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민언련과 나] 잘 생긴 얼굴, 수줍어하며 남 빛내주던 동지여!
등록 2015.11.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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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 나]

잘 생긴 얼굴, 수줍어하며 남 빛내주던 동지여!

 

 

 

 

안타까운 소식 전합니다. 2015년 10월 12일 이승혁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92년 언론학교 2기로 그해 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언론학교 2기 중 가장 빠르게 언협의 시민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후 그는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와 참언론산악회, 언론학교 동우회 등등 언협의 많은 활동에 빠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언협의 여러 행사와 캠페인 등을 사진으로 담아줬습니다.
그는 언협 활동 이외에도 ‘더불어 숲’과 유가족협의회 등에서 우리 사회의 깨어있는 시민으로 제 몫을 해왔습니다. 그는 2007년 발간된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의 편자였는데 책 소개에 나와 있는 소개는 “유니소니언 여행사 대표. ‘더불어숲’ 모임의 일꾼인 그루터기 2007년 대표. 1988년 직장 초년 시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저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나무야 나무야』와 『나무가 나무에게』의 사진 촬영을 담당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민언련은 언협 당시 활동을 같이 했던 회원들 중심으로 조문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언협에서 얼마나 찬란했는지, 언협이 그로 인해 얼마나 풍성했는지 남기고 싶어 당시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의 사진과 추모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왼쪽 첫번째 앉아있는 이가 故이승혁 회원이다.

 


저는 당신을 ‘승혁 씨’라고 불렸습니다. 언론학교 2기 동기 중에는 워낙 요란한 분들이 많아서 가장 인상적인 동기 5위에는 못 들지만, ‘따뜻한 웃음을 가진 푸근한’ 동기 1위로는 자신 있게 당신을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주 밝고 인자한 웃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언론학교 기수가 암만 늘어나도 언협에서 가장 멀쩡한(외모도 성격도 인품도 모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2011년, SNS에서 다시 당신을 만났습니다. 반가웠지만 메시지만 주고받았죠. 막상 둘이 만나서 회포를 풀기엔 어색해서였지요. 살다 보면 어쩌다 다시 만나서 한잔 하는 날이 있겠지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SNS에 올렸던 글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한 도전자의 노래를 칭찬하는 기사를 링크한 뒤, “테크닉과 진심의 경연에서 진심의 울림이 만든 감동이었다. 사회도 노래처럼 여러 유형이 있을 텐데…왜 우린 진심 어린 사회를 만들지 못했을까?”라고 했지요. 그런데 저는 이 글을 보며 오히려 당신이 진심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이든 진심을 다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올 3월, 당신은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한 구절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을 읊어주면서 “이 시처럼 잠시 페북을 떠나려 합니다. 훨씬 더 튼튼해진 모습으로 다시 뵐게요”라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막연하게 아픈가보다, 좀 건강해지면 다시 나타나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쉬움은 하염없이 커집니다. 승혁 씨! 잘가요! 함께 했던 시간들 모두 잘 추억하며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 김언경

 

 

시민언론운동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세상에 우뚝 몸으로 억센 팔로, 민주의 의기로 벅차게 만나 함께 뛰었던 멋진 이승혁 동지! 언론학교 2기 동기여! 잘생긴 얼굴 수줍어하며 남 빛내주던 동지여! 너무 일찍 가시다니…. - 김영일

 

형! 어찌 이런 일이…참으로 황망합니다. 매년 한 번씩 참언론산악회에서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늘 승혁이 형이 어려운 일을 떠맡곤 했는데…그립네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싸움도, 미움도 없는 곳으로 가세요. 형이 그리울 겁니다. - 송덕호

 

아현동 시절 대선모니터 활동 시기에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모니터의 압박감과 긴장감이 흐르는 언협 공간에서 항상 미소를 띈 얼굴로 모두에게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해 주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배인터라 먼저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픔과 충격일 뿐이다. 이제 다른 공간으로 떠나간 그대여, 영원을 얻기를 바란다. 그대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정희종


1991년 11월 언협 시절 처음 언론학교를 열었다. 금세 마감됐다. 곧바로 2기를 개설했다. 말쑥한 직장인이 찾아왔다. ‘정보원’으로 오해받을 만큼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따뜻한 미소를 가진 사람, 이승혁.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해직언론인 재야단체에서 시민언론단체로 변신하던 때 대기업 소속임을 밝히고 회원가입을 했다. 드문 일이었다. 고정 월급을 받는다는 핑계로 뒤풀이 자리마다 선뜻 주머니를 털었다. 그럼 사람들이 모여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초석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가 편히 쉬기를 빈다. - 신미희

 

 

그는 10월 14일, 평소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모란공원 추모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