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민사회|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출범
이근안 같은 ‘나쁜놈들’, 300명 찾아낸다!
김소망 성공회대 학생
최근 관객 수 1200만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 <공공의 적>과 참 흡사한 구조의 영화였다. 익숙한 클리셰들이 등장했고, 결국 나쁜 놈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뻔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뻔한 이야기로 통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그래서 영화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이 결말들이 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제대로 그려질 수 있을 까.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소위 가진 자들은 겁이 없다. 법은 오히려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이 가진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까지 자손대대로 이어지도록 하는데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나쁜 짓들은 묵인되고 심지어 멋지게 포장된다.
해방 이후 계속 고착되어 왔던 우리나라 기득권층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이런 뻔하지 않은 결말들로 가득하다. 독재정권 아래 수많은 민간인들이 죄 없이 고문당하고, 학살당했으며 각종 인권탄압을 당했지만, 가해자들은 누구 하나 처벌 받지 않았고 당당히 애국자로 남아있었다. 헌법이라는 장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존재했다.
헌법을 유린한 가해자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이런 뒤집힌 역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학교 때에는 국사, 고등학교 시절에는 근현대사를 배웠고 대학에 와서도 현대사 강의를 접했다. 현대사에서 우리는 故이한열 열사, 故박종철 열사, 진보당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조봉암 선생 등의 이름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헌법을 유린한 이들은 ‘나쁜 놈들’ 혹은 ‘나쁜 정부’로 뭉뚱그려 인식하곤 한다.
아마 우리는 보통 관련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로 ‘이런 분들이 계셨지’ 하며 희생된 분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나 싶다. 분노를 해도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분노의 화살이 그 대상의 과녁에 제대로 맞춰지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독재정권 밑에서 타의로 행해진 것들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가해자들의 이름들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것은 잘 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닌가.
역사가 가지는 기록의 힘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잘못한 사람들을 우리들이 그리고 동생들이 주목할 수 있는 눈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번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과 평화박물관이 편찬을 기획하고 있는 ‘반(反)헌법행위자열전’이다.
친일인명사전을 잇는 반헌법행위자열전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고 난 후 뒤이어 반민주인명사전도 만들어야 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에 부흥하는 것이 반헌법행위자 열전이지만 사실 ‘반헌법’이라는 용어 때문에 편찬의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반헌법행위자 열전은 말 그대로 헌법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 즉 헌법을 들먹이며 헌법을 짓밟은 대한민국 공직자들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 경찰관 역할로 그려진 차동영 경감과 같은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차동영이라는 캐릭터의 모티브였던 실제인물 이근안은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였다고 한다. 물고문, 전기고문 뿐만 아니라 기발한 고문방법으로 거짓자백을 술술 내뱉게 하는 능력자였다고. 경찰로 시작한 그는 이로써 고속 승진도 하고 훈장도 받았지만 나중에 고문사실이 드러나 7년 수감생활을 하고 나와 목사가 되었다. 지금은 목사직을 파면 당했지만 그가 목사로 있을 때 했던 말들은 아주 가관이다. “고문이 애국이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고문이 애국이었고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란다. 아마 안하무인의 차동영이란 영화 속 인물은 결코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이 사람만 알려졌다 뿐이지 제대로 파헤쳐보면 무궁무진한 ‘나쁜 놈들’이 나올 게 분명하다.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한 이들을 기록한다
반헌법행위자 열전은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을 반헌법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지시 혹은 수행한 공직자들, 또 적극 묵인하고 은폐한 자 300명의 행적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은 물론 한계도 있었고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제 그 바통을 이어받아 역사적 청산의 한 맥락으로써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운동이 등장했다. 게다가 당시의 반헌법행위자들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인물이 대부분이기에 열전을 편찬하는데 있어 난항을 겪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역사청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국민적 열망은 아직도 뜨겁다. 그렇기에 여기서 더욱 필요한 건 젊은 세대들의 인식과 적극적인 관심이다. 가해자는 애국자로, 성공한 공직자로 둔갑해버리고 피해자만 남아있는 역사. 이 역사를 제대로 바로잡는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뻔한 결말이 아니도록 첫 발을 디디는 데 헌법의 주인인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10월 12일(월)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출범식
후원계좌: 국민은행 006001-04-198120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