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라고 밀어낼 수 없는 영화 <카트>
등록 2015.01.0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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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라고 밀어낼 수 없는 영화 <카트>




염찬희(영화평론가)



영화 <카트>(부지영 감독, 2014)는 어느 날 갑자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대형할인점 더마트(The Mart)의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와 협상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자 파업을 벌여 복직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단순한 구성의 플롯 때문에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쉽게 이해된다. 게다가 영화는 심리가 아니라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들을 평이하게 설정하고, 등장인물들의 심정 변화의 폭도 크게 요동치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영화를 정서적으로 다가갈 때에 고단하지 않다.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과정도 순탄하며 호흡도 편안하다. 그래서 영화 <카트>는 마치 전혀 특별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절대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연출 방향이야말로 이 영화를 내가 몰랐던 세상과 현실의 ‘그들의 이야기’일지라도 남의 일로 밀어내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을 통해서 끌어당겨 함께 사는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평범한 계산원 일터 풍경’으로 시작하는 전반부


영화는 전반부에 더마트에서 근무하는 계산원들의 일터와 가정에서의 각각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캐릭터를 구축한다. 5년 동안 벌점없이 열심히 일한 선희(염정아)는 3개월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 두 아이의 엄마로서 지방을 돌면서 집짓는 일을 하는 남편을 대신하는 실질적인 가장이다. 회사를 위한 일이라면 힘들어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갑자기 떨어지는 연장근무 요청에도 묵묵히 응하는 인물로 일하느라 아들의 급식비를 제때 내지 못하기도 한다. 


고분고분한 선희와는 대조적인 인물이 혜미(문정희)다. 혜미는 대졸 학력으로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해고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6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이혼녀로 육아 때문에 불쑥불쑥 내려오는 시간외 근무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 외부 물건 반입 금지의 규정을 고객에게 적용하려다가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간관리자인 과장이 시키는대로 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정규직 취업 희망자로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일단 임시로 계산원 일을 하고 있는 미진(천우희)은 엄마와 함께 장보러 온 대학 동창과 맞닥뜨려서 난감해한다. 이렇게 평범한 계산원 일터 풍경은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계약 해지 통보로 인해 요동치면서 영화는 중반부로 진행한다.


갈등을 이해와 공감으로 바꾼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선희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노동조합이나 파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아줌마’ 선희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고 부당함에 맞서기 시작하는 과정이 담기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장치는 아들인 태영(도경수)이 편의점 알바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교차시키는 것이라고 하겠다. 


회사가 계산원들을 ‘반찬값 정도를 벌러 나오는 비교적 여유있는 아줌마’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과는 달리 생활비가 절실한 대부분의 계산원들과 마찬가지로 선희도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 일터로 나와야만 하는 ‘노동자’다. 해고당하기 전에는 회사에 충성하느라 아들을 살피지 못했고, 해고 통지를 받은 후에는 파업 투쟁을 하느라 집안을 돌볼 겨를이 없던 선희는 태영이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서 편의점 알바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의점 사장(김희원)은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임금을 주지 않으려 하다가 태영이 집요하게 임금을 요구하자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를 던지듯 준다. 태영과 같이 있던 친구 수경(지우)이 홧김에 편의점 문에 벽돌을 던져 박살을 내자, 사장은 태영이 한 짓으로 오해하고는 다짜고짜 태영을 심하게 폭행한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달려간 선희에게 사장은 “2달 약속하고 안 지켰다. 그동안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은 값, (일하면서 쓴) 전기와 수도 요금, 태영이 때문에 못한 오늘 하루 영업에 대해서 제하고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악을 쓴다. 


그런 사장에게 당당히 대드는 선희는 무조건 자신의 아들을 감싸고 도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이 아니다. 그녀가 분노하여 토해내듯이 “묵묵히 일만 하니까 사람이 우스워보이냐. 일한 값을 왜 제대로 안쳐주냐. 자식같다고 하면서 아이는 왜 이렇게 때리느냐”라고 따진 말들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고용주로부터 당한 억울함의 내용인 것이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쳐서 사장으로부터 받아낸 임금을 내미는 선희에게 태영은 고맙다고 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줘서. 갈등의 관계에 있던 엄마와 아들은 피고용인,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같은 위치에 서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게 된다.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영화이자 행동하는 노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



선희는 마침내 스스로 우뚝 서서 해고당해 일터를 떠난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규합한다. 회사의 부당한 해고를 세상에 알리고 복직을 쟁취하기 위한 행동의 중심에 서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 영화 <카트>는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영화이기도 하지만, 가정도 팽개치고 회사에 충성하던 한 평범한 일꾼이 고용주의 횡포와 부당함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