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호] [영화이야기] 누군가를 배제한 ‘허상의 우리’, 서슬에서 진짜 살아남는 법
등록 2016.07.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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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ㅣ 우리들(2016 한국, 드라마, 감독 : 윤가은)

누군가를 배제한 ‘허상의 우리’, 서슬에서 진짜 살아남는 법

 

이재홍 회원

 

여기 두 가지 ‘우리’가 있다. 한 명의 약자를 배제함으로써 완성되는 우리. 또는 용기 있게 약자와 손을 잡고 다함께 만드는 우리.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은 전자의 ‘우리’를 선호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편이 쉽고 때로는 스스로를 ‘강자’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강자에게 특권을 주는 우리 사회가 종용한 기현상이기도 하다. 약자를 약자로 만드는 사회 구조와 싸우는 대신 강자만의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동질감,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나만 도태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지속된 ‘허상의 공동체’. 지난달 개봉해 조용한 흥행을 이끌고 있는 영화 <우리들>은 아이들의 교실을 빌려, 모든 사람들이 은밀히 동조하고 있는 그 ‘허상의 공동체’를 고발한다.

 

 

“야. 너 금 밟았어.”
“나 안 밟았어.”
“얘 금 밟은 거 봤지? 금 밟았는데 안 밟았다고 하잖아.”
“너 나가. 금 밟았잖아.”

 

영화의 첫 장면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피구 게임이다. 금을 밟으면 게임에서 자동으로 추방되는 룰에서 주인공 ‘선’은 이유 없이 쫓겨난다. 교실 안 계층 사다리에서 가장 아래 있는 그녀에게 제대로 된 항변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생님도 아이들, 그 누구도 그녀가 선을 밟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교실 안 최강자 ‘보라‘의 말에 동조한다. 이미 만들어진 ’우리‘라는 틀을 그 누구도 먼저 깨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친구들이 신나게 피구를 하는 동안, 금 밖에서 서성이는 선의 얼굴이 오랫동안 비춰준다.

 

 

 

감독은 냉혹한 사회의 공기를 교실 안에서 포착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진부한 비유가 이 영화에서 뼈아프게 그려진다.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규칙과 지도자의 명령에 의해, 배제되어야 하는 ‘왕따’선은 방학에도 홀로 남아 교실을 청소한다. 그러던 중 영화는 반전을 맞이한다. 선에게 전학생 지아가 찾아온 것이다. 기존에 있던 ‘우리’가 만든 관계의 룰은 물론 ‘우리’의 속한 이들의 시선도 모두 중지된 학교의 방학. 지아는 마친 전학생 신분이라 그 룰과 시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덕분에 선은 지아와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 선은 지아의 손에 봉숭아물을 들인다. 한번 들면 오랫동안 스며드는 손톱 위 봉숭아물처럼 둘은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 한다. 하지만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시작은 지아가 학원을 다니면서 부터다. 지아는 선에게 계속해 학원을 함께 가자고 권유 하지만 선의 가정형편상 그것은 사치다. 그리고 어느 날 선은 지아가 같은 반 보라, 그러니까 선을 배제한 ‘우리’의 지도자와 함께 학원을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지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마냥 불안해한다. 그때 이후로 점점 선은 점점 지아와 멀어진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우리’의 룰이 교실에서 생동하자 지아는 선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심지어 왕따 선과의 관계를 지우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위선까지 저지른다.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쏟았던 친구의 돌변 앞에서, 선은 무력하게 다시 고립된다. 자신도 누군가의 ‘우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선의 꿈은, 친구들이 돌아온 교실에서 지아와 함께 사라진다. 다시 혼자다.

 

이렇게 타자의 배제를 통해 형성되는 ‘우리-맺음’의 위험성은 ‘우리’에 속한 나 역시도 언제든지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여기서 영화의 두 번째 반전이 시작된다. 한때 가장 친했던 선의 ‘왕따’를 재확인함으로써 ‘주류’에 편입된 지아는 뜻하지 않게 ‘주류’의 룰을 어기게 된다. 거기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지아의 비밀마저 하나둘씩 드러나게 된다. 지아는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어제까지 ‘우리’였던 친구를 금 밖으로 내몰면서 공동체는 더욱 포악스럽게 변해가지만, 그 누구도 이를 제재하지 못한다. ‘우리’는 선과 지아를 보면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과,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포악하게 누군가를 배제해야 한다는 ‘우리’의 룰을 다시 확인한다.

 

 

이렇게 두려움과 침묵이라는 규칙으로 작동하는 우리의 관계맺음 방식은 사실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영화 속 선에 ‘종북인사’를 대입해보면 이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그 누구도 ‘종북행위’를 확인한 적 없지만 기득권과 보수언론이 말하는 대로 사람들은 믿는다. ‘종북인사’가 ‘종북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두둔하는 순간, 나도 ‘종북’으로 낙인찍혀 저 강력한 기득권의 ‘우리’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이다. 유우성 씨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룰에 의해 긴 시간 동안 간첩으로 몰려 수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우리’라는 공동체 모두가 이런 획일적 방식의 관계 맺기에 그치지는 않는다. 영화 제목은 <우리들>이라는 복수형을 차용했는데, 이는 대안적인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미상관 구조로 반복되는 피구장면을 통해 영화는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운동장으로 초대한다. 첫 장면 ‘선’의 입장에 처해있는 ‘지아’의 모습. 보라는 분위기를 주도하며 지아를 금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금을 밟았다고 말하고 친구들은 또 침묵한다. 여기서 첫 장면과는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첫 장면의 주인공 선이 ‘선을 밝지 않았다’고 진실을 말한 것이다. 이미 ‘우리’에서 배제된 약자가 다른 약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가장 위험한 금기를 깬 이 순간, 놀랍게도 다수의 친구들이 선의 말에 수긍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간단한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배제를 통한 ‘허상의 우리’가 아닌 ‘모두의 우리’를 만들 수 있음을. 약자를 배제하는 ‘우리’는 또 다른 약자를 만들어내 결국 모두를 배제할 뿐이라는 사실을. 결국 약자와의 연대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관계맺음의 시작이라는 진실을. 운동장을 꽤 오래 전에 졸업한 수많은 ‘우리’들 중 과연 얼마나 이런 진실에 다가가 있을까? 우린 정말 성장한 것일까? 영화 <우리들>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