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영화이야기]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아홉 번째, 2위 -1위
등록 2015.12.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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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베스트 영화 44!(9)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아홉 번째, 2위 - 1위

 

 

김현식 회원


마흔네 살 남자가 뽑은 영화 44편. 마지막 회 1, 2위를 소개한다. ‘발표한다’가 더 어울릴 듯하다. 영화를 고르고 순위를 정할 때 그럴싸한 명분이나 맥락은 없었다. 이 중 한 편이라도 각박한 일상에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1, 2위를 발표하기 전 3위부터 44위까지 영화를 살펴보자.

 

 

 

아시아권 영화가 강세다. 42편 중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한국, 일본, 대만, 홍콩(중국), 싱가포르 영화 19편이 순위에 올랐다. <카모메 식당>, <메종 드 히미코>, <수영장> 등 일본 영화가 7편이다. 대부분 소소한 일상과 인간관계를 소재로 삼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와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영화다. 대만 영화 <쓰리 타임즈>, <여친남친>, <영원한 여름> 주인공들의 사랑은 닿을 듯 말 듯 엇갈린다.

 

멕시코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3편에 출연했다. 눈빛이 강렬하다. <이투마마>, <나쁜 교육>,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그의 연기는 탁월했다. <카모메 식당>, <안경>에 출연한 고바야시 사코미·모타이 마사코 짝꿍은 “일상에서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는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주연배우가 있다. <시> 미자(윤정희), <케빈에 대하여> 에바(틸다 스윈튼), <세상의 모든 계절> 메리(레슬리 멜빌)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지만 반응은 차갑다. 미자와 에바, 메리의 외로움은 더해간다.


순위권에 애틋하고 슬픈 사랑을 이야기한 영화가 많다. <2046>, <브로크백 마운틴>, <파이란>, <파 프롬 헤븐>,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이들은 ‘왜 사랑은 영원히 간직할 수 없을까?’ 묻지만 답은 명확하지 않다. 기묘한 사랑 이야기도 있다. 독일 영화 <쓰리>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지 알려준다.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1위와 2위는 독일 영화 <타인의 삶>과 한국 영화 <파수꾼>이다. 주인공 비즐러(울리히 뮈헤)와 기태(이제훈)의 삶은 무척 고독하다. 각자 다른 처지에 놓였지만 외로운 건 매한가지다.

 

 

 

 

 

 

 

 

 

 

2위. 파수꾼 

(한국, 감독 : 윤성현 / 출연 : 이제훈·서준영·박정민·조성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등학교에서 싸움으로 잘 나가던 기태(이제훈)가 자살했다. 아들한테 무심했던 아버지(조성하)는 기태의 자취를 쫓다 서랍 속 사진에서 동윤(서준영)과 희준(박정민)을 발견한다. 기태와 친구였던 두 사람. 희준은 전학을 갔고 동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영화는 세 친구의 관계와 심리를 담담하게 그린다. 폭력의 중심에 서 있던 기태는 가해자일까? 기태 곁에 머물다 떠난 동윤과 희준은 피해자일까? 단 한 번도 제대로 사랑받아본 적 없는 기태는 스스로 파수꾼이 되어 우정을 갈구했다. 겉으로 강인했지만, 진심을 드러내지 못했다. 친구들과 소통은 미숙했고, 당연히 오해만 커졌다. 파국으로 향하는 관계에서 기태는 고립된다. 모든 걸 잃었다 체념하는 기태, 어쩔 수 없이 벗어나야 했던 동윤과 희준 세 사람 모두 안타깝다. 우정을 되찾고 싶어 동윤을 찾아가 애원하는 기태에게 던진 동윤의 한마디가 비극적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너만 없었으면 돼.”

 

 

 

 

 

1위. 타인의 삶  
(독일, 감독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 출연 : 울리히 뮈헤·마르티나 게덱)

타인의 삶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만큼인가? 1984년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헤)는 동독 최고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인기 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중책을 맡는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목표에 맞춰 철저하게 감시하지만 두 사람을 체포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한다. 국가와 자기 신념을 위해 헌신한 비즐러, 냉정하고 맹목적이던 비즐러는 두 사람을 관찰하면서 차츰 변해간다.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감동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지닌 따뜻한 알갱이가 그에게 전염됐다. 타인의 삶이 비즐러의 인생을 바꿨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년 후 비즐러가 서점에 진열된 드라이만의 신작 <착한 사람들의 소나타>를 사는 장면, 책 앞장에 적힌 한 줄 때문에 울컥하다. 'HGW XX/7에게 헌정함' HGW XX/7은 비즐러의 암호명이었다. 2006년 영화 개봉 후 이듬해 7월, 비즐러를 연기한 울리히 뮈헤는 위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 일곱번째, 7-3위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