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책이야기] '6년째 간병중' 아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등록 2015.09.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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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나는 어머니와 산다』

'6년째 간병중' 아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안건모 회원· 작은책 발행인

 


1958년생, 한기호. 책에 관한 경력이 화려하다.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출판마케팅 분야에 독보적인 분이다. 1982년부

터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했다. 1998년에 자신이 설립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과 출판 전문 격주

간지 <기획회의>의 발행인으로 있고 <학교도서관저널>도 발행하고 있다.
“2009년 9월부터 네이버에 ‘베스트 셀러 30년’을 연재하면서 8개월 이상 하루 두세 시간만 자고 책을

읽어야 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가끔 술자리에서 잠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일정을 모두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그때는 주간 연재와 격주간 연재도 5~6개 되던 시절이라 많으면 한 주에 20여 권의 책을 읽어야

만 했다.”


회사 두 곳을 운영하는 것도 힘들 텐데 하루에 책을 한두 권 이상 읽는 건 기본이고 하룻밤에 다섯 편씩

글을 쓰기도 한다. 새벽이 될 무렵까지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간 걸 봤는데 아침이면 한기호 블로그에 글

이 한 편 올라가 있다. 새벽에 쓴 글이다.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한기호 소장은 그

런 일을 30년째 하고 있다. 어떤 이는 한국의 다치바나 다카시라고 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어난 수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도쿄 시내에

고양이 빌딩을 지어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기호 소장을 따라오

지 못한다. 한기호 소장은 딸이 다닌 고등학교에 책을 4,400권이나 기증하는 등 책을 기증하는 곳도 많

고, 무엇보다 빌딩을 지을 돈이 없어서 책을 보관하지 못할 뿐이다. 게다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기호

소장처럼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2009년 3월부터는, 치매 초기에 몸까지 불편했던 어머니를 혼자서 모시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와 산다》(어른의시간)라는 책은 2009년 3월 28일부터 2014년말까지 어머니를 모시면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책이다. 끼니때마다 무슨 음식을 할까 고민하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어머니를 모시면서 깨달은 철학까지 설파한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인간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한 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한기호 소장은 어머니를 모시고 글을 쓰면서, 노인에 관한 수많은 책을 보고 책 속에서 배울 만한 내용

을 인용한다. 《노인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하나리 사치코, 창해), 《아흔 개의 봄》(김기협, 서해문

집), 《잘 가요 엄마》(김주영, 문학동네) 등 노인에 관한 책뿐만이 아니라 가족에 관한 책도 봤다. 저

자는 그 책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정을 불러왔다고 한다.


한기호 소장이 어머니를 모신 지 1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일상을 회복하셨다. 아침마다 밥을 하고, 설

거지도 했다. 세탁기와 가스레인지 작동법을 배우고 집안일도 배우면서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저자는

어머니가 몸을 움직이도록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한기호 소장은 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여리다

. 텔레비전 아침드라마에서 “행복이란 별건가. 그저 함께 밥 먹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행복이지!

”라는 대사가 나올 때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언제까지나 이 행복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저자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는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자원한 일”이라고 말한다. “

덕분에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이제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

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종활’을 나름대로 준비하기로 했단다. ‘종활’은 일본에서

상속, 장례, 묘지, 인생 막바지의 의료 등 죽음을 준비하는 임종 활동을 뜻하는 말이란다. 구직 활동은

‘취활’, 결혼 활동은 ‘혼활’이다. 저자에 따르면 “2009년 <아사히신문>에서 처음 쓴 ‘종활’이 지

금 일본 사회에서 붐이다. 취직이나 결혼 못지않게 임종 준비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저자는 죽기 전에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인생의 마무리는 정말 중요하다. 앞으로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이뤄 내기 위

해서라기보다는 세상과 잘 이별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 어느 순간

내가 사라지면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만들어 놓고 조용히 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마흔 이후 인생길》을 읽고 싶었다. 내가 자주 다니는 불광문고에

책이 있냐고 물어봤다. “안 팔려서 반품했어요. 주문할까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이 벌써 서점에서

사라지고 없을까? 2014년에 나온 책인데 말이다. 한기호 소장은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책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지 못했다. 이 책 또한 내가 한 권 산다고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겠지만

읽어봐야 한다. “주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