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
봄(春)이 왔습니다. 이 봄이 사부작사부작 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봄을 맞이하기 위해 너무나 힘든 겨울을 보냈습니다. 매 주말 아스팔트 위 추운 바람 속에서 발 동동 거리며 벼리고 벼린 봄입니다. 그리고 그 겨울 탄핵 정국의 끝을 따뜻한 봄 바람 속에서 맞이하고, 대선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봄 바람이 아직 살갑지 않습니다. 위험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흔히 쓰는 고사성어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너무나 귀에 익숙한 말입니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들의 행위가 다시금 이 고사성어를 되뇌이게 합니다.
彈劾
탄핵(彈劾)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손가락으로 튕겨내고(彈), 관리의 죄상을 고발하는 것(劾)’입니다. 죄를 묻고 튕겨 낸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탄핵하고 괜히 탄핵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 운영의 책임자가 제 역할을 못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을 때, 그 죄를 묻고 자리에서 파면하는 것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경악한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는 한탄과 분노 속에서 국가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그들을 파면하고 책임을 묻고자 한마음으로 시린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새 봄과 함께 새롭게 거듭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厚顔無恥
하지만, 민심에 대응하는 저들의 태도는 후안무치(厚顔無恥) 합니다. 참으로 뻔뻔하고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민심을 외면하며 버티기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버렸습니다. 최소한의 품격도 없었습니다. 그리곤 탄핵심판을 연기시키고자 온갖 술수를 부려왔습니다. 어떻게든 헌법재판관 7인 체제가 되는 3월 13일만 넘기고 헌재의 탄핵 절차를 무력화시켜 보겠다는 꿍심을 보여 왔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여의치 않자, 탄핵 심판을 결정하는 헌법재판소 흔들기를 시도하고 탄핵 심판의 불공정 프레임을 만들고자 도를 넘는 행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너무나도 뻔한 속셈임을 알면서도 먼가 동티가 생겨 행여나 그리될까 온 국민의 마음이 조마조마 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을 갈라치고 분열시키는 전략도 실행해 왔습니다. 헌재의 탄핵 무력화 전략과 맞물린 여론전을 펼치고자 한 것입니다. 정경유착을 통해 흘러든 돈을 바탕으로 탄핵반대 집회가 열립니다. 탄핵 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과 친박 정치인들이 선동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수구 정치인들도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짜뉴스까지 유포시키면서 여론을 호도하려 합니다. 체면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殘雪
봄이 오는 길목엔 잔설이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해를 넘기고 새 봄으로 이어지는 탄핵심판 정국에도 잔설이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몰상식, 궤변, 협박, 난동으로 일관하며 탄핵 용인 판결을 불복하자고 선동하는 대리인단 법조인들, 국정 농단의 공범이면서도 뻔뻔한 모습으로 탄핵 정국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수구 정치인들, 국정 농단 공범으로 수사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한대행이라는 직책을 빌미삼아 매사에 발목을 잡는 국무총리, 태극기의 상징을 호도하는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 이들 모두 조심해야 될 잔설들입니다.
그러나 박석운 공동대표가 한 회의에서 한 말처럼 “뒷산에 잔설이 조금 남아있기로서니,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잔설에 미끄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 봄의 훈풍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春風風人
탄핵 정국이 이제 막바지입니다. 헌재의 판결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국정 농단 세력의 죄상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탄핵 용인 판결 역시 명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퍼진 목소리는 단순히 무능하고 후안무치한 대통령 하나 바꾸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일파 청산 실패 이후 켜켜이 쌓여 온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지난 겨울을 벼려 온 국민의 요구입니다. 따사로운 봄 바람이 모든 이에게 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때도 잘 맞추어 적시에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당장은 탄핵 결정에 이은 대선 일정입니다. 다시 한 번 두 눈 부릅떠야 할 때입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시민으로부터 나오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사람인지, 힘(권력)을 얻기 위해 세상을 바꾸려(하는 척) 하는 사람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2017년 새롭게 맞이하는 이 봄. 따뜻한 봄 바람이 모든 이에게 불어오는 그런 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김은규 편집위원장