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신문 토달기] 대법원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무죄 판결 관련 5개 신문 모니터
등록 2015.07.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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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토달기] 대법원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무죄 판결 관련 5개 신문 모니터

강기훈 판결 보도 유감, 역사를 이끌 언론이 필요하다

 

 

오세민 신문모니터분과위원장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 씨가 시위 중 백골단(경찰 사복 체포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폭력 정권 퇴진’을 외치며 저항하는 시위와 분신이 불처럼 일어났다.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도 5월 8일 유서를 남기고 서강대 건물에서 분신 후 투신을 했다. 그러자 서울지검 강력부는 김기설 씨의 동료인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에 착수했고, 법원은 다음 해 유죄를 최종 확정했다. 이 사건으로 재야운동 진영은 졸지에 동료의 자살마저 부추기는 부도덕한 죽음의 배후로 내몰리게 되었고, 민주진영의 활동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라 불리며,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비교가 되는 이 사건은 불의한 권력이 빚어낸 오욕의 과거사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가의 폭력으로 한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강기훈 씨가 유죄 판정을 받은 24년 뒤인, 2015년 5월 14일 참혹한 누명을 쓰고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스물일곱의 젊은이는 어느덧 나이 50의 중년이 되었고, 간암이라는 병까지 얻었다. 하지만 진실은 긴 세월을 뚫고 청년 강기훈의 손을 들어 주었다. 뒤늦게나마 정부와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 잡고, ‘조작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강기훈 씨의 무죄 확정 판결 다음날인 5월 15일부터 5월 30일까지 5개 주요 일간지를 보도 태도를 모니터했다.

 

“무죄”의 의미를 무시하는 언론들

 


표에서 보듯 강기훈 씨의 판결을 다룬 신문들의 기사 건수는 해당 사건의 중요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조선·동아·중앙일보의 기사는 총 7건으로 경향신문이 다룬 수보다 적다. 특히 동아는 다른 2개 신문과 달리 <‘유서 대필’ 강기훈 23년 만에 무죄 확정>(5/15, 12면, 신동진)에서 “강씨가 22년 9개월 만에 다시 무죄확정판결을 받아 누명을 완전히 벗게 됐다”고 간단히 언급하는 등 이번 판결의 역사적 의미나 평가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날 조선과 중앙도 각각 <강기훈 씨 필적 아니다…유서代筆 24년 만에 無罪>(조선, 5/15, 12면, 최연진), <24년 만에…강기훈 ‘유서대필’ 무죄 확정>(중앙, 5/15, 8면, 박민제)로 동아와 비슷하게 보도했다.

 

△ 5월 15일자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나아가 조선은 사설 <無罪 확정된 유서 대필과 강기훈 씨의 24년 고통>(5/15)에서 “유죄판결이 재심에서 무죄판결로 바뀐 핵심 이유는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인정한 처음 판결과 달리 이번엔 그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는 있다”, “궁극적 진실은 강 씨 본인이 아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번 판결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 중앙은 사설 <유서 대필 무죄…법원·검찰은 반성하고 사과해야>(5/15)에서 “강 씨 사건은 과거 군부정권 시절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유서 대필 사건’이 아니라 ‘유서 대필 조작 사건’으로 기록돼야 할 것”이라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불린 이번 사건이 프랑스처럼 우리 사회에 진실과 정의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 위해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동아와는 달리 ‘유서 대필 사건’을 ‘유서 대필 조작 사건’으로 부르며, 법원과 검찰은 반성하고 사과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의 이런 사설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빠져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중앙일보는 ‘유서 대필 사건’이 한창이었을 1991년 당시, 사설 <누가 죽음을 부추기는가>(5/9)에서 서강대 박홍 총장이 8일 이 대학 구내에서 발생한 김기설 씨 분신자살 사건과 관련해 ‘죽음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배후에 분명히 죽음을 조종하는 선동세력이 있다’고 주장한 것을 그대로 인용했다. “대학의 총장으로서 학생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 속에 살아온 원로교수가 이 정도로 이야기할 때는 분명 그 안에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들은 우리 사회를 흥분과 감정으로 휘몰아 이성적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려는 최면을 기도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들은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비폭력·건설적으로 풀어나가기 보다 광기로 휘몰아 문제의 해결보다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반사회적 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몰아갔다.


이런 행태는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무시하고, 검찰과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등 확성기 노릇을 자처했다. 특히 사설 <박홍 총장의 경고>(5/10)에서 “분신은 사상과 행동의 혼돈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거짓 이념과 영웅 환상을 고취하고 있는 죽음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죽음 찬미의 자살 증후군”이라고 깎아내리고, “자살과 시신을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죽음의 세력이 있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는 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역사적 의미 부각한 경향·한겨레

 

△ 5월 15일자 한겨레신문 1면 기사 갈무리


경향과 한겨레는 각각 12건, 15건을 보도했다. 두 신문은 5월 말까지 판결을 의미를 다루며 역사적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였다. 판결 다음날, 두 신문은 1면 하단에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씨 24년 만에 무죄 확정>(경향, 5/15, 1면, 김경학, 김한솔, 김원진)과 <24년 걸린 유서대필 무죄…사과 없는 사법부>(한겨레, 5/15, 1면, 강창광, 이경미, 서영지)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또 한겨레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으며, 무죄 확정으로 인한 법원과 검찰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유서대필 사건 판검사들 참회·사과해야”>(5/18, 서영지), <강기훈 씨 “법원·검찰 잘못 고백해야”>(5/19, 서영지) 그리고 <타살의 조력자들>(5/20, 곽병찬)이 바로 그것이다.


경향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라 해야>(5/15, 2면, 김한솔)와 한겨레 <검찰과 법원은 당장 강기훈 씨에게 사과해야 한다>(사설, 5/15, 29면)에서 ‘유서 대필 사건’을 ‘유서 대필 조작 사건’으로 정의하며, 비판의 화살을 검찰과 사법부로 돌렸다. 또한 경향<남기춘 “세종대왕 판결도 지금 잣대론 결론 달라져”>(5/15, 2면, 감한솔, 김원진)와 한겨레<강 씨 기소·유죄판결 판검사들 ‘승승장구’>(5/15, 06면, 서영지)는 강 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유죄판결을 선고한 판검사들이 24년 동안 승승장구한 이력을 다루기도 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시작으로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싸움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결국 승리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사회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한 걸음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당시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어, 역사의 퇴행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 갈 기회다. 이 지점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 올바른 역사적인 판단을 하고, 모두가 공감하고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참언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