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7)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일곱 번째, 12위 - 8위
어떻게 살 것인가? 나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은 끊임없지만 명쾌한 대답은 드물다. 영화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린다. 이번 호 주인공들의 이력도 각양각색이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17살 동갑내기, 아내를 찾아 낯선 곳에 머무는 남자,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젊은 사진작가, 부모님을 되찾기 위한 소녀, 핀란드 작은 식당에 모인 사람들. 이들의 희로애락에 편승해 미처 알지 못한 삶의 이유를 깨닫는다. 이번 호 11위에 오른 <스틸 라이프>를 특별히 추천한다.
12위. 이투마마 (미국․멕시코, 감독 : 알폰소 쿠아론 / 출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디에고 루나)
테녹과 훌리오는 17살 동갑내기 친구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섹스다. 여름방학을 맞아 각자 여자 친구가 여행을 떠난 후, 테녹의 형 결혼식 파티에서 사촌형수 루이자를 만난다. 둘은 루이자에게 ‘보카 데시알(천국의 입)’이라는 멕시코 해안으로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사실 이들은 ‘천국의 입’을 알지 못한다. 루이자에 반한 나머지 즉흥적으로 떠올린 장소이다. 마침 루이자의 남편이 외도를 고백하면서 세 사람은 ‘천국의 입’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산드라 블록의 우주생존기를 담은 <그래비티>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1년 작품이다. 젊은 날의 방황은 통과의례가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비타민C이길 바라는 감독의 진지한 성찰이 담겼다.
11위. 스틸 라이프 (중국․홍콩, 감독 : 지아 장 커 / 출연 : 한산밍․자오 타오․왕홍웨이)
16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아내와 딸을 찾아 산샤(三峽)를 찾은 삼밍. 아내가 남긴 주소지는 이미 물에 잠겼다. 삼밍은 산샤의 신도시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며 쉬는 날엔 아내를 찾아 헤맨다. 산샤는 아름다운 정경으로 유명하지만 중국 정부의 개방정책 때문에 곳곳이 개발되고 수장되면서 100만 명이 넘는 거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는 ‘고요한 삶’을 의미한다. 수장과 동시에 많은 것이 사라져가는 산샤 사람들의 현재 삶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지아 장 커 감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깊은 시간의 흔적을 새긴 채 고요하게 인생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10위. 타임 투 리브 (프랑스, 감독 : 프랑소와 오종 / 출연 : 멜빌 푸포․잔느 모로)
수려한 외모와 실력을 갖춘 패션사진 작가 로맹(멜빌 푸포)은 3개월 말기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로맹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가족한테도 알리지 않은 채, 삶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한다. 유일한 안식처는 할머니(잔느 모로)뿐이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로부터의 이별, 카메라는 죽음을 맞이하는 로맹의 처음부터 끝을 담담히 쫓는다. 거의 종착역에 닿을 즈음, 로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부부한테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제안을 받는다. 감독 프랑소와 오종이 푸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섬세하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바닷가에서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은 잔잔하지만 강렬하다. 고요히 눈을 감은 로맹 너머로 파도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불린 잔느 모로의 명품 연기도 만날 수 있다.
9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소녀 치히로 가족이 이사 가던 날, 길을 잃고 낯선 터널을 만난다. 터널 너머는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신들의 영역이다. 치히로의 엄마, 아빠는 신들의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한다. 충격에 빠진 치히로 앞에 소년 하쿠가 나타난다. 하쿠는 치히로를 온갖 정령들이 모여드는 온천장으로 이끈다. 엄마, 아빠를 찾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치히로는 온천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영화는 소녀 치히로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그렸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조리와 비슷한 난관과 갈등, 치히로는 수시로 다가오는 시련을 그때마다 강인하게 극복하며 성장한다. 이 영화를 21세기 최고 걸작으로 꼽는 팬들은 하쿠와 치히로의 마지막 이별 장면을 아쉬워한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우린 꼭 만날 테니까.” 하쿠와 치히로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영화 엔딩에 흐르는 히사시이 조의 OST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애틋하다.
8위. 카모메 식당 (일본,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 출연 : 고바야시 사토미․모타이 마사코․카타기리 하이리)
<요시노 이발관> <안경> <토일렛>.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 소재는 ‘소소’하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내 일처럼 와 닿는다. 핀란드 헬싱키에 새로 문을 연 카모메 식당에는 한 달 째 손님이 오질 않는다. 주인장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는 실망하지 않고 매일 아침 대표 메뉴 주먹밥을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여인 미도리가 찾아온다. 방문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는데 그곳이 바로 핀란드였어요.” <카모메 식당>은 극 중 배역들의 대사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워요."(미도리),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슬픔을 안고 사는군요.”(마사코), “사실은요, 여기에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 곳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사치에)
글 김현식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