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멸하는 진보가 될 것인가
한 마리의 매머드 대신에 두 마리의 매머드를 죽이는 방법을 배운 구석기 시대의 수렵인들은 진보를 이룩한 것이다. 200마리를 죽이는 방법-무리 전체를 절벽 너머로 몰아감으로써-을 배운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진보를 이룩한 것이다.
원시 인류가 석기를 도구로 사용한지 수백만 년이 흘러 사냥의 기술이 절정에 다다른 구석기 후기에 이르자, 대형 동물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간의 주요한 먹이가 되던 몇몇 종들은 거의 멸종에 이르게 되었고, 매머드를 겨누던 돌칼이 토끼를 쫓게 되자 번성했던 크로마뇽인은 급감했다. 이후 인류는 파종과 수확의 진리를 우연히 깨우치기까지 수천 년의 혹독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태평양 위의 이스터 섬은 5세기경 뗏목을 타고 밖에서 들어온 이주자들에 의해 찬란한 문명을 이룬 바 있다.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이들은 귀족들이 각자 자신의 가문을 대표하여 세운 거대한 석상으로 서로 경쟁을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석상은 커져갔고 운반에 필요한 목재를 벌채하는 속도는 급기야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넘어서게 된다. 마침내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만이 남게 되었으나 경쟁에 눈이 뒤집힌 이들은 그것마저 베어버리면서 어업에 그 바탕을 두었던 이스터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초 발원지인 우르(Ur)는 메마른 땅에 물을 끌어 대어 농사를 짓는 관개 사업을 통해 문명을 꽃피웠다. 이 혁신적인 시스템은 척박한 중동의 땅에 수 세기 동안 풍작을 안겨주었지만 지속된 관개로 지표면에 염분의 농도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땅의 색깔이 하얗게 변해갔지만 이들은 관개 사업을 줄이지 않았고, 기원전 2500년경부터 농업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2100년경에는 밀의 경작을 완전히 포기하기에 이른다. 결국 우르는 기원전 2000년에 멸망한다. 저자가 크로마뇽 인과 이스터 섬, 우르의 쇠망에서 공통점을 이끌어 내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래를 훔치고, 과도한 부와 영광을 즐기기 위해 자연 자본의 마지막 비축분까지 소비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소멸하였다”
나는 인간 다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불가피한 방향이라면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와 자연 개발에 일반적으로 찬성하며, 거기에 자연 보호가 개입될 여지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십여 년 전 산에 터널을 뚫는 일로 한 스님이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하여 단식으로 반대했을 때 중학생이던 나는 삶의 터전을 잃을 도롱뇽이 애달팠으나, 지금의 나는 도롱뇽의 보금자리가 터널을 뚫거나 뚫지 않는 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 최소한의 자연 자원의 유지·보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이야기이다. 그 최소한의 기준선은 일반적으로 국가가 법령으로 정해 두는 것이 보통이다. 무분별한 난개발은 공권력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 자원을 보존하면서 적당히 이용해 나가는 큰 그림은 그 공권력을 지휘하는 정책 결정자의 운영 철학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야 마땅하다.
지난 5월 6일 대통령은 개발제한구역 규제 완화를 발표하는 회의에서 “우리가 규제에 묶여 있는 동안 경쟁국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에서 미래에 대한 헤아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발제한구역을 규정하는 법령은 다만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저해할 뿐인 족쇄 같아 보였고, 정책을 어째서 추진해야 한다는 개별적 필요성은 설명되지 않았다. 금줄을 쳐서 보호하는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이 다른 당위성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의 ‘경제 돌파구’로써 이렇게 가벼이 결정될 수 있는 일인가.
불과 몇 년 전의 이른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금테 안경을 쓴 관료들과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보장했던 경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나 22조원의 막대한 재정이 무의미하게 투입됐다는 점보다, 강들이 이제 원래 모습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또한 이것이 도무지 책임질 길이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 사업과 추진한 사람들이 정말 나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사법 처리가 이루어지고 몇몇 사람들에게 거액의 추징금을 걷어 들인다 한들 강의 원래 모습과 능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환경에 관한 문제는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고려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정책 결정자가 지갑에서 카드 꺼내듯이 쉬이 꺼내 쓴 일이 왕왕 있어 왔다. 이스터 섬의 귀족들은 나무가 자라는 속도보다 빠르게 베어냈기에 스스로 멸망했지만, 아테네의 귀족들은 일찍부터 삼림 벌채의 위험성을 깨닫고 법으로 규제하며 식목을 장려했기에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원시 인류가 작살로 잡아서 먹었던 생선이 스마트폰 시대의 저녁 식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치어를 방류해 왔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의사 결정 과정에 미래 지속 가능성을 따지라는 역사의 교훈이 반드시 들어가기를 바란다. 매머드 사냥 방식을 효율화해 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발전이나 그것이 무리를 절벽으로 몰아 몰살시켜버리는 자멸적 진보가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경계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김승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