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으로 | SBS <기분 좋은 날>
‘좋은 드라마’로 재조명받아 마땅한 SBS <기분 좋은 날>
김석주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SBS 주말극장 <기분 좋은 날>은 지난해 4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방영됐다. 세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 한송정(김미숙 분)이 남궁영(손창민 분)을 다시 만나 재혼하게 된다는 내용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한송정의 가족 외에도 송정의 둘째 딸 정다정(박세영 분)과 결혼한 서재우(이상우 분)의 대가족이 등장한다. 특히 서재우의 외조부로 나오는 최불암(김철수 역)과 나문희(이순옥 역)는 깊이 있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극에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SBS <기분 좋은 날> 화면 갈무리
<기분 좋은 날>은 애초에 5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동 시간대에 방영하던 MBC <왔다! 장보리>(2014.04.05~10.12)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매번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44회를 끝으로 조기 조영했다. 배우 이유리는 <왔다! 장보리>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연민정’ 역을 맡아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그해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이렇듯 출생의 비밀, 불륜, 살인미수 등이 주요 내용인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 보장은 물론 출연 배우의 인지도까지 올려준다. 그러나 무리한 설정과 비상식적인 내용전개가 없는, 일명 ‘착한 드라마’의 사정은 다르다. <기분 좋은 날>도 ‘착한 드라마’로 불리며 나름의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했지만, 시청률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더욱이 이미 하나의 드라마 장르로 정착하며 다양한 분석 글이 나오고 있는 ‘막장 드라마’와는 달리 ‘착한 드라마’의 기준은 불명확하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대한파킨슨병협회의 제안을 받아 이 드라마를 모니터했다. 결론적으로 <기분 좋은 날>이 ‘착한 드라마’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나 ‘좋은 드라마’의 요건을 충족할만한 요소는 다수 담겨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모계+비혈연 관계
좋은 드라마의 평가 기준은 고정관념을 깨었는가에 달려있다. <기분 좋은 날>은 혈연 중심의 관습적 가족관에서 탈피한 새로운 가족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은 드라마로 평가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송정(김미숙 분)은 이혼 후 낳은 막내딸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그래서 세 딸의 이름은 정다애(황우슬혜 분), 정다정(박세영 분) 그리고 한다인(고우리 분)이다.
또한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시댁’이 <기분 좋은 날>엔 없다. 대신 ‘친정’과 ‘처가’가 나온다. 어린 시절 한송정과 친남매처럼 자랐고, 이후 사돈관계가 되는 서민식(강석우 분)은 처가에서 산다. 장인 김철수(최불암 분)와 떡집을 함께 운영하고, 나중엔 장인으로부터 유산까지 물려받는다. 남궁영(손창민 분)도 서민식의 의형제로 등장한다. 이후 궁영은 송정과 결혼하게 되고, 궁영과 민식은 ‘사돈’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렇듯 극 중에선 혈연 이외의 관계로 ‘가족’이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한다.
파킨슨병을 가족 모두가 성숙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 인상적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였는가도 좋은 드라마의 평가 기준이다. <기분 좋은 날>의 갈등요소인 이순옥(나문희 분)의 파킨슨병 설정도 결과적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드라마 26회에서 순옥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다. 순옥과 남편 철수는 파킨슨병을 받아들이고 함께 감내해 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모은다. 또한, 31~32회에서는 가족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황혼 분가’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철수는 순옥을 직접 제대로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취득한다. 이후 순옥과 철수의 분가 이유를 알게 된 가족들이 이 노부부를 설득해 다시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송정의 둘째 딸 다정(박세영 분)과 민식(강석우 분)의 아들 재우(이상우 분)는 순옥·철수의 투병생활에 위안이 되고자 서둘러 결혼하고, 노부부의 철없는 딸 신애(이미영 분)도 엄마의 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면적으로 성숙한다. 순옥과 철수가 대장내시경을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 함께 간 미영이 “내가 오늘은 아부지 엄마 보호자에요”라고 말하며 부모의 손을 꼭 잡는 모습에서 미영의 성장이 드러난다.
신파적이지 않아 오히려 감동이 배가돼
흔히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병에 걸리면, 이후의 내용은 신파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기분 좋은 날>엔 신파가 없다. 환자가 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족과 함께 병의 진전속도를 늦추는데 적극적으로 임한다. 가족들도 환자가 자신의 투병생활과 가족들의 일상생활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다. 가족들은 순옥이 파킨슨병에 걸리기 전처럼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가족들의 애써 무덤덤한 모습에 순옥은 자신이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할머니·어머니의 역할을 지속하며 투병생활과 가족과의 일상생활에서의 균형을 맞춰나간다.
이렇듯 <기분 좋은 날> 등장인물들의 성숙한 태도는 투병생활 중인 환자와 그 가족에게 공감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해피엔딩을 위한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은 아쉬워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방송분과원들은 위에서 말한 <기분 좋은 날>의 장점들을 이 드라마의 한계로 지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위가 처가에 살며 장인, 장모를 친부모처럼 모시는 모습에서 고부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며, 시댁식구 간 갈등도 보이지 않는다.
가족 중 한 명이 파킨슨에 걸렸을 때도 환자 당신을 포함한 가족들은 ‘누가 모셔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갈등 없이 성숙한 자세로 받아들인다. 또한, 모계 중심으로 그려지는 가족의 모습은 가부장적인 가족이 많은 현재에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분 좋은 날>이 설정한 환경을 보며 시청자들, 특히 가족 중 환자가 있는 사람들은 분명 ‘가족이라면 응당 저렇게 해야지’라는 식으로 자기 가족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희망을 품다가도 동시에 ‘왜 나는 저렇게 못 하지?’라는 좌절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기분 좋은 날>에서 부부로 열연을 펼친 연기자 나문희, 최불암
탈 관습적인 내용 선사한 연출진과 작가, 배우에게 박수를
그럼에도 SBS 주말 극장 <기분 좋은 날>은 좋은 드라마이다. 관습적인 가족관에서 벗어나 비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얼마든지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했고, 파킨슨병 환자를 등장시켜 환자와 가족 간의 이상적인 투병생활 모델을 제시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MBC <왔다! 장보리>가 동 시간대에 방영한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은 날>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접하지 못한 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대한파킨슨병협회에서는 <기분 좋은 날>이 파킨슨병을 사실적으로 알렸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고,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에 ‘좋은 드라마’ 선정을 권유했다. 덕분에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이 드라마를 재조명할 수 있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좋은 드라마’를 제작한 연출진과 작가, 그리고 나문희, 최불암 씨를 비롯해 열연을 아끼지 않은 출연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