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영화이야기]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알 유 피케이? 예스 아이 엠!”
등록 2015.11.0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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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알 유 피케이? 예스 아이 엠!”

 

이재홍 회원

 

 


오늘은 인도 영화 한편 소개해 보려 합니다. 흔히 인도영화를 떠올리면 우리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와 안무로 가득한 영화라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인도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작지만 인도에서도 사회비판적인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들은 고압적인 문화적 풍토 속에서도 사회 부조리를 수면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여전히 영화를 검열하는 정책이 존재합니다. 또한 보수적인 시민들에게 많은 인도 영화감독들이 협박을 받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력들이 존재하기에 인도 사회는 계속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인도 대중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죠. 외계인의 시선으로 인도 사회에 뿌리 박혀있는 ‘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건든 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입니다.
 
“하늘엔 정말 별이 많죠. 그 별들을 다 세 보려고 한 적 있나요? 만약 오늘부터 센다 하더라도 6000년이나 걸릴 거예요 우리 은하의 별만 말이죠.” -영화 첫 장면
 
그렇습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존재합니다. 주인공 피케이 역시 그 수많은 별 중 하나에서 탄생했습니다. 특이하다면 우연치 않게 지구인과 같은 외형을 지녔다는 점이죠. 그런 그가 지구에 불시착해 고향별로 돌아갈 수 있는 리모콘을 도둑질 당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하듯 이제 영화는 리모콘을 다시 되찾아야만 끝날 수 있습니다.
 
피케이는 인도 전역을 수소문합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영화 ‘마션’ 속 마크 와트니와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마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크에게 존재하는 동료들이 피케이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순수한 행동을 보고 그를 바보취급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 피케이(인도어로 취하다). 그의 어이없고 황당무개한 행동을 보며 사람들이 “취했냐?”라고 반문했기에 생긴 이름입니다. 그럼에도 피케이는 끝까지 집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합니다.
 
“신만이 아시겠죠. 신만이 자넬 도울 수 있을 걸세. 신을 의지 하게나 젊은이”
 리모콘의 행방을 묻는 외계인 피케이에게 인도인들이 한결같이 해준 대답입니다. 심지어 경찰들도 같은 레토릭이었습니다. 그 후 피케이는 신에 천착합니다. 그에게 신이 곧 집으로 돌아갈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답을 얻기 위해 여러 종교에 매진했고, 서로 다른 종교의 기괴한 수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피케이는 종교가 원하는 것을 모두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리모콘의 행방을 알려주는 신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에는 신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걸. 정말 많은 신이 있다는 걸. 또 각각의 신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규칙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의 종교(회사)에만 속해 있어야만 했어요. 그렇다면 전 어떤 회사의 멤버인거죠? 어떤 신에게 기도드려야 하는 거죠?”
모든 일이 종교로 환원되고 통하는 인도사회에서 피케이가 뱉었던 독백입니다. 종교는 모든 답을 가진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에겐 너무나도 비논리적인 해답만을 던져주었습니다. 더군다나 종교에 따라 그 대답은 서로 상의합니다. 우주에서 온 피케이에게 이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가 막힌 현실이 곧 펼쳐집니다. 피케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리모콘이 끝내 종교단체에 속해있었던 것이죠. 그것도 ‘신의 흔적’이라 불리며 말입니다. 피케이의 희망을 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피케이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를 옳은 방식으로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TV 쇼’가 피케이 앞에 전개됩니다.
 
뉴스 기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 앞에선 피케이가 입을 땝니다. 그리고 자신의 리모콘을 ‘신의 흔적’으로 둔갑시킨 고압적인 종교인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매일 매일 신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생가하면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처럼 느껴졌죠. 저도 동의해요. 신을 믿는 게 희망을 준다는 말에. 하지만 저에게는 질문이 남아 있어요. 어떤 신을 믿어야죠?…신은 한 분뿐이라고 하시는데. 제 생각엔 아닌 것 같아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이 있는 것 같다구요. 당신들을 만드신 신과, 당신들이 만든 신이요. 난 당신들을 만드신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들이 만든 신은 알아요. 당신과 똑같죠…째째하고, 거짓말쟁이에, 타락해서는 거짓약속이나 하죠. 부자들은 바로 만나주지만 가난뱅이들은 줄을 서서 만나뵈어야 해요.”
 
이에 종교인은 신성모독에 가만있지 않고 계속해 자신이 신을 보호하겠다 말합니다. 그러자 그동안 늘 바보취급을 당했던 피케이의 입에서 영화 속 가장 논리적인 말이 나옵니다.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예요. 수 백 만개의 훨씬 거대한 별들이 우주 가운데 존재한다구요. 그런데 당신이 이 작은 별의, 작은 도시의, 작은 방에 앉아서, 신을 보호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이 모든 생명을 만드신 분을요?”
 
영화는 결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의 존재를 이용해 잘못된 관념을 만들어 내는 종교인들을 문제 삼습니다. 사람들을 겁먹게 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들을 말이죠. 피케이의 입을 빌리자면 그들은 ‘잘못된 번호’로 전화를 건 사람들입니다. 진실한 신의 번호가 아닌, 잘못된 신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된 메시지를 받아 그것을 진짜처럼 둔갑하는 장난전화꾼들을 말이죠.
 
피케이는 극 중 자신을 도와주는 TV 기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만약 이 사람의 부모였다면 이런 대답을 했을까요?’ 아파 죽어가는 아내를 돕기 위해 여기서 4000km 넘는 히말라야에 가 신에게 빌라는 신의 말씀을. 델리의 거리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겐지스강에서 나를 위해 우유목욕을 하라는 교리를 말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잘못된 번호로 걸어 생긴 오류들입니다.
하지만 이 보더 더 큰 문제는 피케이가 던지는 이러한 ‘잘못된 번호’ 개념이 결코 인도사회의 종교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살짝 고개만 돌려보면 우리는 사회,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 수많은 잘못된 번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이 진실의 감투를 쓰고 정답인 마냥 행세하고 있는 오류상황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신의 말씀이기에,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기에 그것이 한 점 의심 없이 진실로 숭배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저 사회적 대화의 실패이자 편협한 고정관념의 고착화 과정일 뿐입니다.
 
피케이가 던지는 ‘잘못된 번호’ 개념을 좀 더 확장해 우리에게 적용시켜 봅시다. 얼마나 많은 장난전화와 우상화 작업들이 우리 사회에 비논리적인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들이 우리들 내면 속에서 작동해 사고의 한정성을 만들고 있을까요? 그리고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봅시다. 그것이 과연 정당한 신의 말씀인지? 아니면 나약하고 비겁한 사욕을 위한 철옹성같은 합리화 과정인지? 말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피식하게 됩니다. 뜻도 모르고 자주 불리니 ‘피케이’가 자신의 이름이라 생각하는 피케이의 ‘순수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 이런 생각이 듭니다. 순수함이 취함으로 오독되는 사회에서 그래도 피케이처럼 취한 채로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생각 말입니다. “알 유 피케이? 예스 아이 엠!”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