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미디어 시간여행』 김동민 지음, 나남 펴냄(2015)
진짜 미디어를 찾아 떠난 여행
이병남 정책위원
『미디어 시간여행』은 1부- 미디어 오디세이 2, 2부- 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시선, 3부-조선의 개화와 근대 신문으로 구성된다. 미디어 역사와 연구 방법론의 문제를 다루는 ‘시간여행’의 일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세 부분을 엮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언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제1부 미디어 오디세이 2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부담 없이 경험 가득한 여정을 따라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음악, 회화, 연극, 건축, 조각, 영화, 현미경, 망원경…
저자는 이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틀로 미디어를 제시한다. 과학과 예술 분야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화되기 이전에 미디어로 출발했고 여전히 미디어로 기능하며 감각기관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민의 새 책 『미디어 시간여행』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잇는 웜홀과 같다. 2015년 현재와 과거의 여러 시간들, 공간들을 넘나들며 역사를 이어준다. 특히 주류 미디어가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미디어가 담당해야 할 기록과 소통의 역할이 무엇인지 일깨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다.
저자와 함께 시간여행을 하다 보면 소크라테스, 공자, 단원 김홍도, 피카소, 올리비아 뉴튼 존, 존 레논, 서태지, 레이디스 코드 등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을 것 같은 이름들을 마주한다. 이들에게서 미디어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새로운 시선’은 새로운 것만을 쫓는데 여념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도록 독려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독자를 이끈 후 표결로 결정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는 오늘의 민주주의와 선거, 여론을 생각하게 한다. 조작된 여론에 부화뇌동하며 그릇된 판단과 선택을 하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인을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여론을 존중하고 다수결의 원칙을 신봉하는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여론도 다수결도 참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려면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정보 제공 역할을 담당하는 매스미디어가 소피스트와 같은 기득권 집단에 의해 장악된 현실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여론이란 다수의 의견으로서 주관적 견해의 교집합에 불과하며 그 교집합을 주무르는 것이 언론이자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저자는 결국 주인은 따로 있고 국민은 거수기에 불과한 민주주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청한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 공자에게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논어》에 의하면 공자는 향당에서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같으나 종묘와 조정에 있을 때는 말을 또박또박 잘하고, 오직 삼갈 따름이었다고 한다. 공적 영역에서 윗사람에게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공직자가 우글대는 현실을 빗대어 이야기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불의를 보면 분노해야 한다. 슬픈 일이 있으면 감추지 말 것이며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동양에서 문자를 독점한 식자층인 지배 엘리트에 국한하여 종이책이 보급되었던 것과 달리 종이가 없던 유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문자가 아닌 언어와 미술로 접근함으로써 민중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중세 교회는 건축과 조각, 회화 등 미술로써 민중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달했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미디어였던 그림은 언어와 문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저자는 피카소의 1951년 작 <한국에서의 학살>을 이야기하고,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과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이야기한다.
미디어는 어느 시대에서나 지배계급의 뜻에 맞게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좌지우지하지만 시대정신을 가감 없이 재현한다는 데서 존재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글과 그림, 음악 등은 예술이기에 앞서 기록과 소통의 미디어다. 특히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온갖 허위·날조·왜곡보도가 난무할 때 민중 예술 미디어가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며 시민들과 공유해 왔음을 보여준다.
오늘에 발 딛고 있는 독자들을 조선시대로, 동학의 혁명 장소로, 산업혁명의 시대로, 80년 5월의 광주로, 2014년 무수한 그날들로 이끈다. 이것이 저자가 <미디어 시간여행>과 더불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제대로 된 기록 장치로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한, 제대로 된 미디어의 부재. 이미 예술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온 미술, 음악, 철학, 과학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 현실을 기록하는 미디어에 대한 아쉬움이 큰 사람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가는 오늘을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로 역할 해 온 동서고금의 철학과 예술, 인문학, 과학을 두루두루 오가며 오늘날의 미디어 진화와 자본주의를 성찰하고픈 독자들에게 여운이 남는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