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또 다른 소식지를 열지만 현실은 늘 같습니다
정연구 이사·한림대 교수
지금 다시 새로운 소식지를 열고 있기는 하지만 소식지에 실리는 내용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뒤에 실린 내용을 다 읽어보지 않아도 그리 짐작이 됩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요? 혹시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세상이 지금처럼 굴러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턱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해서는 안 될 불만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른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늘 꿈꾼다는 진보적 인사의 한 사람으로서 안보 같은 것은 왠지 남의 일 같아 보여서 그리 행동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안보라는 이름 아래 늘 자유의 구속이 뒤따랐던 엄혹한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가 전체가 병영화 된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옳을까요? 여러 가지 판단의 기준이 있겠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세력화를 꿈꾸는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잘못된 생각으로 보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축구 국가대항전이 있는 때면 운동장에서든 안방에서든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을 연호하곤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깃발 아래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국민임을 자부하고 나섭니다. 2002 월드컵 때 벌였던 길거리 응원의 에너지가 여전히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대한민국만이 아니죠. 세계 모든 나라가 이런 국가 대항전에 말 그대로 미쳐 있습니다. 월드컵이, 올림픽이 아직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국민국가의 틀이 오늘날 세계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틀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화다, 국제화다, 지구촌이다 해서 90년대 들어서면서 마치 국민국가의 종말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듯 사람들은 부산을 떨기도 했었죠. 그러나 결과는 금융자본만 쥐새끼처럼 국민국가의 경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배를 불릴 뿐, 정작 국민국가는 현실에서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는 자연스럽게 늘 수구꼴통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자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른바 ‘빨갱이’ 프레임이 진보적 사회 운동을 궤멸시키는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하게 스스로 수구라고,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안보의 핵심내용이라 할 군역을 피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현재 혹은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의 청와대 비서진이나 장관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죠. 오죽 했으면 이명박 정권 때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전쟁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전쟁이야 전업 군인들에 의해서 치러지고 대통령은 큰 방향만 정하면 될 일이라고 변론할 수도 있겠으나 큰 방향만 정하는 대통령 등의 머리에 나만 살고 보자는 생각이 가득 차 있다면 제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명박 정권에서도 현 정권에서도 방산 비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 때 희생당한 꽃 같은 청춘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맹타를 퍼붓던 사람들이 엉터리 군함을 사들이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를 정확히 알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다, 이적이다 하며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은 정작 적의 첨단 공격을 감지조차 하지 못할 배를 사들이는 웃지 못할 일을 벌였습니다. 정말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어뢰에 맞아 군함이 폭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종합해보면 폭침 여부를 더 가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채울 방산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수작이었다고 보입니다.
사실 정말 안보를 생각한다면 이때 천암함이 어떻게 가라앉았는지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올바를 결론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안보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안보를 생각해서 정확한 진상 조사를 해야 했다는 이야기죠. 그래야 다시는 꽃다운 장병도 죽이지 않고 국민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는 타당한 대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천안함 폭침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비안보주의자요, 빨갱이라는 굴레에 가둬 밀어내버린 형국으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군역을 다 마친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안보를 내 손안으로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요? 산업화·민주화 대결구도는 어떨까요? 민주화를 나만의 것으로 여기면 산업화는 저들의 것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