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여는글] 혼돈의 시대! 민언련의 선택은?
등록 2016.03.0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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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혼돈의 시대! 민언련의 선택은?

 

김서중(정책위원장, 성공회대 교수)


혼돈의 시대다. 사회 전체가 혼돈의 시대로 빠져 들고 있다. 무능한 정권의 실정이 초래한 결과다. 경제도 망치고, 외교도 실패했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오직 국내 정치에만 골몰하며 국민을 위기에 몰아넣는다.

최근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은 분배의 공정성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의 진단과 처방도 다르지 않다.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할 수 있었던 것은 약자에 대한 국민적 정의감의 발로가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감지한 국민의 생존적 본능이 작동한 결과이다. 물론 그 본능은 오작동 했다. 집권 이후 박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 공약을 실천하기는커녕 이에 역행하고 있다. 게다가 오히려 그런 행태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해소해야 할 사회 불평등 구조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청년과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노갈등과 세대갈등을 부추기며, 국내 정치에만 골몰한다.


일제강점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을 찌르며, 아버지 박대통령에 이어 또 다시 수십 년 만에 일본과 굴욕적 협상을 했다. 미·일·한 삼각 동맹이라는 사실 상의 종속적인 족쇄를 차라는 미국의 압력에 부응한 외교 무능의 결과였다. 그리고 북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이 협상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의 사드 배치를 수용하고 북한과 이어주던 유일한 끈이었던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위기에 몰아넣으면서도, 정권은 소위 ‘묻지마’안보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장기집권을 위한 테러방지법 통과를 압박하는 국내 정치에만 몰두한다.


노동자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거리에서 호소할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언론이 제 구실을 한다면 저들이 저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라는 것이다. 지금 혼돈의 국가 위기를 겪으면서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역시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있는 소위 주류 언론의 현실에 대한 분노다. 정권에 장악되거나, 정권의 특혜로 탄생해 지배권력 수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언론들의 추한 진면목을 목도하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룩해낸 언론 민주화의 성과들이 지난 8년 간 속절없이 스러져간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허망함이 힘들게 한다. 우리 언론들이 1970∼80년대로 회귀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언론이 바로 서야 하고, 언론이 바로 서기 위해 정치가 바로 서야 하는 순환론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류 언론이 정권에 의해 장악되고,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은 비합법 공간에서야 접할 수 있었던 과거와 분명 다른 것은 현재는 다양한 합법적 언론이 진실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주류 언론이 아닐 뿐이다. 그런데 이런 혼돈의 시대에 그들이 여전히 주류 언론이 아니라는 점 또한 혼돈스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 진보 개혁 세력이 진보 개혁적인 언론을 수용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존재한다.


여기에 매체 또는 플랫폼이 변하고 있다는 또 다른 혼돈이 작용한다. 이념과 세대에 따라 매체 이용 양상이 다른 것이다. 나이든 보수(?)는 전통적인 주류매체를 굳건하게 떠받치고 있지만 젊은 (개혁) 세대는 대안매체를 비롯해 전통적인 매체 자체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과 십여 년 전 직접 민주주의 환상을 갖게 했던 소위 일부 SNS 조차 젊은 세대의 버림을 받거나, 받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나올 정도로 플랫폼의 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도 어려운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 운동 역시 전통적인 매체를 향한 사후적 감시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능동적인 콘텐츠 생산 운동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즉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언론 운동의 선택은? 정답을 말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몇 가지 고려 지점은 있다. 첫째 변화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도전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변화하는 현실을 감지하지 못할 때 운동은 운동을 위한 운동이 될 수밖에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반면 변화는 과정이다. 미래의 가능성과 동시에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질서가 존재한다. 운동은 미래에 대비해야 하지만 현재의 질곡도 동시에 풀어야 한다. 다양한 운동 주체는 각자의 역사성 속에서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민언련은 어떤 지점에 있을까? 그리고 운동은 그 지점에서 변화에 대응하여 가능한 한 최대의 도전을 하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 2016년 민언련이 선택할 수 있는 운동의 전략은 무엇일까? 총회 전까지 그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