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책이야기] 히틀러는 어떻게 국민을 홀렸나?
등록 2015.10.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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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히틀러는 어떻게 국민을 홀렸나?

 

 

김경실(민언련 부이사장)


 

‘히틀러의 연설’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세워 공중에서 자잘하게 흔들면서 뭔가 위협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워 보이면서도 히스테릭한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독일 국민을 홀린 히틀러 연설의 진실은 따로 있다. 일본의 독문학자인 다카다 히로유키는 1919년 10월 뮌헨의 맥주홀에서 했던 첫 연설부터 1945년 1월 총통 지하 방공호에서 녹음한 최후의 라디오 연설까지, 25년에 걸쳐 쏟아낸 히틀러의 연설문들을 컴퓨터로 계량분석하여 ‘히틀러 연설 150만 단어’ 데이터를 완성했다. <<히틀러 연설의 진실>>은 그 데이터를 토대로 히틀러 연설을 언어적 측면과 연설이 놓인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책이다.

 

“이 세상의 위대한 운동은 전부 위대한 글쟁이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 덕분에 확대된다.”
히틀러의 연설은 정권 획득을 전후로 하여 내용과 형식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가장 전성기였던, 그러니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절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가정법이 많다. “만일 ...한다면, 그것은...”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편리하게 가정한 뒤에 이를 출발점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식이다.(이는 이른바 ‘라면 사설(~라면 ....이다)’로 유명한 조선일보 글쓰기와 유사하다.)
“A가 아니라 B”라는 식의 대비법도 자주 등장한다.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를 더욱 선명하기 위해 부정어를 앞세우거나 A에서 예상되는 것과는 다른 B를 부각시켜 흑백을 명확하게 나누는 식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반복’이다. 히틀러는 청중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반복이라는 망치를 솜씨 좋게 사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청중들의 머리 깊숙이 두드려 넣었다. 그 효과는 다른 어떤 것보다 탁월했다.


이 외에도 히틀러는 과장법, 평행법, 교차법 등의 수사학과 인상적인 제스처를 동원해 청중들을 매료하고 열광시켰다. 그렇다고 그가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말하는 연사는 아니었다.
히틀러의 연설은 서론-진술-논증-결론이라는 형식적 측면을 철저하게 따랐다. 연설에서 다룰 주제에 대한 키워드 혹은 주요 문자를 순서대로 메모지에 기록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최대한 구현해냈다. 연설문을 꼼꼼하게 작성하는 대신 구성을 치밀하게 한 것이다. 즉석에서 생각난 것처럼 들리는 문장이나 표현도 미리 메모해둔 것이었다.


프랑스 대중심리학자 르 봉의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은 히틀러는 ‘대중의 수용능력은 매우 한정적이고 이해력은 낮으며 그만큼 잘 잊어버린다’는 전제를 깔고 대중들을 상대했다.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에는 선동연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드러내주는 어록들이 등장한다.


글말보다 입말. “이 세상의 위대한 운동은 전부 위대한 글쟁이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 덕분에 확대된다.”
논리보다 감정에 호소하라. “본능적인 혐오, 감정적인 증오, 선입관에 따른 거부를 극복하는 것은 학술적인 오류를 바로잡는 것보다 천 배는 더 어렵다.”


요점을 간추려 반복하라. “주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그 요점을 슬로건처럼 반복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이 선거에 당선되는가
히틀러는 뛰어난 연출가이자 천부적인 선동가였지만 단지 자신의 개인기만으로 독일 대중들을 휘어잡은 아니었다. 때맞추어 도착한 문명의 이기들이 그를 도왔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개발되면서 히틀러의 목소리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는 비약적으로 넓어졌고 비행기는 그가 만날 수 있는 유권자들의 수를 몇 배로 늘려주었으며, 라디오와 수신기는 그의 슬로건을 독일 구석구석까지 전파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나치는 33년부터 43년 10년 사이에 독일 국민 세 명 중에 한 명 꼴로 소형 라디오 수신기를 가지고 있게 만들었지만 히틀러의 연설 횟수는 오히려 반으로 감소했다. 국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만 흘러나오는 연설에 싫증을 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수천, 수만 명의 청중을 상대로 쨍쨍한 목소리를 울려댔던 히틀러 역시 마이크 앞에서 ‘읽어내려가는’ 연설에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 라디오를 통해 강제적으로 들어야만 했던 총통연설은 원래 가지고 있던 파급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히틀러의 연설은 더 이상 동지를 얻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하고 만다.


유권자인 우리가 새삼 깨달아야 할 진실은 단순하다. 히틀러의 능란한 말재주와 이를 전하는 미디어가 청중에게 가져다 준 것은 ‘빵’ 자체가 아니라 실체가 없는 채로 부풀려지기만 한 ‘빵의 꿈’이었다는 것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히틀러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새길 일이다.
“선거에서는 명확한 의미가 없으면서 다양한 바람을 이루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상투적인 말을 새롭게 발견하는 후보자가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