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성장과 가족의 삶,  그 1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
등록 2014.12.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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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성장과 가족의 삶, 

그 1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





류성헌 회원 zingu99@gmail.com




‘류성헌의 공간으로 읽는 영화산책’ 첫번째 이야기는 비포(before) 시리즈로 친숙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이다. 한 소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조금씩 찍어 만들어간 이 영화는 스쳐가는 세월을 아이와 그 주변 인물들의 얼굴에 오롯이 박아 넣어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시간 속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즉, 영화를 보는 내내 서서히 변해가는 인물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감을 더욱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 속 이야기에는 시간대별로 다양한 ‘집’이 나온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 올리비아는 힘들지만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해 더 나은 직장을 얻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아이들을 키워내고, 그 와중에 맺는 결실이나 원치 않는 시련은 매번 그 ‘집’을 통해 묘사된다.




잦은 이사와 새로운 가족들


 영화는 주인공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 그리고 엄마인 올리비아가 대도시로 떠나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친구들과 헤어져 이사 가기 꺼려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각자의 방이 있는 새로운 집으로 그들을 설득한다. 메이슨은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집의 문틀에 긁힌 자신의 키 측정 표식을 페인트로 지운 후 새로운 도시(휴스턴)의 집으로 이사한다. 그 곳에서 한동안 소식이 없던 아빠와 재회하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지만 엄마의 냉대 속에 아빠는 집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 집은 아빠를 제외한 철저히 세 식구만의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층 창을 통해 엄마와 아빠의 말싸움과 거칠게 돌아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새 도시에서 대학에 등록한 엄마는 전공 교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의 결혼으로 엄마와 두 자녀, 그리고 새 아빠와 그의 두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탄생하여 또 다른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결합 초기 온 가족은 그 집에서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콜 의존증이 심해지는 새아빠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강요하는 등 행복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제 차고에는 매 맞은 엄마가 쓰러져 있고, 정원에서는 낙엽을 쓸지 못한 아이들이 혼이 나야 하고, 부엌은 술에 취한 아빠가 집어던진 컵이 깨지는 끔찍한 공간이 된다. 결국 아이들과 탈출한 올리비아는 당장의 보호받을 집도 없는 위기상황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된다.


 세월이 흘러 대학에 강사 자리를 얻은 엄마는 억척스럽게 새로운 가족의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그 곳에서 메이슨은 사춘기를 맞이한다. 그 즈음 이라크 파병군인 출신 학생과의 재혼으로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지만, 절도 있는 생활을 강조하는 새아빠와 사춘기 메이슨은 잦은 충돌을 빚는다. 그런데 ‘집’을 마련했다는 새아빠의 자부심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며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껍데기만 남은 집을 뒤로 하고 그는 떠난다.





 ‘집’의 해체와 각자의 새로운 시작


다시 가족은 엄마와 메이슨, 사만다 세 명으로 줄어들고 남은 집을 지키기 위해 엄마는 쌓여가는 고지서와 악전고투를 벌인다. 이제 고교 졸업반이 된 메이슨. 대학에 합격 후 기숙사로 떠날 시점이 되자 모든 양육의 책임을 다한 엄마는 ‘집’의 해체를 선언하고 경제적으로 버겁게 유지하던 큰 집을 처분해 작은 아파트로의 이사를 결행한다. 그리고 갑자기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스스로의 장례식 밖에 없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늘 아이들의 지붕이 되어주기 위해 악착같이 유지하던 집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는 순간 홀가분함보다는 허무함이 다가온 것이다. 이제 엄마는 아이들의 집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마음의 집이 필요한 것이다. 슬퍼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독립하여 대학의 기숙사로 들어온 메이슨은 여섯 살 첫 이사하며 자신의 방을 가지게 되었던 것만큼이나 큰 공간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우연한 하이킹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영화, 보이후드


누군가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카메라의 시점에서, 누군가는 음악에서, 혹은 색채에서 찾을 것이다. 공간의 관점에서 영화를 봐도 매우 다양한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 보이후드에서는 미국중산층과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과 긴 호흡으로 그려냈고 그 세월 속 중요한 단락들이 각각의 다른 공간을 매개로 펼쳐져 있다. 


이 영화의 여타 기술적인 부분들도 훌륭하다. 예를 들어 사운드트랙의 경우 콜드플레이의 ‘Yellow’로 시작하는 음악들은 그 해당 시대에 맞게 대입되어 근 십여 년에 걸친 미국 팝음악의 훌륭한 모음곡을 구성한다. 또 러닝타임 165분(대체적으로 이 시간을 최대치로 보는 듯. 최근 개봉한 인터스텔라와 거의 동일)이 전혀 지루하지 않도록 그 속에 12년의 시간을 녹여낸 편집도 매우 좋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국 현대사의 풍경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가감 없이 이야기 속에 녹여낸 점도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다.


 후반작업 후 12년과 관계된 제목으로 하고 싶었지만 뜻하지 않은 ‘노예12년’의 대성공으로 급히 제목을 바꾸었다는 ‘보이후드’는 그 뚝심 있는 시도만으로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이다. 리쳐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우직함에 경의를 표한다. 동시에 영화 속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서 배재될 수밖에 없었던 에단호크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둘의 우정과 협업을 통해 멋진 영화를 계속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