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영화이야기] 청소년에게 자유로운 사색을 허하라
등록 2016.12.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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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석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려면 성인 ‘쯤’은 되어야 한다?

중고등학생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갖는 일은 어림도 없다?

 

지난 11월 5일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을 불순세력에 의해 선동된 비주체적인 인격으로 치부하는 발언이 나왔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주인공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그는 법무부 장관에게 “중고생이 저러고 있는 저 배후에는 종북주의 교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중고생연대에 대해서 이적성 조사를 하십시오”라고 했다. 사실 이런 발언이 나오는 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중고생이 집회에 나타나면 극우 보수는 언제나 배후세력 타령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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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을 강요하는 어른들 

 

이런 어른들이 한국 말고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고등학생을 보면 그 나이에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면서 그들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어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기득권에 손해를 입힐 것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성인들을 배제하고 싶을 때면 순수한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불순한 세력이라고 단정짓는 비열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성인이 한국 말고도 있단다. 그런데 지금 현재인 2016년에 있는 것이 아니라 1959년에 있었단다. 2016년 한국의 어떤 어른들은 시간을 거스르고 장소를 달리한 1959년 미국의 어떤 어른들과 묘하게도 닮았다. 닮아도 아주 많이 닮았다. 

 

1959년을 배경으로 하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피터 위어 감독>에 등장하는 몇몇 성인들이 주인공이다. 웰튼고등학교 교장을 필두로 한 선생들과 일부 학부모들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스스로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사색을 즐기며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학생들을 인도하는 키팅선생(로빈 윌리엄스)은 위험한 인물로서 배제 대상이다.

 

이 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키팅이 영어 선생으로 새롭게 부임해 오기 전까지는 높은 명문대 진학률 때문에 획득한 최고 명문 사립고등학교라는 현재의 명성을 지키려는 학교의 이해와 자신의 아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졸업하여 확보하게 될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해서 집안의 미래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이해가 맞닿아 아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어 왔다. 

 

개강일이자 입학식이 있는 날 학교를 찾은 닐 페리(로버트 숀 레너드)의 아버지(커트우드 스미스)는 아들의 방과 후 활동들 중에서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졸업연감 부편집장 일을 그만두라고 명령한다. 하고 싶은 일이니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라고 충고하는 친구 찰리(게일 헨슨)와 녹스(조시 찰스)에게 닐은 너희들도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응수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영화는 이들이 모두 자신의 욕망과 반하더라도 부모의 명령에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온 학생들에게 키팅은 지식 주입에 몰두하는 다른 선생들과는 달리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시와 견제의 시선을 던지는 다른 선생님들의 쇼트에 이어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섞이면서 호의와 공감의 시선을 보내는 키팅의 쇼트가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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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하라 

 

첫 번째 수업 시간에 키팅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래를 위해서, 즉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현재를 즐기는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왔던 학생들에게 이 메시지는 색다르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토드(에단 호크)가 공책에 현재에 충실하라(seize the day)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화학책을 뽑아드는 쇼트에서 알 수 있다. 식사 시간에 무리지어 잡담을 한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려가는 억압적인 규율에 순종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게 키팅은 전통과 규율, 기존의 지식에 대해서도 낯설게 보고 자신의 생각대로 다시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선생이 주입하는 지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키팅에게 학생들은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가 기대게 된다. 

 

수업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은 기꺼이 키팅이 크게 벌린 두 팔 안으로 들어가 변하기 시작한다. 닐이 키팅의 졸업앨범을 찾아내서 친구들과 돌려보던 중에 그가 학교다닐 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닐의 주도로 찰리, 녹스, 토드, 믹스(앨레론 러기로), 피츠(제임스 워터스톤), 카메론(딜런 커스만) 등 일곱 명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결성하고 학교 밖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한 일탈의 경험 이후에 닐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연극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오디션이 있다는 것을 같은 방 친구 토드에게 말하는 닐의 들뜬 표정과 연극 무대를 바라보는 닐의 환한 표정 쇼트들은 닐이 실제로는 연극을 정말로 하고 싶어했다는 정보를 주는 역할을 한다. 공연 하루 전날 닐이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연극을 당장 그만둘 것을 명령하지만 닐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공연을 허락해달라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완고한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고 닐은 아버지 몰래 공연을 강행한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공부를 방해할 것 같은 모든 활동을 불허하는 아버지는 공연장에 찾아와서 닐을 끌고 집으로 간다. 연극을 하는 것은 인생을 망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로 전학시킬 것이고 그 후에 하버드 의대를 보내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닐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계획이며, 그 계획에 닐이 반발하지만 아버지는 한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좌절한 닐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기 

 

친구들은 닐의 죽음의 원인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만, 닐의 아버지와 학교는 키팅 선생을 닐의 죽음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해온 방식과 다른 ‘튀는’ 교육 방식도 싫고 학생들이 변하는 것도 싫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조를 통해서 학생들로부터 닐의 일탈의 배후에 키팅이 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그것을 근거로 키팅을 쫓아낸다. 

 

부모와 교장의 강요로 거짓 자백을 해야했던 학생들이 떠나는 키팅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서고 교장이 협박을 해도 내려오지 않는 마지막 씬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키팅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키팅을 쫓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 학교 사회가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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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키팅을 통해서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성숙한’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