세요? 앞으로 한 달 뒤이니 날도 꽤 추워질 것이고 연말이라 약속도 참 많을 겁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귀찮고 쑥스러울 겁니다. 그 마음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릴게요.
20주년 기념식의 추억
저는 1992년 2월 언협에 왔고 95년까지 정말 열심히 신문분과 활동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딸을 낳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민폐가 되는 느낌이 들 때, 저는 신문분과 활동을 접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언론 모니터 관련된 일을 계속했지만, 어느새 회비만 낼 뿐 민언련과 왕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 민언련 20주년 창립기념일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는 많이 망설이다 집을 나섰습니다. 가보니 스무 살 ‘민언련’은 정말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더군요. 하지만 어르신들께 인사드리고 눈에 익은 사람을 찾으니 몇 안보였습니다. 그나마 제가 아는 사람은 행사를 진행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절 챙겨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시종일관 쑥스럽고 어색했습니다. 당시 뒤풀이로 ‘후원 호프’를 했는데 친한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둘러앉은 넓은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대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기왕 나선 발걸음인데 혼자 ‘왕따 놀이’하고 사라질 수는 없다고 마음먹은 저는 어딘가에 끼어 앉았습니다. 김현식 이사의 재치 넘치는 사회 덕분에 저는 광대가 폭발하게 웃었고, 이래저래 눈에 익은 사람들도 더 보이자 어느새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각 분과의 장기자랑들을 보면서 저는 샘이 나고 눈물도 나고 그랬습니다. 다시 누군가와 함께 신문과 방송을 보며 토론하고 글을 쓰고, 웃고 놀던 그 행복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민언련에 나오기 시작했고, ‘주부모니터분과’와 ‘방송분과’ 활동을 하다 사무처 활동가까지 되었습니다.
민언련의 추억을 회상하고 다시 모이는 날
민언련 창립기념일은 바로 이런 날입니다. 민언련 활동을 하다가 떠난 많은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는 날, 그들이 민언련 추억을 회상하는 날, 새삼 언론개혁의 의미를 떠올리며 힘을 모으는 날입니다. 민언련을 만들어주신 분들과 키워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리는 날, 그러다 다시 맘 맞으면 제2, 제3의 민언련 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날입니다. 게다가 이번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창립기념일이 아니라 30주년 창립기념일입니다.
그러니 꼭 오셔야 합니다. 1984년 언협을 만드셨던 동아투위, 조선투위, 80해직언론인협의회, 인문사회과학서적 출판인모임 어르신들, 구류 살 사람들을 정해가며 <말>지를 만드셨던 분들, 정말 적은 활동비 받아가며 일하셨던 <말>지 기자들과 언협 활동가들, 언론학교 1기부터 87기까지 언론학교 졸업생들, 여러 언협 강좌를 이끌어주셨던 강사님들, 정책위원회·편집위원회 등 각종 민언련 활동에 헌신하셨던 분들, 92년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도 분과를 멈추지 않게 유지해 준 민언련 신문·방송분과원들, 참언론산악회, 민언련 노래패, VJ분과, 영화분과, 영화비평분과, 사진분과, 인터넷분과, 매체사진분과, 주부모니터분과 회원들, 1기부터 12기까지 진행된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 스태프들! 모두 모두 와주세요. 누구보다 늘 회비만 내주시고 민언련 행사에 못 오셨던 많은 회원님들! 특별히 용기를 내주세요. ‘귀차니즘’과 쑥스러움에 지면 안 됩니다. 저희가 정말 두 팔 벌려 환영하고, 한순간도 심심하지 않게 해드릴 테니 일단 한번 믿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민언련 회원님 모두 오셔서 회원님의 열정을 불태웠던 ‘어제’를 추억하시고, 그 민언련의 ‘오늘’을 봐주세요. 부족한 것이 있으면 질책하시고, 위로하고 격려할 것이 있으면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함께 민언련의 ‘내일’을 그리며 힘을 모아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12월 18일 목요일 저녁 6시 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입니다.
꼭 그날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