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영화이야기] 류성헌의 공간으로 읽는 영화산책 ⑤ 망각의 로망, 사라지는 공간
등록 2016.01.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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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류성헌의 공간으로 읽는 영화산책 ⑤ <이터널 선샤인>

망각의 로망, 사라지는 공간

 

류성헌(민언련 회원)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 속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와의 추억을 되새겨 보면 대부분 함께 경험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처음 만난 장소, 함께 거닐던 골목길, 자주 갔던 밥집, 아련한 카페 등등. 즉, 기억 속 사물 혹은 사람은 그 자체가 단독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소품, 분위기, 밝기 등 '그것'을 둘러싼 공간에 의해 포장되어 있다. <이터널 선샤인>이 많은 사람에게 애틋함과 아련함을 준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조엘(짐 캐리 역)의 머릿속 지워지는 공간 때문이다.
 
헤어진 옛사랑과의 추억에 괴로워하던 조엘은 마찬가지 고통에 시달리던 전 여자친구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역)이 기억저장소를 선별적으로 지워주는 서비스를 받았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기억도 지우기로 한다. 머릿속 그녀의 기억을 선별적으로 지워나가던 잠재의식 속의 그는, 문득 꺼져가는 공간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기억 속 그녀와 함께 기억을 지워나가는 현실에서 도피해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달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의 추억은 모두 지워져 버리고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에서 이상한 충동에 빠진 조엘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어느 장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동행하게 된다. 그와 그녀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어쩌면 또 다른 이별과 아픔, 그리고 또 한 번 삭제를 할 영원한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영화 속 공간은 크게 현실 세계와 조엘의 기억 속 공간으로 나누어지고 시간의 역순으로 지워지는 공간과 동시간대 현실세계가 교차 편집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여기에 중요한 두 공간이 등장하는데, 마치 산행의 베이스캠프처럼 어떤 시퀀스의 새로운 출발점은 모두 이 두 장소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장소는 꽁꽁 언 찰스 호수. 이 호수의 하얀 얼음판에 누워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 생경한 느낌을 공유하며 강한 기억을 주입하고, 이 느낌은 기억이 지워진 이후에도 질긴 끈처럼 둘 사이의 연결 고리처럼 작용한다. 혹시라도 한 번쯤 아스팔트에 누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눕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낯설고 새로운 느낌인지. 얼어붙은 호수에서 손을 잡고 눕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쩌면 도시 속 정해진 공간 속에 길들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장소는 몬토크 해변. 둘이 처음 만난 장소. 해변이라는 일반화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해변의 곡선형 기둥이 2층 발코니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양식의 목조주택. 이곳 계단에서 둘은 첫 대화를 나누고 기억이 지워진 후 첫 만남 역시 몬토크 해변의 그 집을 배회하던 중 이루어진다. 그 집은 마치 등대처럼 둘 사이에서 만남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에 말한 두 장소를 중심으로 영화 속 공간은 조엘의 지워지는 기억들의 플래시백 흐름 속에 역순으로 펼쳐진다. 아니, 꺼져간다. 헤어지는 날부터 시작해 처음 만난 몬토크 해변까지 역순 하는 삭제의 과정을 겪으며 조엘은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는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고 삭제행위를 거부하기 위해 그녀와의 공감대가 없는 장소를 찾아 숨어든다. 그가 선택한 공간들은 그녀와 만나기 전의 어린 시절 공간. 이 장면은 가히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함께 동요를 부르다 비가 내리고, 그 비는 어린이의 감수성으로 느끼던 비의 느낌과 중첩되며 공간은 자연스럽게 과거 자신의 집 식탁 밑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디테일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개인적 감성으로 각인된 어린 시절의 공간과 감각에 대한 기억을 잘 묘사해냈다. 감독은 조엘의 뇌를 마치 거대한 하나의 지도처럼 펼쳐놓고 삭제되는 구역들과 그것을 피해 달아나는 조엘의 여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면 이 기억 삭제 서비스를 받던 다른 사람들도 잊고 싶은 기억 속 공간들을 역순으로 달리며 혹시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클레멘타인도, 서비스 클리닉에서 만난 상심한 모든 사람도 결국 꺼져가는 기억의 공간 앞에서 한 번쯤은 달아나려 시도해보았을 것 같다. 결국은 조엘처럼 깨끗이 지워진 기억을 안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겠지만 말이다.

 

지워지는 조엘의 기억 속 공간들과 평행하게 달리는 현실 속 공간은 그의 좁은 아파트. 기억 삭제 서비스를 진행하던 스텝들은 누군가의 기억을 삭제하는 반복된 업무에 마치 베테랑 조종사들이 자동항법장치로 전환하듯, 기계에 맡기고 잡담과 여흥으로 시간을 죽인다. 시공을 초월하는 달리기 중인 머릿속과 정반대로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조엘을 중심으로 뛰고 구르고 심지어 사랑을 나눈다. 지우는 자와 지워지는 자는 이렇게 좁은 공간에 함께 틀어박혀 숨바꼭질을 연출한다. 최근작 무드 인디고에서도 잘 묘사되었지만, 감독 미셸 공드리는 언제나 매우 공들인 마술적 환상주의 공간을 보여준다. 사실적인 듯 보이지만 기이하게 왜곡된 공간이 연출되곤 하는데(이 영화에서 역시 많은 장면이 이렇게 보이지만), 유독 이 아파트 속 기억 삭제의 장면은 마치 강한 대비를 이루려는 듯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빠른 템포로 변환하는 열린 공간들의 나열과 닫힌 공간 속 교차하는 편집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또 하나의 축으로 중심을 잡아준다.

 

 

SNL로 데뷔한 코미디 배우 출신 짐 캐리는 90년대 후반부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2004년 <이터널 선샤인>에서 감성적 연기의 정점을 찍게 된다. 최고의 표정 연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입꼬리와 눈매가 다시 한 번 이런 결의 연기를 보여주길 바라지만,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젊은 시절 마크 러팔로의 놀라운 모습도 10년 만의 재개봉이 가져다주는 깜짝 재미 중 하나.

 

개봉 10년 뒤 재개봉 된 이 영화는 당시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미셸 공드리의 독특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현실 세계의 흔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에, 마음속 깊은 기억이라는 공간을 전면에 내세워 뜻밖의 공감을 얻었다. 정말이지 기이한 공간연출을 위해 직접 수작업도 마다치 않는다는 감독의 정성이 오롯이 보이는 영화다.

 

잊고 싶은 기억과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아플 만큼 아프고 딱지처럼 굳은 다음 화석화된 기억이 더 아름다울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몸서리치게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판타지가 이 영화를 언제든 다시 찾게 하는 중독성을 주는 것 같다.  클래식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