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범죄와의 전쟁>의 현대판(김미영)
등록 2015.04.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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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의 현대판


김미영 회원



지난 2월 국회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특혜와 땅투기 의혹, 황제특강에 언론외압 논란 등도 제기되면서 ‘비리완구백화점’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완구 국무총리. “충청총리 낙마되면, 다음 대선 두고보자”며 엄호하고 나선 충청민심에 겨우 총리직에 오른 이 총리는 취임 첫 일성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제목에서부터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아류작 냄새가 나는 이 전쟁에서 이 총리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주인공이 됐다. 전쟁을 앞장서 진두지휘할 때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난 후에도 그는 어쨌든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2012년에 만들어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주인공 최익현(최민식 분)과도 참 닮았다. 물론 그는 조범석 검사(곽도원 분)처럼 되겠다는 포부였겠지만. 

먼저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1982년 해고될 위기에 놓인 부산의 비리 세관원 최익현은 마지막 ‘한탕’을 위해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일본으로 밀수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부산 최대 조직폭력조직의 보스 최형배(하정우 분)과 손을 잡게 된 그는 이후 형배와 함께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 두 나쁜 놈들 사이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잔머리 좋은 익현은 그저 주먹이나 쓸 줄 아는 형배를 검사에게 팔아넘겨 옥살이를 면한다.


이완구 총리와 최익현의 공통점?!



경찰로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충남도지사, 여당 원내대표, 그리고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까지 오른 이완구 총리는 최익현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지녔지만 뭔가 공통적인 구석이 있다.

가장 먼저는 혀놀림이다. 임기응변식 거짓말로 남을 구슬리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그럴 듯한 말들 말이다. 

최익현은 자신이 정치권력 등에 돈을 갖다 바치면서 벌여왔던 불법 로비 등이 발각돼 검찰에 잡혀가자 순간 ‘짱구’를 굴려 형배를 대신 잡아주겠다고 검사에게 제안한다. 검사와의 거래가 성사된 후 그는 지명수배 중인 형배를 만나 한국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꾀어내는데, 그때 형배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한번 더 속는다”고 내뱉는다. 말 그대로 속은 그는 결국 철창신세가 되고 면죄부를 받은 최익현만 거리를 활보한다.

이완구 총리의 말솜씨도 영화 주인공 못지않다. 화통한 성격의 그는 거짓말도 화끈하게 해서 듣는 이들의 의심을 불식시키려 했다. 다만 너무 많이 들통 나 대가를 치르게 된 게 다른 점인가. 총리 후보자 시절에도 언론외압성 발언을 안했다고 국회에서 위증했다가 녹취록 앞에서야 고개를 숙이는 등 적잖은 거짓말이 탄로났던 그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휴대폰 갯수 따위까지 번복했다. 그러던 그가 “돈 받은 증거나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까지 나왔으니, 그의 혀가 자신의 목구멍을 막게 될지 여부는 좀 지켜봐야겠지만, 결국 그의 거짓말 인생도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뭔가 있어 보이고 싶지만 실은 찌질한 ‘으스댐’도 둘은 닮았다. 잡범처럼 경찰서에 끌려가서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 어저께도, 어! 같이 밥묵고 어! 싸우나도 같이 가고, 어! 마 XXX야 다했어!”라고 하는 형배의 대사는 명대사다. 궁지에 몰릴 때면 “내가 누군지 알아” 류의 낯 뜨거운 발언을 내뱉는 인간들의 전형이다.

이완구 총리 역시 거짓말 논란과 자진사퇴 요구 속에서도 “나는 한 나라의 총리다”라는 식으로 버틸 수 있는 대단한 정신을 가졌다. 이건 뭐 “내가 이 나라의 국모다”라던 명성황후 따라하기인가. 그가 총리 후보자 시절 어린 기자들에게 언론사 간부급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라고 으스댔던 육성도 압권이었다.

여기에 형배를 검사에 제물로 바친 최익현이나, 성 전 회장을 20개월간 23번이나 만나놓고도 친분을 부정한 이 총리나 ‘배신’의 아이콘이다.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현재 진행형

‘범죄와의 전쟁’ 부재 격인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그러니까 지금도 맞아떨어지고 있었단 얘기다. 성완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박근혜 대통령의 전·현 비서실장 3명을 비롯한 8명은 모두 잘나가는 현 정권 실세들이다. 2002년 대선에서 ‘차떼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나르다 형사처벌을 받았어도 국정원장에서 영전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있고, 아이들더러 “학교는 밥 먹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밥값 내라고 다그치는 홍준표 경남지사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와 지금의 현실을 놓고 비교해보자면, 지금의 나쁜 놈들은 영화 속 최익현 같은 이들보다 월등히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최익현보다 이 총리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 국정운영의 걸림돌이고 나라망신이며, 심지어 그들 중 다수는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에서 절망감마저 들게 한다. 

영화 속 최익현은 세치 혀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락한 노년을 맞았지만, 지금 살아있는 ‘나쁜 놈들’에겐 그러한 행운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